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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언니 Jan 05. 2024

경단녀, 다시 일을 시작하다

남편과 나는 만 19살에 만나 25년이 넘게 서로를 알고 지냈다. 10년은 연인으로, 17년은 부부로 지냈다. 경상도 출신 공대생과 서울 토박이 음대생이 대학교 2학년 때 농활에서 처음 만나고 호감을 갖고 데이트를 시작했지만 처음 7년은 주구장창 싸웠다.


 남편은 처음 서울에 올라와 모든 것이 긴장되고 위축되었다. 그런 남편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라고, 네가 그렇게 모든 일을 다 안 해도 된다고, 그래도 사랑받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당당히 지내라고 나는 남편에게 때론 꽤 강하게 말했다.


 남편은 달라졌다. 당당해지고 강해지고 지혜로워졌다. 남 눈치를 보기 보다 자기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가까운 사람을 먼저 챙길 줄 아는 사람이 됐다. 더불어 사진에 취미를 붙이면서 공대생이면서도 예술적인 감각을 키우려고 노력했다.     


 결혼 후 10년간 나는 아이를 낳고 키웠다. 일을 계속 하긴 했지만 둘째를 낳으면서 일을 많이 줄였다. 집에서 아이와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 나도 학생때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기대를 많이 받던 빛나는 여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직장에선 믿음직하고 싹싹한 교사이자 동료였던 거 같은데.. 서른살 후반의 나는 아이 둘을 키우는 비정규직 강사일 뿐이었다. 그나마 강의를 많이 줄이니 불안한 일자리가 더 초라해 보였다. 장을 보거나 아이를 픽업하고 집안일을 하면서 허드렛일만 주로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처음엔 좀 챙피했다.

     

 이제 상황이 역전되어 20대의 남편이 그러했듯 내가 위축되고 남눈치를 과도하게 보고 사랑받기를 갈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남편은 가끔 내가 예민해져 밤에 고민을 털어놓으면 그 옛날에 내가 남편에게 말해준 것처럼     

“네가 다 할 필요 없어. 할 수 있을 만큼만 해. 넌 이미 잘 하고 있어. 예쁘게 크고 있는 아이들이 그 증거야. 그리고 주변의 시선에 신경쓰지 마. 다른 사람은 너에게 그렇게 관심없어. 그리고 내가 도와줄테니 하고 싶은 일을 천천히 준비해봐"

라고 응원하고 위로하고 때론 따끔하게 조언했다.     


 부모님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힘들기도 했다. 엄마는 육아와 살림에 대해 잔소리를 많이 하셨다. 부모님께서 나이가 점점 들면서 나는 아이들과 더불어 늙은 부모까지 돌보아야 했다. 나는 언제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전업주부로 사는 것은 나와 맞지 않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한 친구가 나에게 블로그를 써보라고 권유했다. 음악사를 알기 쉽게 써보라고. 나는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고, 전공서적을 펼쳐놓고, 일반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블로그에 음악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블로그에 쓴 글을 읽고 사람들이 강연 요청을 했다.

 노숙자나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분들에게 강연을 하기도 했고,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쉽게 음악을 설명하기도 했다.   나 스스로 내 직업의 이름을 정했다.


 뮤직 큐레이터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 그림이 더 잘 이해되듯, 좋은 음악을 골라 알기 쉽게 설명하는 일이다.


 "경제적 형편과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문화적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음악과 관련지식을 나누겠다"는 나의 20살 적 꿈을 향해 오늘도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매우 좋아하고, 더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긴 시간 남편이 나에게 힘을 북돋아주고 응원해주어 가능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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