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는 경비아저씨이다.

언제 꺼내보아도 뭉클한 이름

by 채송화


나의 아버지는 아파트 경비아저씨다.
아버지가 경비아저씨로 불린 지 10년이 되어 간다.
대기업에 30년 동안 재직하다 퇴직한 아빠가 경비 생활을 하겠다고 했을 때, 처음엔 모든 가족이 반대했었다. 박한 봉급에 열악한 근무 조건에 주변 처우까지 생각했을 때 너무 힘들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그냥 노는 것보다 일하는 것이 낫고 나중에 손주들이 생기면 한두 푼 모아 장난감과 용돈을 쥐어줄 수 있지 않겠냐는 이유로 망설임 없이 경비 생활을 시작하셨다.

모두가 잠든 새벽 5시 30분 출근
그 다음날 새벽 5시 30분 퇴근.

하루 일하고 하루 쉬는 그런 시스템에 잠이 부족하여 적응하는 시간이 꽤 걸리신 것 같다.
몇 평 안 되는 곳에서의 쪽잠을 여태 이어오고 계시지만 그래도 지금껏 힘들다는 내색을 한 적이 없으시다.
힘들지 않냐고
피곤하지 않냐고 물으면
괜. 찮. 다. 고
할만하다고 하신다.
전혀 괜찮지 않고, 힘들고 피곤하다는 걸 알지만 아버지가 괜찮다고 하시니 그 대답으로 불편한 나의 마음을 달래 본다.

나의 아버지는 지난 30년 동안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결근, 지각 한번 없이 일한 성실한 회사원이셨다.
성실함이 습관 같은 아버지는 요령 없이 경비 생활을 하고 있음을 잘 안다. 그래서인지 아파트 주민들이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께 이것저것 잘 챙겨준다고 한다.
고마운 일이다.

전에 일하던 나의 근무지와 아버지가 경비 생활을 하고 있는 아파트가 가까워서 가끔 함께 점심을 먹었다.
점심시간에 찾아가면 아침내 단지 내 청소를 하고, 쓰레기 분리수거 정리를 하고 난 뒤라 항상 땀이 범벅이셨다. 땀에 젖은 얇은 머리카락을 넘기며, 일은 할만하냐고 물으시며 환희 웃는 아버지.



한 번은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 멀리서 박스가 실린 리어카를 끌고 오는 경비아저씨가 보였다.
아버지였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내 기억 속 젊고 힘센 아버지가 아닌 작고 야윈 할아버지의 모습이 나의 시야에 머물렀다.
아버지!

그리고 울컥함

아버지와 점심으로 국밥을 먹던 날.

딸과 점심을 먹을 수 있어 행복한 아버지의 눈가엔
주름들이 많이 새겨져 있었고,
젓가락을 든 손마디는 굵어져 있었으며
까만 머리카락은 몇 안 되는 하얀 머리카락들이 눈에 들어왔다.

점심시간에 직장동료들과 커피 한잔 하는 시간에 아빠에게 올 걸.

더 자주 올 걸. 그날 나는 괜한 후회와 미안함에 국밥만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누군가 나에게 "현재 아버지께서 무슨 일 하십니까?"라는 물음에
-경비 생활을 하고 있다고 답을 하면
-에고, 경비일이 보통 일이 아닐 건데...라고들 말한다.

그 보통일이 아닌 것을 보통일인 듯 나의 아버지는 하고 계신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경비일을 하고 계시다 보니 경비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아버지가 생각나서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그분도 보통 누군가의 가장이자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아버지, 존경받는 아버지일 터

그래서인지
종이 박스가 엉망진창으로 널브러져 있거나 분리수거가 제대로 안되어 있는 모습을 보면 참 화가 난다.
마구마구 버림이 쌓여 지저분해진 곳을 누군가가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
단단히 무장을 해도 뚫고 들어오는 찬바람이 강한 날
경비아저씨가 분리수거장에 종이박스를 정리하고 계셨다.
어느 집에서 이사를 갔는지, 책 정리를 했는지 박스며 책이며 던져 놓은 듯이 마구 버려져 있었다.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나왔다.

치울 엄두조차 안나는 곳에서 혼자서 차곡차곡 정리하시는 경비아저씨께 '좀 도와드릴까요?'라고 했더니
"누가 바빴는지 던 지 듯 버리고 가버렸네요. 버릴 쓰레기 저 주시고 추우니깐 얼른 들어가세요."라는 말씀을 남기고서 청소를 이어가셨다.

종이컵에 따뜻한 커피라도 드릴 껄 그랬다.

우리 아버지도 다른 곳에서 이와 같은 일을 하고 계신다.


1년 전이었을까?


유난히도 분리수거가 엉망이고, 종량제가 시작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냥 일반 봉투에 쓰레기를 투척하고 몰래 내빼는 일이 잦은 곳에서 청소를 하다가 얇은 유리 조각이 손가락 끝에 깊숙이 들어가 쉽게 빼지도 못하고 x-ray 검사 후 결국 살을 찢고 빼내서 한참을 손가락에 붕대를 감으신 일이 떠올랐다.
그래서 제 멋대로 버려져 있는 단지 내 쓰레기장의 모습을 보면 괜히 화가 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들어 온 쓰레기를 좋게 잘 버렸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겐 아버지일 이분들이 조금이라도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게...

4월, 슬슬 봄을 실은 바람이 불어온다.

아빠가 경비일을 시작한 후 집 안 행사, 생일, 기념일, 명절을 제 때 챙긴 일이 없다.
꽃이 예쁘게 피는 곳에 여유부리며 같이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은데 이 또한 어렵다.

그 다음날 새벽에 출근해야 하니깐.
언제 끔 길게 가족 여행을 한 번 다녀올 수 있을까?

궂은 일이라도, 힘은 들어도 더 힘들 일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며 아빠는 경비일에 만족한다고 하신다.

친정에 다녀온 후
주머니 외투에서 뒤늦게 발견한
아버지께서 넣어둔 쪽지와 용돈


새벽 출근에 인사도 못하고 집에 왔는데 손주 예쁘게 이발시키라는 인사와 용돈이 아버지 맘을 대신하고 있었다.

꼬깃한 종이 위에 쓰인 아버지의 글씨에서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온 마음이 남아있었다.

그래서 아들 앨범에 이 종이를 고이 펴서 붙여두었다.

-너를 향한 할아버지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있단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종이가 되었다.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경비 생활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식에게, 손주에게 더 주고 싶은 게 많기에


주민들이 좀 더 편하고 깨끗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아빠의 몫이라고 말씀하시는 우리 아버지는

참 좋은 경비아저씨다.

친정에 갈 때마다 손주 용돈을 주는 일이 낙이라는 나의 아버지는 경비아저씨

(어느 꼬맹이에겐 할아버지)



뉴스에 나오는 경비 생활과 관련한 안하무인의 사건을 볼 때마다 너무 속상하고 안타깝고 화가 나고 그렇다.

힘듦과 고됨을 무릅쓰고 경비 생활을 하는 아저씨들의 봉급과 근무 조건과 환경이 좀 더 수월했으면 좋겠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아침 쓰레기를 버리러 다녀오는 길 정리된 쓰레기장을 보았다.


벌써 다녀가셨나 보다.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된 곳이 난리 나는 것은 순식간.

오늘도 고생하시겠구나.


나라도 잘 정리해서 버려야지.

오늘따라(영상통화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

아버지가 보고 싶다.

많이...




오늘도 성실하게 경비 생활을 하고 계실 아버지를 생각하며 쓴 어느 딸의 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