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은 기적이었네

by 스텔라언니

생전 아프단 말을 잘 안 하던 둘째가 13년 인생에서 가장 크게 아팠다.

2주 전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일주일 전 일요일부터는 39도 고열이 났다.


우리는 환절기 감기겠거니 하고 감기약과 해열제를 먹였지만 전혀 듣지 않았다.

월요일에 동네 소아과에 갔더니 감기 증상은 없고 고열에 복통이니 장염 같다고 약을 처방받았다.

하지만 약을 먹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대선날 밤, 열이 다시 39도를 넘고 아이가 힘들어하자 급히 용인 세브란스로 갔다.

그런데 밤에는 소아과 응급실이 운영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들이 주로 밤에 아픈데, 이게 의료 파업 때문인지, 소아과 의사가 줄어서인지… 참 씁쓸했다.


다급히 아주대 병원에 전화했더니 뼈가 부러졌거나 맹장이 터지는 급성 중증이 아니면 소아는 안 받는다고 했다.

뉴스에서만 보던 ‘응급실 거부’를 직접 겪게 될 줄이야.

늘어진 아이를 안고, 남편과 나는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 다시 찾은 용인 세브란스에서 코로나 검사, 소변 검사, 피검사, 심지어 뇌 CT까지 다 찍었지만 뚜렷한 원인이 나오지 않았다.

의사는 아마도 바이러스성이나 세균성 장염일 것 같다고 했다.


아이는 고열에 두통, 복통, 근육통까지 겹쳐 많이 지쳐 있었다.

곧 연휴가 시작되어 진료가 어려우니 입원하는 게 아이가 편할 거라는 말에, 목요일부터 병원에 입원했다.

남편과 나는 교대로 아이 곁에서 쪽잠을 자며 지냈다.


다행히 수액과 항생제, 해열제를 링거로 맞으니 아이 컨디션이 서서히 나아졌다.

연휴가 끝나고 복부 CT 결과를 오늘에야 들었는데, 역시나 장염.

오후에 대변 검사 결과만 남았다. 부디 별일 없기를.


입원하면서 나도 새삼 알게 된 것이 있다.

3년 전 엄마가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을 때에도 같은 병원에 모셨다.

그때는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내가 간병할 상황이 안 돼 간병인을 모셨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솔직히 지금 다시 돌아가도 간병인을 구했을 것 같다.


그런데 아이가 아프니, 보호자 침대에서 자는 것도 아무렇지 않다.

누군가는 꼭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게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다.

‘내리사랑’이라는 말, 정말 맞다.

엄마는 나에게, 나는 아이에게 사랑을 쏟는다.

그게 자연스러운 일인데도 엄마에게 괜히 조금 미안해졌다.


그리고 또 하나, 아이가 아프니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하교할 때마다 친구들 데려오는 게 귀찮다고 생각한 날도 있었는데,

이렇게 아프고 나니 그런 일상조차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병원 케어를 받으니 이튿날부터 아이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내가 “우리 침대 바꿔 자자~” 하고 농담할 정도로 말이다.

게다가 오늘부터 6인실에 우리뿐이라 재벌집 막내딸처럼 1인실을 쓰고 있다.


용인 세브란스는 주변 자연도 참 아름답다.

나무가 많고 공기도 맑아, 아이와 식사 후엔 꼭 한 바퀴 산책을 한다.

아이도 좋아하는 드라마 <언젠가 슬기로운 전공의 생활> 촬영지라며

“여기가 오이영이랑 구도원이 꽁냥꽁냥하던 곳이야~” 하며 좋아한다.


나는 1층 구석 무인 책장에서 <먼나라 이웃나라 - 일본편>을 꺼내 읽고 있다.

어릴 적 봤던 익숙한 그림체에 빠져 야금야금 읽다 보니,

‘진짜 일본이 이럴까?’ 하는 의심도, ‘중고로 한 권 사볼까?’ 하는 욕심도 생긴다.


오늘 밤, 일주일 만에 처음으로 해열제를 먹지 않고도 열이 나지 않았다.

오후 대변 검사 결과만 괜찮으면 내일 퇴원 예정이다.


걱정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 감사합니다.

덕분에 우리 아이, 조금씩 회복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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