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오

by 이아인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사흘째 되던 날 그는 무덤을 열고 부활했다고 한다. 그의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어느 날 예수를 따라다니던 두 사람이 예루살렘을 빠져 나와 길을 가고 있었다. 누군가 함께 걸었다. 그가 과거로부터 그때까지 진리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저녁이 되었다. 그들은 그 밤을 함께 묵으며 더 큰 가르침을 주십사고 청했다. 그들이 식탁에 앉아 빵을 나눌 때 불현 듯 알아차렸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식탁에 앉아 있는 이가 누군지를.


성경의 엠마오 사건은 알아차림에 대한 이야기다. 같이 걷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식탁에 앉아 빵을 나누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알아차려야 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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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즈음이 되면 봄소식과 함께 밀려들 듯 피어나던 꽃들이 스러져간다. 꽃들은 더 이상 예쁘지 않다. 예쁘지 못하다. 꽃잎이 찢어지거나 밟히거나 너덜너덜해지기도 한다. 분명한 건 제 몫의 한 생을 잘 살고 진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떠나가는 것들의 시간을 걷는다. 피어날 때가 있으면 질 때가 있는 법. 하늘 아래 영원한 것은 없다는 코헬렛을 듣는다. 떠나온 곳이 있으면 떠나갈 곳도 있을까. 있겠지.


빈 무덤을 찾아간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부활의 그 밤이 지나고 꽃을 찍으러 갔다. 꽃들이 돌아서 가는 중이었다. 드물게 보이는 꽃도 어여쁘다 하고 들여다보면 여기저기 상해 있었다. 지난봄의 자취를 뒤로 하고 떠나는 꽃들을 배웅한다. 한 해 제 몫의 생을 살아낸 꽃들이 떠나고 있는 산을 낙엽에 푹푹 빠지며 헤매다 온다.


빈 무덤을 지샜던 밤이, 다시 허락된 새 아침이 모두에게 부활의 징검다리가 되기를, 그 안에 내 몫도 있기를 덩달아 바라는 하루. 구약의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약속이 시작됐다. 그 순간 “…예수는 인간을 일으켜 세우고 검지로 턱을 받쳐 땅으로 숙였던 얼굴을 들게 한다.”(뒷모습/미셸 투르니에. 현대문학) 그리고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힘으로 살아달라고 청한다. 엠마오의 숲에서 그의 음성을 듣는다. 살아가라, 사랑스러운 존재여. 다시 희망하고 다시 꿈을 시작하라. 폭풍 속에 거의 시들었던 밤이 지났다. 이제 노래 불러라.


IMG_6393.JPG 회리바람꽃(2019. 5. 5.)


회리바람꽃이 꽃 같다는 느낌이 덜했던 건 너무 단정하게도 정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이다.

“너 왜 그렇게 죽은 듯 살고 있니?”

‘죽은 듯’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살면 안 되는 거였다. 그날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회리바람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몸부림을 쳤다. 나풀나풀… 아, 생명은 나풀거리는 거였다. 흔들리는 거였다. 바람결에든 속 깊은 곳에서든 몰려오는 울음을 토해내는 거였다. 참아서 참아서 그림처럼 아무렇지 않게 남몰래 흘리는 눈물만 가져선 안 되는 거였다. 그날 회리바람꽃의 고백을 허버트가 대신 써주었다.


...

그런데 이제 나이 들어 저는 다시 움틉니다.

그토록 숱하게 죽고도 살아나 시를 씁니다.

이슬과 비 냄새를 다시 맡으며

시 쓰는 것을 즐깁니다.

그럴 리는 없습니다.

다름 아닌 제가

밤새 당신의 폭풍을 받았던 그 사람일 리는.

<조지 허버트, 꽃>


IMG_3528.JPG 들바람꽃, 가평(2019. 4. 14.)


그래서 어느날은 기도처럼 몇 마디, 나도 써본다.



그대가 엄동에 떨고 서 있던 저 꽃 한 송이기를

눈물 뚝뚝 지던 그 추운 낮과 밤을 뒤로 하고

오늘 피어난 한 송이 꽃이기를


얼마나 진심 다해 바라는지

빈 무덤에서 잠 못 들었다

잠 못 들고 나도 울었다


사랑받지 못하는

잊혀지는


슬픔에 대하여


그 쓰라린 눈물에서 꽃이 피어나기를

그 쓰디쓴 소금꽃이 찬란히 빛나기를


영원한 것은 없으니

영원하리라고 바라지 않고


한때, 잠시, 그 눈부신 순간이

힘이 되기를.


빈 무덤에서 바라기를

누구나 제 안의 빛을 찾기를

그 빛으로 꽃을 피우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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