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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 사는 로젠 Nov 16. 2023

한국어를 배우는 시간

  

모든 열매가 딸기와 동시에 익는다고

상상하는 자는

포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파라겔수스

                                                                      

 태초에 휘파람이 있었다. 

    

   이 모든 이야기는 1999년 싱가포르에서 시작되었다. 그해 나는 업무적인 일로 싱가포르에 몇 달간 체류하였다. 당시 나는 서울의 한 사설 학원에서 국어 강사로 일했는데, 싱가포르 현지 한인 학원에 고등부 담당으로 파견되었다. 싱가포르 거주 교포학생들을 위한 한국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가르치고 있던 개인학원이었다.

    내가 살았던 집에 가정부 엘마가 있었다. 필리핀 사람인 엘마는 고등학교 졸업 후에 싱가포르에 일자리를 구하러 왔는 데, 한국어는 모르지만 한국인 집에서 일하게 되었단다. 그녀는 설거지를 할 때마다 휘파람을 자주 불었다. 엘마와 나만 집에 있던 어느 주말, 그날도 부엌 쪽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나는 엘마와 얘기를 하고 싶어 다가갔다. 고등학교까지 다녔다는데, 엘마는 생활 영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사하였다. 물론 내가 영어 전공이 아니지만, 집안일을 도와주는 엘마보다 쉬운 영어도 잘 안 되는 것이 처음에는 민망하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녀의 휘파람 소리를 들을 때마다 한국말로 알려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던 것이다. 휘파람을 불고 있는 엘마에게 다가가서 내가 한국말로 먼저 '휘파람'이라고 쓰고, 이 말의 한국말 발음을 알려 주었다. 엉성하기 짝이 없는 영어로 버벅대며 설명해 주었다.  '지금 엘마가 내는 소리를 한국말로 휘파람이라고 해'라고 말이다.

   한국말로 발음하기도 쉽지 않은 '휘파람'이라는 소리를 궁금해하지도 않은 엘마에게 강제로 알려주느라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고 땀이 흘렀다. 그 10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내가 왜 이러고 있지?'라는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솟아올랐다.  정말 이 갑작스러운 뜬금없는 생뚱맞은 나의 한국어 수업에 엘마는 기꺼이 응해 주었고, 약 대 여섯 번의 발음으로 그녀는 '휘파람'을 한국말로 발음하는 데 성공하였다. 뜨거운 여름날 두부와 야채를 파는 아저씨가 텅 빈 동네를 한 바퀴 휙돌고 나갈 정도의 짧은 수업이었으나 나는 그때 정체 모를 뿌듯함이 온몸에 가득 찼다.  그렇게 내가 외국인에게 처음 가르친 한국말은 휘파람이다.  

   그날 이후에도 엘마는 집안일을 하면서 휘파람을 불었고 나와 마주치면 ‘휘파람’이라고 소리 내어 말했다. 휘파람이라는 한국말은 우리 사이에는 안녕이라는 인사를 대신하는 말이 되었고, 우리가 친구가 되었음을 확인하는 말이 되었다. 그날 이후 내가 엘마에게 더 알려준 한국말은 없다. 그녀가 나에게 한국말을 더 알려달라는 요청도 없었다. 단지 엘마에게 한국말을 알려 준 그 태초의 시간이  삶의 방향을 약간 돌려놓았다. 나는 국어를 한국어로 인식하게 되었고, 내가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모국어에 들어있는 문화와 역사를 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국문학을 한국 문학으로 우리 문화를 한국 문화로 바라보는 시각에 눈을 뜬 것이다.     

   한 학기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나는 사설 학원에서 계속 국어 강사로 일하면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알려주는 방법을  모색하던 중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격증을 발급하는 교육 과정을 찾았다. 선구자들이 이미 그 길을 가고 있었다. 지금은 자격증을 떠나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당시는 이 분야의 민간 자격증도 막 시작하는 단계였다. 나는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치는 6개월 교육 과정을 마치고 다음 해에 한국어 강사 민간자격증을 받았다. 대학 4학년말에 졸업학점을 겨우 턱걸이해서 졸업생 명단에 올랐을 때, 지도교수가 최종 학점을 확인하고는 학점이 1점 남았네 세상의 이런 일이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봤었다. 그랬던 내가 한국어 강사 자격증 과정에서는 탑에 이르는 성적을 내었다. 나는 뭔가 큰 깨달음을 얻은 자 같이 진지하였다. (후에 나는 국가자격시험을 통하여 정식으로 한국어교원 자격을 취득하였다.)            

   2003년 8월에 이르러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서 외국인에게 한국말을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이 글은 내가 서울의 한 모퉁이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한 한국어 수업을 기록한 개인적 후기에서 출발하였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는 분명히 도움 될만한 경험이나, 온전히 배움에 국한된 글이 아니다. 삶에 대한 글이다.  





*파라겔수스 (Paracelsus, 1493~1541)

*커버사진 : 맥스웰 하우스, 싱가포르,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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