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누아르, 여섯 개의 원작

피아노 치는 소녀들

by 모든 한국학

'우리가 곤경에 빠지는 것은 몰라서가 아니다. 무엇을 확실하게 안다는 착각때문이다.'

-영화 <빅 쇼트 The Big Shorts>


오랫동안 봐 온 그림 초등학교 다딜때였다. 5학년쯤으로 기억하는데, 그 해 달력이 프랑스 화가 르누아르 (Renoir) 그림이었다. 1년 내내 르누아르 그림을 본 것이다. 그림과 제목을 일일이 다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학창 시절을 지나면서 어디선가 르누아르의 그림만은 알아보게 되었다. 르누아르 그림이 서울에 오기 시작하고 여러 전시회를 통해 내가 어렸을 적에 달력에서 보았던 그림을 원화로 보았다. 르누아르 그림에 한해서 일종의 조기 교육이었는데, 본의 아닌 조기 교육은 반작용이 따른다. 르누아르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내가 봤던 그림을 실물로 보는 정도로 만족했다. 세상에 그림이 얼마나 많은가. 르누아르의 화풍이라는 프랑스 인상주의 작품만 해도 다 처음 보는 그림들이다. 그런데 이미 알고 있는 그림을 굳이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언제 그렸는지 혹은 그림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파고들지 않았다. 가령, 유난히 기억에 남은 긴 갈색 머리의 소녀 그림이 '이렌느 가앵 당베르' (1879)라는 것을 연결시켜 기억하지 않았다.

이레느 카앵 당베르, 1879

달력 그림으로 알게 된 르누아르 작품에 대한 선입견은 2024년에 뉴욕메트로 폴리탄 박물관(The MET, 더 메트)에서도 작동했다. 르누아르의 작품을 거의 시큰둥하게 지나쳤다. 서울에 온 르누아르 전시는 거의 다 가봤다고 자부하면서, 다른 화가의 처음 보는 그림만도 다 못 보는 지경이라, 르누아르의 그림이 얼마나 많은지 소장처마다 다른 그림을 가지고 있다는 그런 생각에 닿지 않았다. 다만, 뭔가 무의식적으로 아쉽다는 생각은 있었는지 르누아르의 그림이 들어있는 엽서 묶음을 사 오는 걸로 대신했다. 나는 원화보다 엽서나 달력의 그림으로 보는 것이 더 익숙했었던 것일까. 르누아르 그림에 대한 이러한 개인적인 태도가 문제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수수께끼 같은 데자뷔 지난여름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 갔다. '프랑스 오랑주리 오르세 미술관 세잔 르누아르 특별전'이었다. 평소 가깝게 지냈다는 르누아르와 세잔(1839~1906)의 그림만으로 구성되었다. 오르세 미술관. 옛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바꾼 이야기가 혁신처럼 들리던 때로부터 거의 20년은 흐른 것 같고, 오르세 미술관의 작품이 서울 나들이를 하는 것도 이제는 몇 년 주기를 가지고 감상이 가능하다는 믿음(?)도 생겼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자주 들어본 이름은 아니었는데, 세잔의 그림을 볼 수 있다니 일찌감치 얼리버드 티켓을 구입해 놓았다.

전시 작품을 미리 보기 하지 않은 채 갔는데,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 있었다. 르누아르나 그림의 유명세에 비해 <피아노 치는 소녀들>은 꽤나 자주 오는 편이다. 특별히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 단독으로 걸려 있었다. 전시 공간의 배경도 분홍색과 보라색이 그림 안의 배경과 잘 어울려 독자적인 공간 전체가, 두 소녀가 앉아있던 집 안의 액자 밖의 배경을 보는 듯하였다. 참으로 오랫동안 여러 번 본 것 같은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다. 나는 이 작품을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전'에서 처음 보았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것이다. 이 날은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평일이라 관람객도 많지 않은 데다,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다 보니 그림 앞에서 쭈빗대거나 서성거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온전히 그림만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전시장의 다른 르누아르의 그림에 비해 색감이 선명하지 않은 듯하다. 인상주의는 빛을 화면에 담아내는 기법을 쓴다는데 이 작품에서 빛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감상도 그날 처음 들기는 하였다. 르누아르가 살았던 시대와 100년 이상의 차이는 나지만, 피아노 앞에 앉는 소녀들이 불러 일으키는 독특한 감수성이 있다. 그림을 보고 나오는데 그림 설명에 소장처가 새삼 눈에 띄었다. 소장처가 오랑주리 미술관이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오르세 미술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나는 소장처가 오르세 미술관에서 오랑주리 미술관으로로 바뀌었구나라고 생각했다. 불현듯 2024년에 뉴욕 더 메트에서도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 그림을 스쳐지나간 것이 떠올랐다.


