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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 사는 로젠 Dec 18. 2023

01_방문 예고 편지

'본받을 만한 사표도

뚜렷한 지향도 없어 스산하기 짝이 없는 시대'


l 태평양을 건너온 큰 뉴스 l

                                 

    2005년 7월 어느 날 길쭉한 편지가 와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이사를 했는데, 전에 이 집에 살던 사람이 집주소를 사업장으로 올려 두었는지 간혹 외국에서 국제 우편이 왔다. 해외하고 거래하는 일이었나 보다. 그날도 큰 편지봉투가 내 우편함에 있길래 그런 편지려니 했다. 다만 겉봉투 글씨가 우리 엄마체 한글이었다. 한국 현대사의 암흑같은 시기를 다 겪고 거기다 여자라는 편견에 갇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한글이나마 어떻게든 깨친 할머니들의 정감넘치는 한글체 말이다. (옆 동네 사시는) 엄마가 나한테 편지를? 하다가 기울어진 내 주소 끝에 영어가 조금 보였다. 나는 이 영어 글씨체를 바로 알아보았다. 멀더는 가끔 이메일로 소식을 보내기는 했으나, 보통은 영어로 쓴 단체 메일이었다. 단체 메일이니 일일이 답장하지 않았고 '그런가 보다' 했다. 무료로 수업을 제공하였으나 그다지 친절하지는 않은 한국인이다. 하하. 자그마치 A4 용지 두장에 걸쳐 영어 한마디 없이 오로지 한국어로만 그것도 손으로 쓴 편지! 반갑고 웃음나오고 놀라웠다.


   ㅣ오랫동안 소식이 없어서 '채성'(죄송)합니다ㅣ 


    멀더의 편지는 암호 수준은 아니었으나 해독이 필요한 문장들이었다. 그는 나에게 한국어로 이메일을 보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또 내가 한글 키보드를 보내주었는데 계속 영어로만 이메일을 보내려니 그것도 아니다 싶었나 보다.  한글을 쓸 수 있는 컴퓨터를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LA에서 사는 친구한테 받았단다. 그런데 어찌어찌해서 한국어를 쓸 수 있는 인터넷 프로그램으로 연결이 안 된단다. 언젠가는 그 프로그램을 사겠단다. 결론은 편지만이 유일한 연락 수단이라는 것이다. '키버드(키보드)를 보내 주어서 감사하다'라는 인사를 반년 만에 편지에서 받았다 반말로. 그리고 나더러는 이순신의 책을 다 읽었냐고 물었다. 2003년 11월에 읽고 있었으면 2005년 7월에는 다 읽었겠지? 하하하하.( 『난중일기』완역판이 그때쯤 출간되었다.)

   영화의 '시도(도시)'인 LA에서 지내고 있는데, 거기 코리아타운(Koreatown)에서 한국친구들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있단다. 오! 한국어 쉬운 한 문장이 정확하게 구사되지 않는 상태로 한국을 떠났는데, 반년동안에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는지 '한국어를 깊게 이해하고 싶은 것이다.'라는 선언(?)도 들어 있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언제나 놀라운 그다. (그니까 뉴욕에 사는 것은 아니었네...) 게다가 편지를 통해 전한 가장 큰 뉴스는 그해 10월에 서울을 다시 방문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그 큰 뉴스(Big News)를 손글씨로 꼭꼭 눌러가며 썼다. 한국에 다시 가서 한국어를 더 열심히 배우고 싶다는 것이다. 편지의 마지막 구절은 큰 울림이 있었다. 문학적이었다.

우리 같이 정로에서 걷고 우리 생인의 작은 추억들에 위해서 얘기할 것이다.
우리 같이 종로를 걸으면서 우리 인생의 작은 추억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거예요.




정민 선생이 말했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정민,『미쳐야 미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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