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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우 Nov 07. 2021

지구별을 노래하는 연우와 어린왕자

그루터기

그루터기      /    유설 정연우


모는 자라서 벼가 된다

모는 줄지어 나란히 서면서부터 질서를 배운다

모는 모와의 사이(관계)를 안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갈라지던 바닥을

실타래 뿌리로 버티고

한여름 쐐기처럼 퍼붓던 장맛비를

가녀린 허리로 막아낸다

한여름 고단했던 여정은 하늘이 높아지면서

벼로 다시 태어난다


바람이 불어오고

하늘 끝 가장자리 머물던 태양이 내려오면

벼는 고개를 숙인다

그 계절 끝에 황금빛으로 무르익던

벼의 심장소리 거칠게 하는 건

참새의 출현이다

두 주먹 불끈 쥔 허수아비

두 팔 벌려 논둑에 서 보지만

쌀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은

산통과도 같다


드높은 하늘 눈 시리던 날에

벼는 만삭의 몸을 푼다

서슬퍼런 칼날 앞에서

나락으로 볏짚으로

내 몸 다 내어주고 나면

마른 눈물은

흰 진액으로 펌푸질 해댄다


다 내어주기 위한 삶은

처음 모로 섰던 자리에

그루터기로 남는다


살을 에는 한겨울 너른 들판에

생채기 그대로인 그루터기에도

지난 봄의 기억이 남아

숨어서도 새 순이 돋는다


허기진 외기러기 찾아들면 반가운 마음에

아직 남아있던 그루터기까지 비우니

그  자리에 자운영 보랏빛으로 숨을 쉰다.


#문학춘추당선작 5편 중 2


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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