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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언니 Dec 26. 2023

외갓집 식구들

   엄마는 14살에 형제들과 피난을 와서 한 번도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부모가 계신 집에 영영 돌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외조부모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피난길이라 사진도 챙기지 못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사촌 오빠가 외할머니 사진인 것 같다며 사진을 하나 보여줬다. 사진에 있는 여성분은 사촌 언니와 똑 닮아 있었다.


유전자의 힘은 이리 무서운 것인가. 사촌 언니는 사진을 친구에게 보여줬는데 ‘너 언제 한복 입고 사진 찍었어?’라고 묻더란다. 정말 둘은 너무나 닮았다.


외할아버지 사진은 아쉽게도 없다. 집에서 ‘제왕’처럼 군림하셨다는데 외할아버지가 식사를 하실 때면 엄마는 옆에서 부채를 부치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왼쪽에 흰 저고리를 입은 분이 외할머니

 나는 외삼촌이 네 분, 이모가 두 분 있다. 희한하게도 삼촌들은 하나같이 인물이 좋고, 이모들은 외할머니를 닮아서 인물이 썩 좋진 않다 ㅎ


첫째 외삼촌은 엄마 말로는 ‘천재’였다고 하는데 공부도 잘하고 바이올린 연주도 잘했다고 한다. 피난 온 후에는 미군에서 일하다가 평생 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성격이 샌님이라서 생활력이 별로 없었다. 맏이지만,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진 못했다.


 동생들 뒷바라지를 한 사람은 둘째 외삼촌이다. 둘째 외삼촌은 인물이 거의 배우급이다. 해양대를 나와서 원양어선을 탔다. 엄마를 어릴 때부터 매우 아꼈고, 돌아가실 때까지 극진히 사랑했다. 둘째 외삼촌은 아쉽게도 내가 태어나고 얼마 후에 고혈압으로 쓰러져 돌아가셨다.


 큰이모는 엄마에겐 ‘엄마’같은 언니다. 딸만 내리 셋을 낳고 어렵게 막내 아들을 낳으셨다. 외가는 고혈압이 가족력인데,  큰이모 역시 마흔 중반에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이후 , 이모네 가족은 모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지금은 미국에 잘 정착하여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이민자로 지내고 있다. 첫째, 둘째 외삼촌과 큰 이모는 내가 태어나기 전이나, 태어난 직후에 돌아가셔서 뵙지는 못했다.

둘째 외삼촌 결혼식. 정말 잘 생긴 미남이셨다.

 둘째 이모는 공부를 아주 잘했고, 피아노도 잘 쳤다고 한다. 엄마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고 악보 읽는 법을 알려준 사람도 둘째 이모였다. 재주가 많았던 이모는 피난후에 어려운 살림을 꾸리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예순에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나에게 묵주 기도 하는 방법을 배워서 좋아하셨다. 종종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로 편지를 보내셨다. 편지지 가득 달필로 안부를 물으시던 이모의 편지가 지금도 기억난다.

 셋째 외삼촌은 젊을 때 친구들을 좋아해서 종종 집에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엄마는 오빠 친구들의 술상을 봐야 했고, 그것이 참 괴로웠다고 한다. 셋째 외삼촌은 엄마 형제 중에 가장 오래 사셨다. 오랫동안 자식이 없었는데, 외숙모가 절에 가서 열심히 불공을 드린 끝에 외아들을 낳았다.


 막내 외삼촌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젊은 시절 엄마를 따라 수도원 생활을 하다 그만두었고, 사우디에 가서 돈을 벌기도 했다. 엄마와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가장 친했다. 형들은 무슨 일인지 막내 남동생을 잘 끼워주지 않았다. 삐진 외삼촌은 주로 엄마와 놀았다. 외숙모와 문방구를 운영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집에서 쉬셨다. 생계는 이불집을 하는 외숙모의 몫이었다. 음악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하며 평생 술을 가까이하셨다. 술에 취하면 가끔 우리집에 전화를 걸곤 했다. 외삼촌의 두 딸은 나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방학 때 함께 지냈다. 방학 내내 엄마에게 수학과 영어를 배웠다. 우리는 같이 영화도 보러 가고, 교보 문고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기도 했다.


 부모 없이 형제들만 피난을 와서 고생했지만, 외갓집 식구들은 사랑이 많았고 자주 모였다. 자연스레 사촌들끼리도 어릴 때부터 종종 만났고,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 식사를 한다. 또래 형제가 없는 나에겐 매우 소중한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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