1929년 생인 아빠의 고향은 화성의 작은 마을 반월이다. 할아버지는 중농이었고 집안은 넉넉한 편이었다. 할아버지는 옹기를 구워 장에서 팔았다. 그 돈으로 소금이나 생선을 샀다. 아빠의 형제는 자그마치 열두 명이었는데 그중 세 명은 일찍 죽었다. 맏형이 죽은 후, 아빠는 둘째 아들이 되었다. 그런데 아빠는 할머니를 잘 도와주는 살가운 아들이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매우 부지런한 시골 아낙이었다. 아빠는 할머니가 주무시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밤늦게까지 9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옷 바느질을 하고, 새벽이면 일어나 아침밥을 지었다.
아빠는 초등학교 1학년 때는 글자를 전혀 읽지 못했다. 학교에선 일본어로 수업했는데 아빠는 일본어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10리가 넘는 등굣길에 모든 교과서를 책보에 싸서 8살 꼬마가 걸어 다녔다고 한다. 글자를 모르니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꺼내는 책을 보고 따라 꺼냈다. 참으로 근성 있는 8살 어린이였다.
아빠는 형제 중 최초로 서울로 유학을 가서 경동 중학교에 입학했다. 처음에는 시골뜨기라고 무시도 많이 당했다고 한다. 참다못해 자신을 놀리는 친구와 주먹다짐을 한 적도 있었다. 이후에 그 친구는 다시는 아빠를 놀리지 않았다. 당시에는 밀가루 배급을 했는데, 아빠는 밀가루를 어떻게 시골에 가져가면 좋을까 고민했다고 한다. 아빠는 밀가루를 국숫집에 가져다가 국수를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형제들에게 국수를 먹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국수를 고향 집에 가져다드렸다. 시골에서 국수는 별미음식이었다. 불과 14살 중학생이 가족들을 먹인다고 국수를 뽑아 집으로 들고 갔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
아빠는 경동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고 2 때 짝꿍이 일본 도쿄에 삼촌이 산다며 유학을 간다고 했다. 아빠도 유학을 가고 싶었다. 아이를 12명이나 낳은 할머니는 늘 배가 아프다고 하셨다. 아빠는 의사가 되어 할머니를 꼭 고쳐드리고 싶었다. 아빠는 밀항을 시도했다. 고향 집에는 일본으로 유학을 간다고 말했다. 첫 번째 밀항은 실패하고 말았다. 부산에서 걸린 것이다. 아빠는 그냥 집에 가기는 민망해, 부산 도깨비시장에서 일제 공책과 문구류를 잔뜩 샀다. 일본에 다녀왔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이후 다시 밀항을 시도했다. 다행히 두 번째 밀항은 성공했다.
아빠는 의대에 가고 싶었지만 실력이 모자랐다. 대신 도쿄에서 공대에 다녔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미국 선교사들의 여행 가이드로 일했다. 센베이 장사를 하기도 했다. 장사는 아주 잘 됐다고 한다. 일본 유학 시절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한국전쟁으로 3년이나 한국과 편지 교류를 할 수 없어서 아빠는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나중에야 들었다. 엄마 호강 시켜 주겠다는 다짐으로 힘든 유학 생활을 버텨온 아빠는 할머니의 사망 소식에 밤새 꺼이꺼이 울었다고 했다.
일본 유학 생활을 마친 아빠는 한국에 돌아와 취직했다. 하루는 고향 집에서 쉬고 있는데, 동네 아저씨가 재봉틀을 가져와서 고쳐 달라고 부탁했다. 일본에서 기계공학과를 다닌 아드님이 좀 고쳐 달라고. 재봉틀을 고쳐본 적이 없는 아빠는 땀이 비 오듯 흘렀다. 어떻게 고쳐야 할지 몰라 그냥 분해해 보았다. 그리고 다시 조립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 작동이 잘 되었다. 동네 사람들은 아빠가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다며 칭찬했지만, 사실 아빠는 그냥 재봉틀을 분해한 후 다시 조립한 것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