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외부에서 가해진 고통을 더욱 크게 만드는 이유는, 우리가 정말 고통 없이 살아야 한다는 환상 때문이다. (안셀름 그륀,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마라》)
세상은 늘 선이 악을 이기고 정의가 강물처럼 흘러야만 하며, 우리는 고통 없이 살아야 한다는 기대가 있다. 아주 잠시만 생각해봐도 결코 성취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런 꿈이나 기대가 은연중에 뿌리내리고 있다.
세상은 정돈된 온실이 아니다. 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날의 산이 그 현장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지난여름의 흔적들은 폐허처럼 널브러져 있다. 썩어가는 열매들은 나뒹굴고 낙엽들은 봄바람에 서서히 바스라진다. 겨우내 눈과 비와 햇빛과 바람이 쌓아놓은 지면의 낙엽들은 겹겹이 달라붙어 있다. 꽃은 그렇게 정신없고 불편한 상태에서 얼굴을 태양 아래 내민다. 어느 틈이었던 것이다. 거의 밀집한 낙엽들로부터 녹록지 않게 가까스로 내미는 얼굴.
봄날 혼돈과도 같은 꽃자리에서 한참을 머물다 보면 번잡한 마음의 자리가 점차 간결해진다. 어찌할 수 없는 세상일에서도 한발짝 물러서게 된다.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고, 내가 동시에 모든 것을 보거나 온전히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기억한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고, 어떻게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남는다.
꽃이 외부의 환경과 사물의 상황에 매이지 않고 피어나는 것처럼 나는 오로지 나 자신으로 존재해야 한다. 내 안의 문제가 아니라 외부의 조건 때문에 흔들리고 상처입고 좌절할 일이 아니다. 타인에게 보안관 자격을 주고 그의 평가에 안절부절못할 필요가 없다.
꽃들이 있는 힘껏 자기 생을 걸어가는 것처럼 나도 내 몫의 길을 가야 한다. 나 자신을 긍정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나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마라’는 조언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로부터 콘스탄티노플의 주교 요한 크리소스토무스까지 한 목소리로 전해준 말이다. 요한은 당대에 내로라하는 수사학자로 출세길이 창창한 젊은이였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에 입문한 뒤 오직 예수의 가르침 그대로 살고자 애를 썼다. 그러니 제국의 타락한 기득권과 잘 지낼 수가 없었다. 특히 비잔티움 제국 아르카디우스의 황후 에우독시아가 그를 못 죽여 애가 닳았다. 결국 세례자 요한의 목을 청했던 헤로디아처럼 그들도 요한의 목숨을 사지로 몰고 갔다. 그런데도 그는 초연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의 신념에 충실했던 그는 아픈 마음을 견디는 친구에게는 한없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에픽테토스 또한 곤고한 인생이었다. 그는 장애인이었고 한때 노예였다. 당시 상황은 자세히 전해지지 않지만 여러 모로 한계가 있었던 건 분명해 보인다. 그가 노예였다는 건 묘한 은유로 다가온다. 결과적으로 그는 가장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자신과 그 밖의 것들을 분별했다. 결코 훼손될 수 없는 스스로의 존엄 말고 그 외의 것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떤 감정들에 대해서도 분명했다. 감정이 내 안에서 일어난다 해도 그것 자체가 나는 아니다. 감정은 시시각각 일어났다가 사라진다. 그 소모적인 것에 존재가 영향을 받을 이유는 없다. 그러니까 내가 분명히 해야 하고 지켜야 할 것과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식별해야 한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휘둘려 불행해지면 안 된다.
세상의 온갖 조건은 내가 어찌할 수 없다. 그 모든 것 가운데서 내가 어찌해볼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을 책임지는 일이다. 그러나 그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를 책임지려면 먼저 나를 알아야 한다. 내 단점과 부족함까지도 알아야 한다. 내가 내 존재의 결핍을 알아차리고 연민할 수 있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결핍을 가지고 있다. 누구든 필요한 무엇은 다 있는 법이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절망도 아니다. 그 부족함을 알게 되면 실수나 실패 앞에서도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는다. 터무니없는 것을 스스로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부족함을 인정하면 자신에게도 관대해진다. 저 봄날 숲만큼이나 어지럽고 복마전인 이 세상에서 선의를 가지고 살아갈 힘을 잃지 않는다. 물론 충실하게 최선을 다했을 경우의 일이다.
산에서 내려올 때쯤 다시 세상사가 밀려든다. 세상은 아름답고 기쁘고 희망의 여지가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가끔은 끝이 안 보이는 터널 같을 때도 있다. 어둠과 빛이 덜 드는 응달에서도 피어나는 꽃들의 분투는 약해빠진 사람에게 죽비를 든다.
중요한 것, 본질적인 것은 외부의 어떤 상황, 조건들에 대한 나 자신의 태도다. 절망스러운 일이라고 해도 그 자체가 절망은 아니다. 선한 의지를 잃지 않는 것만이 중요하다. 만에 하나 악이, 불의가 눈앞에서 승리하는 것 같을 때라도 절망하지 말라고. 마음의 뿌리를 다치지 말라고, 너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꽃들이 가르쳐주는, 힘겨운 겨울을 지나온 꽃들이 토닥토닥 전해주는 말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