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혜석에 관한 책. 그림.

by 스텔라언니

내가 언제부터 이런 취미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역사 속에 나오는 인물들과 그 시대상이 어땠는지 상상하는 일을 꽤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거 같다.

시작은 전에도 얘기했듯이 초등학교 4학년 때 매우 인기가 있었던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인현왕후>였던 것 같다. 전인화가 표독스러운 장희빈으로 나온 이 드라마는 초딩 사이에서도 너무나 인기가 있어서 다음날 학교에 가면 인현왕후 드라마를 얘기할 정도였다. 그 해 방학 숙제로 역사책 뒤에 있던 <조선왕조 가계도>를 베껴갔던 것이 기억난다.

이후에 정보석이 사도세자로, 하희라가 혜경궁 홍씨로 나오는 드라마 <하늘아 하늘아>를 이어서 보면서 나는 장희빈 이후에 이어지는 조선 왕조 이야기에 홀딱 빠졌다.

그 때부터였을까. 책으로만 읽는 역사 속 사람들과 사회는 실제로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하고 자료를 찾아보는 취미가 생겼다.

예를 들어 구한말 조선 왕조 사진전시회에서 고종부터 순종, 영친왕, 덕혜 옹주에 영친왕의 아들 이구씨에 이르는 마지막 왕손들의 사진을 본다던지, 미디어로 유명한 베네딕도 수도원 신부님들이 1900년대 초반 조선을 찍은 무성영화를 유튜브로 보는 일은 늘 재미있었다.

https://youtu.be/hSRcqbKzRUY

위의 동영상은 베네딕도 수도회 신부님이 1900년대 초반의 조선의 모습을 무성영화로 찍어놓은 사료를 설명한 다큐이다


글이나 그림으로 남아있는 19세기 이전의 사료보다 사진을 찍기 시작한 19세기 중반 이후의 자료가 더 구체적이고 생생한 역사를 보여준다.


특히 관심이 많이 가는 시대는 1900년대 초반 개화기 시절의 조선과 중국 등 아시아의 모습이다. 밀려드는 서구열강 세력 속에서 사회 경제적으로 침탈을 당하면서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전통적인 가치관마저 바뀌던 그 시기. 조선과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은 비슷하거나 다른 모습으로 그 시기를 거쳤다.

따라서 나는 언제부터인가 개화기의 신여성, 경성의 모던 걸들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조선의 유교적 가치관이 남아 있던 시대에 새로운 서구식 교육을 받고 새로운 여성상을 꿈꾸던 신여성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1920년대 조선에 살았던 공산주의 엘리트들의 삶과 사랑을 다룬 소설 <세 여자(조선희 저)> 나 최초의 여류 화가 <나혜석>의 이야기는 당시의 사회상과 인물들을 잘 묘사하고 있다


얼마 전 선물 받은 조상인님의 저서 <살아남은 그림들>에서 한국 근대 화가들의 눈부신 그림들을 보았다. 가장 앞장에 언급된 사람이 화가 ‘나혜석’이었다. 그녀는 널리 알려졌듯이 1920년대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여류 화가이자 문필가였다. 그리고 봉건적인 사회에서 억압받는 조선의 여성들이 해방되기를 꿈꾼 페미니스트였다.


나혜석과 남편 김우영

1927~1929년 남편을 따라 유럽과 미국을 세계일주 여행으로 돌아본 그녀는 여행 도중, 독립운동가였던 최린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일로 이혼을 당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그녀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나혜석이 쓴 그 유명한 “이혼 고백장” 전문을 다 읽으면 불륜녀로 낙인 찍힌 그녀가 피해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녀의 글솜씨는 너무나 훌륭해서 당대에도 유명한 문필가였지만 지금 읽어도 전혀 지루하거나 이해하기 힘들지 않다.


나혜석이 쓴 소설, 에세이, <이혼 고백서>등을 모아놓은 책


나혜석이 쓴 “조선 여성 첫 세계 일주기”도 매우 재미있다. 나혜석의 눈으로 보는 당시의 유럽과 미국의 문화가 흥미롭고 내가 가본 지명이 나오면 더 반갑다.

요즘은 나혜석의 둘째아들이 쓴 회고집을 읽고 있다. 나혜석은 4남매를 두었는데 이혼 후 아이들을 거의 만날 수 없었다. 둘째 아들은 자라서 서울대 법대 교수가 되었는데 나이가 들어서까지 어머니의 존재를 부정했다고 한다. 그는 말년에 아버지이자 나혜석의 남편인 김우영에 대해 재조명하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가족사를 털어 놓은 책을 냈다. 소설 형식으로 씌여 있는 이 책은 나혜석의 남편과 아이들은 나혜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자세히 보여준다



오늘 낮에 가족들과 수원 시립 아이파크 미술관에 갔다. 수원이 고향이었던 나혜석의 그림을 볼 수 있다고 해서 갔는데 여러 작가들이 참여한 기획전시도 아주 볼만 하고 재밌었다


마지막 전시실에 있던 나혜석 그림 4점.


그 중 내 눈 앞에 확 들어왔던 그림은 이것.


세계 일주를 하던 시절 파리에서 그렸다는 그녀의 <자화상>이었다. 나혜석 관련 책에서 많이 보았던 그림을 실물로 보니 뭔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이 그림을 실제로 보다니,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 네덜란드 고흐 박물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실제로 볼 때 느꼈던 충격이랄까. 나는 유화 물감이 덕지덕지 두껍게 발라져있는 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사진으론 느낄 수 없었던 그의 열정이나 의지가 느껴졌었다


나혜석의 <자화상>도 뭔가 그림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파스텔톤의 어두운 색감과 형태, 무표정한 표정까지.. 그 옆에 있던 남편 <김우영 초상화> 역시.. 그녀의 정신이, 삶이 느껴지는 듯 해서 한동안 그림 앞에 서있었다.


나혜석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다큐를 보면 더 알 수 있다.

https://youtu.be/VuHr0OdGFjg


덕수궁 현대 미술관에서 내가 관심있어하는 일제 시대의 문학과 미술을 날실과 씨실처럼 엮어 전시회를 하고 있다. 제목은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


나혜석이 살았던 시기에 활동한 화가와 문인들의 이야기를 많이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문학 작품의 인용구와 그림들을 모두 보려면 관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전시라고 들었다. 봄날, 덕수궁에 들려 혼자만의 봄소풍을 즐겨야겠다^^

http://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Id=202001090001221



#나혜석

#신여성

#미술

#일제시대



keyword
작가의 이전글부산 <해동 용궁사>와 청도 <운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