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엄마 치마폭 잡고 뒤로 숨어서는 감꽃이 몇 개 달렸는지 세는 것을 보면서 해방이 뭔지는 몰랐어도 일본 놈들이 무섭다는 것쯤은 알았다
저녁때가 되면 먹을 것이 없어라도 물이라도 끓이는데 굴뚝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면 그 놈들이 연기처럼 나타나서는 솥단지 안을 주걱으로 휙! 휙! 젓는데 그 때 주걱에 뭐라도 걸리면 안된다 젓을 때 주걱이 쑥쑥 나가야지 젓다가 빡빡하면 그것을 퍼가지고 가버리는데 밥이 덜 되도 탁! 엎어가지고 가버리는데 가면서는 쌀을 감춰놨다고 난리를 쳐댔다 죽도 뻑뻑하면 안된다 그 때는 보리밥이라도 먹고 산 집은 있는 집이고 싸래기도 없어서 송피 벗겨서 먹었는데 일본 놈들이 넘의 나라에 와서는 솥단지까지 뒤져서 가져 갔던 것이다 익지도 않은 보리수 열매를 먹은 것처럼 떫떠름한 것이 목구멍에 걸려서는 우는 것도 맘대로 못 울던 그런 때였다
그것이 나라를 잃어버려서 생긴 일이라는 것을 해방이, 일본 놈들한테서 벗어났다는 말이라는 것을 엄마 목젓이 보이게 키가 크고 나서야 알았다 이제는 감꽃 개수도 세러 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그제서야 알았다 일제강점기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