하나의 큰 착각이 깨지며 모든 것이 늘어진 폭염 속에서 몽롱했던 의식이 깬 느낌이었다. 그림 앞으로 다시 가서 꼼짝 않고 바라보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궁금증이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아 발길을 돌릴 수가 없어 전시장을 다시 한번 뱅뱅 돌다가, 그림과 제목과 소장처를 다시 보았다. 불과 작년에 뉴욕에 걸려 있던 그림이 올해 프랑스로 소장처가 바뀌어서 서울에 왔을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하철 역으로 총총 걸음을 옮겼다. 남부터미널 벽에 능소화가 흘러내리듯이 피어있었는데 그중 하나의 꽃이 폭염의 열기를 뚫고 잎을 펼치고 있었다. 원화가 최소 2개라고 짐작할 수밖에.

집에 돌아와 뉴욕 더 메트(The MET)에서 사 온 명화 엽서부터 확인했다. 더 메트에 소장 중인 18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의 대표작을 엄선한 엽서 묶음이다. 르누아르의 <피아노 앞에 앉은 두 소녀>는 역시나 '더 메트'에도 소장 중이다. 다만 놀랍게도 다른 그림이었다. 같은 구도에서 같은 인물을 그렸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다른 그림이다. 그날 전시회에서 본 오랑주리 소장본이 색감이 소녀 같다면 뉴욕 메트 소장본은 선명하며 화려한 느낌이다. 나도 나름 눈썰미가 좋은 편인데, 대상의 손위치까지 기억하지는 모르겠으나 색감이 차이가 뚜렸한 점을 어찌하여 놓쳤을까. 그럼 내가 오르세 미술관 전시회에서 본 그림은 이중 어느 것이었을까? 나의 오만한 착각은 바로 깨졌다. 오르세 미술관 뉴욕 더 메트 리먼 컬렉션, 오랑주리 미술관의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들>은 모두 다른 그림이었다.


오르세 미술관(프랑스), 리먼 컬렉션(뉴욕), 오랑주리 미술관(프랑스)

내가 차이를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봐 온 그림의 순서다. 오르세본은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도록을 통해 내가 본 적이 있음을 확인했다. 가운데 그림이 2024년에 뉴욕에서 안 보고 엽서로 사 온 작품이다. 내가 서울에서 본 오르세본과 같은 것이라고 추호도 의심하지 않고 지나친 작품이다. 가장 오른쪽에 그림이 지난여름 나의 완전한 착각을 깨운 오랑주리 소장본이다. 내가 오랫동안 하나의 그림으로 인식했던 그림이 모두 다른 그림이었다. 조금의 관심만 기울여도 구별이 가능한 일이었다. 내가 르누아르 그림을 구별하지 못해서 곤경에 빠질 일은 없을 것이다. 이게 무슨 같은 그림 다른 것 찾기냐? 하고 가벼운 일로 넘기거나, 나의 오만한 선입견에 대해 그저 헛웃음을 짓고 말일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지난 시간의 스스로의 오류를 당장 수정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 되었다. 나는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 혹은 '피아노 앞에 앉는 두 소녀'를 그린 그림이 더 있는지 찾아보지 않으면 안되었다.



'한 번의 주사위가 결코 우연을 없애지 못하리라.'

- 스테판 말라르메 (프랑스, 1842~1898)


여섯 번의 주사위 던지기 르누아르가 1892년에 그린 <피아노 치는 소녀들>은 모두 6점이었다. (유화 5점과 파스텔화 1점)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41~1919)는 189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뤽상부르 (룩셈부르크) 미술관에 전시할 그림을 의뢰받아 <피아노 치는 소녀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작품의 프랑스어 원제는 (Jeunes filles au piano)는 영어로 피아노 앞의 소녀들 Girls at a Piano, 혹은 피아노 치는 두 소녀 Two young girls at the Piono 등으로 이름붙여졌다.

처음 작품을 의뢰한 공식 주문 작은 룩셈부르크 박물관을 거쳐 현재 오르세 미술관이 소장처가 되었다. 뉴욕 더 메트 본은 프랑스의 화상 뒤랑-뤼엘(Galerie Durand-Ruel, Paris)의 소장을 거쳐 현재 더 매트(리먼 컬렉션)에 이르렀다. 르누아르의 후원자였던 귀스타브 카유보트(Gustave Caillebotte)가 1점을 소장하게 되었다. 1892년 그린 그림 중 1점은 르누아르 본인이 소장했다고 한다. [르누아르, 인생의 아름다움을 즐긴 인상주의 화가, 마로니에 북스, p93.] 르누아르 본인이 소장했던 1점은 사후 오랑주리 미술관 본이 되었다.

