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주를 목표로 시작한 글쓰기 수업이 끝을 달리고 있다. 글쓰기가 싫은 아이들을 억지로 쓰게 했더니 '이 시간은 다 써야 나갈 수 있구나...' 체념한 표정으로 앉아있다.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50분간 글쓰기 시간. 몇몇 아이들은 나를 기다렸다고 반갑게 맞아주지만, 꾸러기 악동들은 시작하자마자 언제 나갈 수 있냐고 묻는다. 시작부터 기운이 빠진다. 그런 아이들을 앉혀놓고 매주 글쓰기 수업을 하니 긴장이 많이 된다.
한 아이가 "선생님 뒷장에도 써도 돼요?'라고 묻는다. 쓰기 싫다고 도망 다니던 아이가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고, 한 장 쓰던 아이가 뒷장까지 쓰겠다고 하는 교실 풍경은 상상도 못 한 전개다. 어찌 됐건 뭐라도 쓰니 다행이다. 꾸준함의 힘은 대단하다. 처음엔 단어만, 그러다 겨우 문장 한 줄 쓰던 아이들이 이제 제법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어낸다.
아이들 호칭을 "작가님"이라고 불렀다. '로운작가님의 글을 읽어줄게요~'라고 하면 로운 작가님의 입꼬리가 씰룩씰룩 올라가고,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진다. 어떤 아이는 대놓고 "제 글은 왜 소개 안 해줘요." 묻는다. 주저함 없이 원하는 걸 요구한다. 우리 때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진짜 책을 내는 거냐며, 서점에서 판매를 하냐고, 매번 반복해서 묻곤 한다. 지금처럼 열심히 쓴다면 언젠가 진짜 책을 낼 수 있을 거라 말해줬다. 진짜 작가가 되면 어떨까? 아이들의 눈빛에 희망이 비친다.
꼬마 작가님들에게 스토리보드 짜는 법을 알려줬다. 꼭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일지도 모르지만,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스토리보드라 하면 거창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면 쓴 글을 모아 다시 정리하는 과정이다. 아이들은 지금까지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글을 썼다는 것을 보고 자랑스러워했다. 그걸 알려주고 싶었다. 처음엔 쓰기 싫고 어려웠는데 이렇게 모아 놓으니 책이 된다는 결과물을 미리 보여주고 싶었다. 차곡차곡 쌓인 글이 책이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고 싶었다.
스토리보드를 짠 후엔, 지금까지 쓴 글을 모아 목차를 만들었다. 미리 적어놓은 글을 따라 쓰는 쉬운 작업이지만 이 과정도 알려주고 싶었다. '책을 쓸 땐 목차를 써야 하는구나.. ' 아이들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실제 책을 보면서 겉엔 표지가 있고 한 장 넘기면 작가 소개가 있고, 다음 장엔 목차가 있고 본격적으로 글이 시작되고 마무리 표지가 있다는 걸 설명했다. 책이 어떻게 생겼는지 관찰하기가 끝나자 질문이 시작됐다.
"진짜 책을 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해요?"
"우리도 작가가 될 수 있어요?"
너무 궁금해서 묻고 또 묻는다.
책이 무엇이고 책을 읽으면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 나눴다. '책 읽어라~' 잔소리는 아이들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 "글을 써서 책을 냅시다." 라며 동기부여를 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었다.책이 무엇인지 궁금하고 책을 쓰고 싶게 끌어가면 아이들은 글을 쓰고 싶어 진다. 하지만 글쓰기는 쉽지 않다. 글쓰기보다 글 고치기가 더 싫은 아이들은 힘들다며 투덜댄다. 운동은 하기 싫지만 몸짱은 되고 싶고, 100점 맞고 싶지만 공부는 하기 싫은 것처럼 책은 내고 싶은데 글쓰기는 싫은 딱 그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