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주의 대표적인 작곡가
오늘은 고전주의 시대 가장 대표적인 작곡가인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삶과 음악을 비교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하이든은 (1732~1809년) 모차르트(1756~1791년)보다 20년 정도 먼저 태어난 선배 작곡가입니다. 하이든은 80세 가까이 장수하였지만 모차르트는 36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지요. 삶의 스타일도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들의 삶은 어떻게 달랐을까요?
하이든의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하이든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의 작은 마을에서 바퀴를 만드는 목수였지요. 형제들은 열두명이나 되었는데 음악적 재능이 있던 하이든은 어린 시절 친척의 도움을 받고 비엔나로 가서 성 슈테판 성당의 소년 성가대원이 됩니다. 성 슈테판 성당은 비엔나의 가장 큰 성당이었지요. 하이든은 이 곳에서 18살까지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며 하프시코드와 바이올린 연주법을 배웠습니다.
목수 집안이었던 하이든과 달리 모차르트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궁정의 부 음악 감독이었고 당대 유명한 바이올린 선생님이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음악 렛슨을 받았고, 집에는 음악가인 아버지 친구들이 방문하여 함께 연주하였으므로 음악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랄 수 있었습니다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는 모차르트를 데리고 유럽 전역으로 연주여행을 다녔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프로모션 활동을 한 것이지요. 신동 음악가 모차르트를 유럽 전역의 궁정에 소개하고 훗날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게 하려는 아버지의 계획이었습니다.
비엔나 슈테판 성당의 성가대원으로 10대를 보낸 하이든과 달리 모차르트는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궁정에서 연주를 하며 환대를 받고 지역의 음악 양식을 배웠습니다.
하이든은 18세가 되자 변성기가 시작되어 더이상소년 성가대에서 활동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20대 시절 하프시코드 렛슨과 연주로 매우 가난한 음악가 생활을 했습니다.
모차르트 또한 연주여행을 하며 유럽 각 지역의 궁정에서 일자리를 알아보았지만 취업에 실패하고 맙니다. 음악감독을 하기엔 너무 어리고 신동인 모차르트를 아래에 데리고 있기엔 기존의 음악감독들이 엄청 부담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어쩔 수 없이 모차르트는 고향 짤쯔부르크로 돌아오지요. 그러나 이미 대도시의 자유와 화려한 문화를 만끽한 모차르트는 짤쯔부르크의 삶을 매우 지루해합니다.
인복이 있었던 하이든은 20대 후반 같은 하숙집에 머물고 있던 유명한 오페라 대본가 메타스타지오의 소개로 헝가리의 귀족 에스테르하지 왕자를 소개받게 됩니다. 그리고 30살무렵 에스테르하지 가의 부 음악 감독으로 고용되지요. 하이든은 무려 30년간 에스테르하지 가문을 위해 봉직하게 됩니다.
에스테르하지 가의 니콜라우스 왕자는 엄청난 음악 애호가였는데 하이든을 아낌없이 후원해주었습니다. 에스테르하자 라고 불린 이 가문의 궁정에서는 매주 두번 오페라가 연주되고 대규모의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또 식사할 때마다 음악을 연주하였고, 매일 밤 왕자의 방에서는 실내악을 연주하였습니다. 하이든은 이 음악들을 대부분 혼자 작곡했습니다. 또한 궁정에 딸린 오케스트라를 돌보고 연습시키는 일도 했지요.
하이든이 에스테르하지 가문에서 봉직할 때 작곡한 작품을 하나 들어볼까요? 교향곡 45번 '고별'입니다.
당시 에스테르하지 왕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휴가를 주지 않아 단원들의 불만이 컸다고 해요. 단원들이 음악감독인 하이든에게 불만을 호소하자 하이든은 재미있는 꾀를 냅니다. 이 교향곡의 4악장을 들어보시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한명 한명 자리를 뜨고 무대 뒤로 사라집니다. 휴가를 주지 않으면 단원들이 모두 떠날 거라는 암시를 왕자에게 음악적으로 보여준 것이지요. 이 연주를 보고 왕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휴가를 허락해주었다고 합니다.
연주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는 다니엘 바렌보임입니다. 단원들이 자꾸 떠나자 당황해하는 지휘자의 모습이 귀엽네요. ^^
당시 음악가의 신분은 '하인'과 다름없었지요. 필요한 음악을 작곡해주고 오케스트라 단원과 악기를 관리하는 일은 중노동이었습니다. 그러나 하이든은 충실히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나갑니다. 또한 넉넉하고 따뜻한 인품으로 주변 사람들의 신망을 한몸에 받았지요.
이에 반해 모차르트는 자신을 고용한 짤쯔부르크의 대주교와 불화를 겪게 됩니다. 유럽 전역에서 신동으로 환대받던 자신을 '하인'취급하는 것도 참기 힘든데다가 자신이 원하는 음악이 아닌 대주교가 원하는 구닥다리 음악을 계속 작곡해야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던 거지요.
그는 결국 대주교와 크게 싸우고 요즘 말로 하면 '프리랜서'를 선언하며 비엔나로 뛰쳐나오게 됩니다. 당시 음악가는 대부분 왕궁, 귀족, 교회에 속해 필요한 음악을 작곡해주며 후원을 받고 살았는데요, 모차르트는 유럽 최초로 연주, 렛슨, 악보출판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랜서 음악가가 됩니다.
그가 작곡한 피아노 협주곡과 소나타, 오페라는 비엔나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는 악보출판과 렛슨등으로 큰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모차르트 음악의 인기는 점차 시들해져갔습니다. 사람들은 '신동' 모차르트가 가볍고 유쾌한 음악을 연주하길 원했지만 그는 점점 진지하고 성숙한 음악 작품을 내놓았습니다. 후원이 끊긴 모차르트는 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서른 여섯의 나이로 요절하게 됩니다.
그는 말년에 후기 교향곡 39, 40,41번을 작곡하고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마술피리> 등을 완성했습니다.
그중 교향곡 40번을 들어보겠습니다. 불안하고 격정적인 멜로디가 귀에 익숙합니다.
평생 귀족 가문에 충실히 봉직하다 말년에는 유럽 최고의 음악가로 추앙받은 하이든과 최초의 프리랜서의 삶을 꿈꾸다 36살에 요절한 모차르트.
교향곡과 현악 4중주를 크게 발전시킨 하이든과 교향곡,오페라,협주곡, 소나타 등 다양한 장르에서 걸작을 남긴 모차르트~
이 두 거장의 음악을 들으시면서 편안한 오후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