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찾아갔다, 무갑사 너도바람꽃. 곳곳의 꽃 진 자리가 며칠 전까지 흐드러졌던 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늘은 우울하고 풍경도 생기가 없었다. 다만 꽃 지고 있는 자리가 조근조근 몇 마디 건넸다.
“모든 만남이 좋지 않아? 꽃이 필 때도 꽃이 질 때도 언제든 다가오는 게 좋아. 주고받을 수 있는 말은 저마다 다르지만 어떤 순간도 의미없이 소멸하지는 않아. 지금 이 순간도 좋지 않아?”
지고 있는 꽃들을 바라보며 ‘지는 일’에 대해 잠시라도 생각을 기울여보는 시간, 어쩌면 이 시간이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가 아닌가. 잘 보내는 일, 고맙다고 인사하며 잘 떠나보내는 일. 분명히 인생의 모든 만남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물들과의 관계에서도 종종 삼인행 필유아사를 경험할 수 있다. 꽃들은 고마워하며 헤어져간다. 뒷모습도 어여쁘다 봐주는 시선을 오히려 다독거린다. 피고 지는 어떤 것도 상실이 아니야.
싱싱한 꽃잎을 찾아 여기저기 쏘다니면서 군데군데 만개했던 꽃들의 이야기를 만나는 건 조금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러나, 그 풍경이 주는 위로라는 게 각별했다. 좋았다. 쓸쓸함조차 찬란한 한때라고 콜록콜록 기침에 떠는 머리카락 위로 빗방울마저 톡톡 떨어지곤 했지만 그 뒤안길도 함부로 할 시간이 아니었다.
마당에 심은 꽃도 바삐 지나치다 보면 못 보고 만다. 그런데 산과 들에 피는 꽃의 때를 맞추는 건 정말 어렵다. 거기 사는 누군가가 실시간으로 알려주지 않는 한 가장 좋은 때를 찾아간다는 건 정말 행운에 속하는 일이다.
몇 번은 피지 않아서 아쉬워하고 몇 번은 져버려서 낭패였다. 꽃을 만나는 일은 늘 마음을 비우게 하는 훈련이기도 했다. 가장 적절한 시기에 핀 꽃들을 볼 때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생각한다. 언제나 가능한 일이 아닌 순간을 마음껏 누리기로 한다.
어느 봄에는 실시간으로 개화 소식을 접하고 부랴부랴 수리산에 갔다. 세상에나, 변산바람꽃을, 가장 이쁜 순간을 만났다. 해가 들지 않는 산이어서 아쉬웠지만 꼬물꼬물 피어있는 꽃들 사이로 마구 행복하게 걸어왔다. 그러니까 내게도 그런 행운이 왔다.
안도의 목소리로 안녕....하고ᆢ 돌아섰다. 좋은 만남이었다. 때가 좋았다. 넌 늘 이렇게 예쁘게 존재를 발하고 있었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곳이라도, 내가 놓쳐버린 때라도. 그래서 누군가 네 사랑스러운 모습을 전할 때마다 아쉽고 그리웠다. 어딘가에 필 너를, 피었다가 지고 있을 네가.
때...가 있다는 것.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보지 못하거나 갖지 못한 것, 내게 머물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예컨대 빛도 그렇다. 빛나지 않는다고, 구름에 가렸다고, 어둠이 내렸다고 태양이 없는 것이 아니듯 보이지 않아도 소멸하거나 멸절한 게 아닌 것들을 새삼 그리워하고 희망하게 되었다. 그날 눈부신 변산바람꽃을 보며 내 마음이 그득 채워졌던 건, 보고 싶었던 상태의 꽃을 보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혹 보지 못해도 꽃이 늘 피었다는 걸, 피었다가 졌다는 걸, 그토록 찬란한 생이 거기 있다는 걸, 그러므로 보이지 않는, 만나지 못하는 것을 너무 애달파 하지 말라는 사랑의 말, 희망의 말, 위안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