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병은 저의 것이 맞습니다.
내 병의 원인을 나에게서 찾고 싶은 시어머니
이번에 한국에 들어갔을 때 나는 중증 희귀 난치성 질환이라는 것을 등록하고 앞으로 5년간 의료비를 지원받게 되었다.
몇 년간 이유도 모른 채 근육통과 두드러기 피로감 기력 없음 등등 여러 가지 잔병들을 달고 살다가 지난번 한국에서 자가면역 질환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수없이 병원을 방문하고 검사하고 또 검사한 결과 자가면역 질환의 한 종류라는 진단명을 듣고 나니 오히려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왜냐하면 너무 자주 컨디션이 떨어질 때는 주변에 말하기도 점점 무안해졌었고 심지어는 나조차도 꾀병인가 정말 아픈 것인가 헷갈릴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는 나는 무슨무슨 병 때문에 이렇게 컨디션이 나쁜 것이다.라고 말이라도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병명을 알게 되었더라도 아픈 것은 매 한 가지이나 속이라도 시원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모든 병이 다 그렇듯이 병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그저 추측하기에는 길다면 긴 유학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의료시설이 한국만큼은 좋지 못한 유럽에 살면서 어쩌면 작은 증상을 바로바로 치료하지 못해 큰 병을 만들었을 수도 있고.
이유를 찾자 하면 한두 개가 아닐 것이지만 딱히 이유를 찾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병명도 모른 채 아프기만 하던 때보다는 그래도 증상에 따른 약이라도 먹을 수 있으니 나는 그것으로도 됐다. 감사하다.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우리 시어머니는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르신 것 같다.
내 병의 병명을 말씀드리니 생전 처음 듣는 병명이라면서 내가 별나서 병이름도 별나다.
라고 말씀 하셨다.
시어머니의 화법은 이제 그러려니 한다.
한마디 한마디에 다 신경을 쓰고 상처를 받자면 한도 끝도 없고 정말 분노가 폭발해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 분노를 폭발시킬 힘조차 남아있지 않고 아주 작은 에너지도 모아 나의 컨디션을 유지하는 것에 써야 한다.
모르시면 모르는 채로 이해하시기 힘드시면 이해 못 하신 채로 넘어가시면 참으로 좋으련만 역시 또 그러시지 않으신다.
내 병의 원인을 찾기 시작하셨다.
혹여라도 본인 아들과 결혼하여 또는 본인 집에 시집와 내가 이렇게 아프다는 소리를 들으실까 그러신 지 미리 선수 치신다.
이유가 뭐꼬? 왜 그런 병에 걸렸다노? 하시길래 뭐 이유가 있겠어요. 있어도 알 수가 있나요. 면역에 관계된 거니 스트레스 일수도 있고 이유야 뭐 많겠지요.라고 했더니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다 그런 병에 걸리지는 않는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겠죠. 사람마다 기질이나 성격이 다르니 다 그렇지는 않겠죠. 했더니 이때다. 하고 치고 들어오신다.
그래 니가 성격이 좀 그렇제?
몇 년 전에도 들은 말이다. 니가 성격이 그래서 그런 거다.
맞다. 내가 성격이 예민해서 별나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일찍 부모님을 다 여의고 우리 삼 남매가 살아내기엔 세상이 그렇게 녹록지도 호락호락하지도 않았으니 너무 아등바등 살아내기가 바빠 나를 돌볼 여력이 없었던 건 사실이니까.
그렇다면 그런 나를 좀 안아주실 수는 없으신 걸까. 그런 따스함은 진작에 포기했지만 그저 평온한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인 것처럼 전화하시어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시는 건 그만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유가 어떻든 원인이 뭐든 나는 우리 부모님처럼 일찍 자식 곁을 떠나는 것만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아 오늘도 하루에 16알의 약을 먹어가면서 버티고 애쓰고 있다.
아침이 되면 강아지랑 산책하면서 마시는 한잔의 까페라떼에서 행복을 느끼고 이렇게 며칠에 한 번씩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만족감을 느낀다.
아이가 연습하는 피아노 곡 중에 유난히 내가 좋아하는 곡이 있으면 설거지를 하다가도 가만히 그 곡을 감상하면서 마음을 위로받는다.
내 병은 나의 것이고 나는 아무에게서도 원인이나 이유를 찾지 않는다. 시어머니와의 통화는 그렇죠. 제가 별나서 그렇겠지요.라는 나의 한마디로 끝을 낼 수 있었다.
내가 가끔 내 마음에 있는 얘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친구 같은 큰 시동생은 간혹 조심스럽게 이런 말을 한다.
" 형수 전화가 없으면 엄마가 많이 서운해하세요. 전화 종종 부탁해요. 걱정 많이 되시나 봐요"
"네. 제가 전화 자주 드릴게요."라고 대답을 하곤 하지만 어쩐지 오늘 이 글은 큰 시동생에게 보여주고 싶다.
가끔은 걱정하시는 말씀에서 상처를 받는다고. 나도 이제 나를 보호하고 싶다고.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친정 엄마의 부정맥을 그대로 물려받은 나는 친정엄마가 돌아가신 나이를 넘길 때 마음이 많이 힘들었었더랬다. 마치 장애물 경기를 치르는 기분이랄까.
이제 하나의 관문을 넘은듯한 느낌이었다. 그 나이를 지나고 나는 안도했었다.
나는 아직 내 아이 옆에 있으니 말이다.
이제 결혼생활 이만큼 했으면 사실 시어머니가 뭐가 그리 무섭겠나. 그저 쓸데없는 곳에 내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부딪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뿐이다.
오늘은 파리에 비가 오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오랜만에 맑은 하늘도 보고 햇볕도 쬐니 면역력이 너무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은 평온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