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어떤 자리에 들어서며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아무도 없네?”
거기 사람들이 있어도 자신이 기다리는, 혹은 자신이 보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순간 거기 있던 사람들은 유령이 되어버린다.
“나는, 우리는, ‘아무’가 아닌가?”
무슨 뜻인지 알지만 그런 말의 습관이 가끔은 사람들에게 의식될 때가 있다. 분명히 있는데, 원하는 것이 없다고 모든 걸 부정하는 습관이 종종 우리에게 있다.
유명산에 접어들었을 때는 이미 오후 느지막한 시간이었다. 곧 해가 질 시간이어서 그렇잖아도 숨가쁘게 일행을 따라갔다. 나는 초행길이었고, 원체 느렸다. 얼마나 더 가야 할지도 알 수 없고, 얼마나 더 힘들지도 알 수 없었다.
꽃을 찍고 내려오는 듯한 사람들이 일행을 스치며 지나갔다. 그들이 좁은 길을 서둘러 지나가며 중얼거렸다. “빛도 없는데, 뭐하러…”
가뜩이나 힘들게 올라가고 있는데 더 기운이 빠졌다. 아마도 꽃을 보고 내려오는 길 같은데, 기왕이면 격려해줄 순 없나? 차라리 아무 말도 말든가. 사람들이 참 야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자리를 찾아가면 ‘빛’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투덜거리고 불평하기도 한다. 물론 그들은 가장 좋은 빛 속에서 가장 멋진 결과물을 얻고자 한다. 그런 욕구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들은 때로 "빛이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빛이 없는 순간이란 없다. 물론 그 또한 무슨 말인지는 안다. 그럼에도 빛이 맘에 안 든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빛이 없다는 말은 ‘틀린’ 말이지 않은가. 태양은 하루 한 시도 어긋남 없이 운행하고 있다. 시시로 변하는 것은 인간일 뿐이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빛 속에서도 빛을 기대하고 희망한다. ‘보이지 않을 때도 분명히 빛나는’ 빛을 고마워한 사람들이 있다. 아우슈비츠를 겪은 유다인들은 그 극한의 공간에 영혼의 고백을 새겼다.
…나는 빛나지 않을 때에도 태양을 믿습니다.
나는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때에도 사랑을 믿습니다.
나는 하느님이 침묵하실 때에도 하느님을 믿습니다.
그들도 고통스럽고 절망했다. 그들도 피난처를 간절히 바랐다. 하느님의 길고도 긴 침묵에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그들도 찾았다. 자신들이 겪는 고통의 이유를. 도무지 알 수도 없고 받아들이기도 힘든 고통의 이유를, 자신들의 존재의 이유를.
그럼에도 그들은 어둠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이어갔다. 희망은 믿음에서 왔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다고 빛이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깊은 구렁이더라도 외적인 것들이 나를 파괴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두렵고 두렵지만 생명의 존엄과 영원한 자유를 신뢰했다. 죽음이 우리의 끝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세상이 내 맘과 같지 않아도 여전히 선의로 가득하고 아름답고 의미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싶다. 당신이 내 마음에 덜 들어도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고, 그 맘에 안 드는 결핍을 채우고 치유할 수 있도록 마음이라도 보태며 살고 싶다. 꽃을 만나고 꽃을 찍으면서 꽃들의 생이 내게 주는 위로의 말은 그렇다.
...... 내가 핀 자리를 보라. 내가 뿌리를 내리고 가까스로 꽃을 피운 이 순간을 보라. 모든 게 준비돼 있는 개화가 아니다. 스스로 땅 속의 긴 기다림을 견디고 어둠의 두려움을 넘어 단단한 흙을 박차고 피우는 생명이다.
꽃에게는 때로 비나 빛조차 가혹할 때가 있다. 꽃들의 한 생은 무방비상태다. 그렇게 피운 꽃이다.
나는 차마 ‘빛이 없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차마 꽃이 덜 이쁘다는 말을 할 수가 없다. 나는 내 앞에 피어준 꽃에게 그저, 그저, 인사한다. 애썼어, 고마웠어. 만나서 정말 반가워.
빛이 없다고 아쉬워하고 투덜대며 못 찍겠다고 하는 사람들 틈에서, 분명히 빛이 있다는 걸 너무나 잘 느끼게 된다. 반짝이는 빛이 없어도 꽃은 거기 있다. 거기 핀다. 거기 존재한다. ‘없는’ 빛 속에서 꽃은 초연하게 제 존재를 발한다. 나는 오히려 담담하게 ‘없는’ 빛 속의 꽃을 만난다. 빛이 좋으면 시선이 빛에 머문다. 빛이 주인공이 된다. 빛과 꽃이 함께 머무는 순간이야 말할 나위 없이 좋지만 내가 보고자 한 건 꽃이니 나는 됐다. 빛 속이든 빗속이든 꽃이 있으면 됐다.
나는 알고 있다. 빛 속에서 꽃은 영원처럼 존재하고 있다. 그 오후에 ‘빛 없는’ 산을 오르고 올라 수도원의 은자처럼 피어 있는 광릉요강꽃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