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를 피해 한주 일찍 부산 시댁에 다녀왔습니다. 명절보다 한 주 일찍 다녀오니 차도 안 막히고 사람도 붐비지 않아 참 좋았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명절을 지내보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결혼한지 15년이 되니 부산에 안 가본 곳이 거의 없습니다. 부산 토박이인 남편도 가보지 못했다는 부산 기장 바닷가의 사찰 <용궁사>에 다녀왔어요.
<용궁사>는 절 자체보다 입구에서 바다와 절을 함께 보는 것이 참 절경입니다. <용궁사>라는 이름답게 소원을 빌고 기도의 영험함을 바라는 신도들이 많았습니다.
집으로 상경하는 길에 청도를 들렸습니다. 청도는 부산을 오가며 많이 지나친 곳이지만 처음 가보았지요.
청도에는 <운문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신라시대에 창건한 절로 <삼국유사>를 집필한 일연스님이 주지로 계셨고 실제로 이 곳에서 삼국유사 집필도 하셨답니다.
처음 들어보는 절인데도 불구하고 비구니 절로 전국 최대 규모이며 곳곳에 문화재가 많은 아름다운 절입니다. 경내에 저희 가족밖에 없었어요.
점심을 드시고 범종을 울리자 비구니 스님들이 곳곳에서 나와 풀뽑기, 빗자루 질, 법당 청소 등을 하십니다. 아마도 식후에 운동 겸 소일을 하시나봐요.
수행 도량에 들어가보지는 못했지만 출입구에 서면 스님들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멀찍이 서서 10분 정도 물끄러미 스님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시며 아름다운 자연을 품고 있는 도량에서 예불을 하고 공부를 하고 채식을 하고 노동을 한다면 법정스님 말씀대로 “맑고 향기롭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대 중반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를 정해야 할 때, 한두번 수녀원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지요. 그러나 저는 왠지 규율이 엄하고 평생 희생과 봉사를 하며 나 자신이 아닌 상대방, 특히 하느님을 위해 살 자신이 없었어요. 못 해낼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러나 <운문사>에서 엿본 비구니 스님들의 일상을 보며 종교를 떠나 저런 일상이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왠지 기시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의 요가 선생님은 제가 명상할 때 삼매에 드는 것을 좋아하자, 아마도 전생에 스님이었을 거라는 얘기를 하셨지요 ㅋㅋ)
물론 저는 지금의 제 생활과 가족에 만족하고 감사하지만, 만약 제가 수녀와 비구니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저는 비구니의 삶이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쓸데없는 생각 ㅋㅋ)
남편은 제 이야기를 듣더니 다음 생애에 꿈을 이루지 말고 이생에서 수행하며 살라고 했습니다. 속세에서도 수행할 수 있다고요. 맞는 얘기입니다.
스님들의 수행도량 문 앞에 <不二门(불이문)>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었어요. 예전에 갔던 다른 절에도 같은 현판이 있길래 마침 나오신 비구니 스님께 무슨 뜻이냐고 여쭤봤지요. 그러자 스님께서 맑은 얼굴로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이 곳과 바깥이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맞습니다. 마음만 바르다면 절간과 속세가 뭐가 다르겠습니까? 올해도 속세에서 주변 사람들과 나 자신을 사랑하며 즐겁게 살아봐야겠습니다 ^^
#새해복많이받으세요
#万事如意(만사뜻대로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