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여름 후배의 소개로 노숙인 인문학 학교에서 음악사를 강의했다. 그동안 써온 블로그를 애독하던 후배가 인문학 학교에서 예술에 관한 강의를 할 사람을 찾는다고 하니 나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옆에서 전화를 듣던 남편은 '해봐, 내가 도와줄게. 여름이라 나도 휴가기간이니 맘놓고 해봐'라고 꼬셨다.
그러나 여름엔 아이들의 방학이 기다리고 있었고, 에어컨 바람에 멍멍이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를 앓게 되자 그야말로 강의 준비에 비상등이 켜졌다.
그래도 양가 부모님의 사랑과 남편의 도움 덕에 아이들의 원망 속에서도 강의 교재와 ppt를 겨우겨우 만들었다.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노숙인 분들의 지적 능력(?), 학력 정도를 가늠할 수 없으므로 어디까지 어떻게 얘기하야 하나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거였다.
수업은 총 3회, 9시간을 해야했다.
첫 날 수업을 마치고 안도의 한숨과 함께 노숙인 분들이 너무 수업 태도가 좋으셔서 깜짝 놀랐다. 음악사 공부를 억지로 하던 전공생만 가르치다가 배움에 굶주리고 열망하는 어른들에게 좋은 음악과 음악가의 삶을 나누는 작업이 너무 너무 즐거웠다.
두번째 세번째 수업을 거듭하며 더욱 놀란 것은 노숙인분들이 음악을 진정 즐기시는 모습이었다. 연주의 퀄리티가 좋으면 더욱 더 몰입도가 좋았다. 좋은 연주와 나쁜 연주를 기가 막히게 아셨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의 <베토벤 운명 교향곡>을 들을 때 어찌나 열심히 들으시던지, 조금 더 듣고 싶어하는 열기가 나에게도 느껴졌다.
그리고 소유하는 것이 많지 않은 분들이어서 그런걸까? 음악을 재고 분석하지 않고 마음으로 훅 받아들이고 그대로 느끼고 즐기셨다. 바로 얼마전 가난한 사람의 경우 하느님의 사랑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반면, 부유하고 학식이 높은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과 사랑을 받아들이는데 장애물이 많다는 강론을 들었는데.. 그 강론 말씀이 생각났다.
다행히 반응이 좋아 내년에도 또 인문학학교에서 함께 하자고 제안을 받았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준비하는 동안 너무 힘들어서 내가 다신 하나 봐라 했는데 또 노숙인 분들이 뵙고 싶고 음악을 나누고 싶으니 내년에도 해야할 것 같다.
노숙인 분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등만 찍었는데도 등만 봐도 얼굴이 떠오르며 그립고 감사하다. 그리고 제자가 좋은 일 한다고, 연주 봉사 단체인 '예무스'의 단원들을 보내주신 김재은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함께 한 예고 동창들, 선배 언니 정말 감사해요. 마지막 수업 때는 김재은 선생님께서 직접 오셔서 부족한 강의에 힘을 실어주셔서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혹시 시간이 지나면 소회를 잊어버릴까봐 오늘 사진자료와 동영상을 받은 김에 글을 남긴다.
#노숙인인문학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