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따뜻한 거리

by 이아인


꽃을 찍으려면 적절한 거리가 필수적이다. 바람꽃과의 거리는 처녀치마를 찍는 거리와는 다르다. 그 생각을 놓치면 마구 다가가 버리거나 너무 멀어지고 만다. 적절한 거리란 꽃을 만날 때도 정말 필수적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누구든 사랑에 빠지면 거리를 잊어버린다. 경계를 뛰어넘고 싶어진다. 사랑이 불붙으면 그 불길이 경계를 지운다. 모든 경계가 사라진 꿈같은 시간이 허락되기는 한다. 그러나 그러나 누구나 알듯이, 누구나 겪듯이 불길은 사그라진다. 재가 된 불길 이후에는 심상한 온기로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사랑의 지속이다. 그걸 잊어버리면, 그 온기로 만족하지 못하고 언젠가의 뜨거움을 기대하면서 없는 것, 지나간 것, 사라진 것을 그리워하면 현재를 놓치고 만다.


사랑은 거리가 필요하다. 경계를 잊게 하는 순간은 꽃이 핀 것처럼 순간이다. 꽃이 지듯이 불길도 사라진다. 탈 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대 마소...타오를 때는 재도 안 남을 만큼 뜨거워지되 사랑의 일상 역시 반갑게 맞을 일이다. 우리가, 그 언젠가처럼, 그 뜨거운 열정 속에서 살아야 한다면, 그 에너지를 감당할 수 있을까? 꽃이 져도 그리움으로 기억하듯이 사랑의 뜨거운 열기가 사라진 이후에 진실로 힘이 되는 사랑이 시작된다.




그러나 내 그럴 줄 알았다. 물론 오래 기다리기는 했다. 어디선가 사진 속에서 본 들바람꽃을 오랫동안 보고 싶어했다. 해가 바뀌고 마침내 들바람꽃을 만나러 가는 날, 애써 담담하게 대하리라 마음을 여몄다. 하지만 결국 마음을 홀딱 뺏기고 말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어찌할 수 없는 매혹에 무장해제하고 말았다.


그러니 또 그럴 줄 알았다. 불꽃처럼 달려드는 발길로는 헛발길일 수밖에 없음을 이미 알았으면서 마음만 텀벙텀벙 타올랐으니 돌아와 들여다본 사진 속의 들바람꽃은 내가 눈으로 본 그 꽃이 아니었다. 그 숲의 정경이 아니었다. 내 눈과 마음으로만 너, 가장 곱고 어여뻤다. 그토록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되뇌었으면서도 처음으로 만나는 너, 그토록 오래 기다렸던 너를 향해서는 거리를 둘 수가 없어 더 더 다가갔으니 참으로 이럴 줄 알았다. 멀리서 보아야만 더 어여쁜 존재가 있다는 걸, 배경과 더불어 보아야만 온전히 아름다운 존재가 있다는 걸, 또 한 번 대책없이 뜨거워진 마음이 또 한 번 애석한 반성을 가져왔다. 그저 뜨거워진 마음 범벅이 되어 너를 그려오는 풍경도 범벅이 되고 말았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은 없었으리라고 노래한다. 그러나 저 바다가 있다면, 그럼에도 그 바다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거리에도,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오갈 수 있는 마음이면 좋을 것이다.

그러니까 때로는 당신과 나 사이에 ‘거리’가 필연적이다. 거리 없는 뒤섞임이란, 그 혼돈은 기어이 질서를 요구한다. 우리는 어쩌면 거리를 필요로 하는 독자적인 존재다. 우리는 결국 혼자 온전히 존재해야 한다. 홀로 선 자세로 타인과 만나야 한다. 그건 우리 숙제다.


IMG_3615.JPG


아, 새삼 생각하는 건 ‘더는 다가가지 않겠다.’ 이만큼에서, 이 거리를 사랑하며 그 너머의 너를 향하겠다. 사람은 금세 구속을 의식하는 존재다. 그래서 칼릴 지브란은 아예 못을 박아주었다.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예언자>,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칼릴 지브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