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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민우 May 23. 2018

아픔이 길이 되려면

질병의 책임을 묻는 새로운 시각


사회적 환경과 완전히 단절되어 진행되는 병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김승섭 교수의 책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사회역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회역학이란 질병의 사회적 원인을 찾고,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꿔 사람들이 더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는 학문이라고 한다. 사회역학에서 질병을 바라보는 시각은 굉장히 흥미로운데, 우리는 보통 질병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는 반면 사회역한에선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


우리는 누군가 감기에 걸렸다면 그 원인은 그 사람이 추운 곳에 오래 있었거나,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짐작한다. 감기의 원인을 개인이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추측은 틀리지 않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러한 이유로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는다. 그렇다면 감기 환자를 줄이기 위해 사람들에게 "추운 곳에 오래 있지 마시고 예방접종을 제때 받으시기 바랍니다."라고 권고하도록 하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같은 원인으로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는다. 어째서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사회적 환경은 주어진 고정물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토대 위에서 형성된 것인데도, 왜 질병의 원인을 항상 개인 차원의 고정된 요인으로만 가정하는지 질문한 것입니다. … 질병의 원인을 개별적으로 개인 차원에서만 고려할 때 우리가 놓치는 점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지요. 어떤 이가 박테리아에 노출되어 결핵에 걸리고, 또 다른 이가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린다고 이야기하고 끝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 『아픔이 길이 되려면』 中


일반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면 여전히 질병의 책임은 개인에게 있다. 그들이 권고했던 사항들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그 원인이 온전히 개인에게만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사회역학에서 추구하는 학문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역학자들은 왜 감기 환자들은 추운 곳에 오래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왜 예방접종을 제때 받을 수 없었는지를 묻고 그 원인을 추적한다. 이 과정에서 질병의 사회적 원인이 드러난다.


한 겨울 최소한의 난방시설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해야 하는 노동자들, 예방접종 시기와 방법에 대해 무지한 독거노인들, 부모의 관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결손가정의 아이들, 이들에게 있어서 감기의 원인은 개선되지 않는 근무환경과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의 무관심이다. 이는 개인보다는 사회적인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즉, 그들이 걸린 질병의 책임은 일정 부분 사회의 몫인 것이다.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전에 사회심리학과 관련된 수업을 들으면서 이와 비슷한 문제를 맞닥뜨렸던 적이 있다. 범죄자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에 관한 문제였다. 사회심리학에서 말하길 인간은 근본귀인오류라는 인지 경향을 갖고 있다. 이는 누군가 잘못된 행동을 저질렀을 때 그 행동의 원인을 행위자의 내적요인으로만 귀인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사람들은 누군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 원인을 해당 범죄자의 개인적 결함에서 찾는다. 애당초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었기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는 범죄자에 대한 맹목적인 비난을 용인한다. 범죄의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 떠넘긴 결과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굉장히 폭력적인 사고의 축약이 내포되어 있다. 앞선 예에서 감기의 책임을 온전히 개인에게 떠넘긴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범죄자들을 비난하기 이전에 그들이 왜 범죄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물어봐야 한다. 그들이 범죄라는 선택지를 택하기까지 그들에게 어떤 사회적 작용들이 있었는지를 추적해야 한다. 범죄자를 동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범죄라는 질병의 명확한 원인을 찾고 이를 개선해 같은 원인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만약 이러한 사실들을 외면하고 범죄의, 질병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떠넘긴다면 이는 영원히 치료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같은 원인으로 감기에 걸려 병원을 찾을 거고 누군가는 똑같은 범죄를 반복할 것이다.


사회적 원인에 의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대개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약자들이다. 그렇기에 더 우리는 질병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외면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와는 먼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사회라는 집단의 한 일원이고 이건 우리 사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김승섭 교수는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공동체의 수준은 한 사회에서 모든 혜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건강한 사회를 위해 이 책의 제목처럼 아픔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크고 작은 질병들이 하루를 멀다하고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특히 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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