이렇게 유화 5점 중에서 4점의 소장 경로를 확인하였고, 그중 개인 소장본 (귀스타브 카유보트 Gustave Caillebotte)은 일반 공개된 적이 없었으나, 오르세 본과 같은 그림으로 확인되어 <피아노 치는 소녀들> 연작 카탈로그 번호는 부여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해당 도서의 제목까지 확인해 보았으나 검색만으로는 접근하지 못했다. 나머지 미술사가들이 실물로 확인한 파스텔본 역시 일반공개 없이 지금까지 개인 소장으로 남아있다. 남은 유화 1점의 행방은 묘연하였는데, 정말 광기를 가진 검색의 끝에 마침내 현재 소장처를 찾게 되었다. 유럽이 아닌 유럽, 러시아 예르미타시 박물관(The State Hermitage Museum, St. Petersburg)에 소장 중이다.


러시아, 예르미타시 박물관 (소장품 번호. ЗКРсэ-227)


박물관 홈페이지에 이미지와 전시 공간의 위치가 공개돼 있다. 조금 당황스러움을 안겨준 그림이지만, 구도와 대상을 보았을 때, 르누아르의 피아노 앞의 어린 소녀들을 그린 그림이 맞다. '수채화처럼 희미하지만, 서 있는 소녀는 갈색 머리에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고, 앉아 있는 소녀는 금발에 흰색 드레스를 입고 있다.' (예르미타시 작품 안내 중) 기본 구도나 손의 모양을 보니 오르셰 미술관 본과 가장 유사하다. 누가봐도 밑그림, 습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미완성의 그림인데, 예르미타시 소장본은 그 자체로 독립된 원작으로 공식화되었다. 르누아르 본인이 공식 사인을 넣어 완성작으로 남겼다는 추가 설명이 있다. (러시아로의 편입 과정은 20세기 초반 수집가 세르게이 슈킨(Sergei Shchukin), 이반 모로조프(Ivan Morozov)라는 인물을 확인한 정도이다.) 그냥 일반인의 관점으로 예르미타시본이 1892년 국가 주문으로 시작된 '피아노 치는 소녀들'의 최초의 습작본의 아니었을까 추정되지만, 정작 르누아르는 모든 작품에 원작의 의미를 부여했다. (비공개 상태인 파스텔화 1점도 파스텔 본으로 원작인 셈이다.)


앞서 확인한 프랑스나 뉴욕 소장처의 그림과 나란히 본다면 예르미타시본이 처음 그려본 습작 버전으로 보인다. 최초의 습작은 완성작을 향한 밑그림에 불과한 것인데, 르누아르가 6점 모든 작품을 독립된 원작으로 남긴 것은 나에게 또 하나의 고정 관념을 깨는 새로운 질문이 되었다. 1892년의 국가 공식 구매는 작가에게는 자신의 그림이 공적으로 인정을 받는 결정적인 기회였을 것이며, 그렇다면 완성작을 제공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나의 주제를 여섯 번이나 반복하여 그린 것은 그런 노력의 일환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이러한 노력의 이유는 하나의 '완전한' '절대적' 결과물을 도출하고자 함이었을 텐데, 미완성 습작부터 (예르미타시본) 스케치본(오랑주리본) 국가 구매작(오르셰본) 개인 컬렉션 구매작(더 메트본)에 이르는 모든 작품을 원작으로 부여한 의미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가 르누아르와 교류가 있었다는 사실도 이 과정 중에 처음 알게 되었다. 말라르메의 흥미로운 격언 '한 번의 주사위가 결코 우연을 없애지 못하리라.'으로 어쩌면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 그림 6점에 부여된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르누아르가 습작을 시작으로 같은 주제의 그림을 여러 번 반복해 그리면서 완벽하게 '우연을 없앴다면', 단 하나의 '절대적인' 걸작만이 남았어야 한다. 그러나 르누아르의 결론은 여섯 작품 모두 독립적인 미적 가치를 지녔다고 본 것이다. 이는 아무리 노력해도 르누아르가 화면에 담고자 했던 '가장 이상적인 가장 아름다운 피아노 치는 소녀들'은 하나의 고정된 모습으로 표현되지 않았고, 매번 새로운 그림(우연)이 되었음을 스스로 알았던 것 아닐까. 여섯 점 모두가 르누아르의 <피아노 치는 소녀들>의 원작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현재 서울에서 르누아르 <피아노 치는 소녀> 두 가지 버전을 감상할 수 있다.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오랑주리 소장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뉴욕 리먼 컬렉션 소장본 원화가 전시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