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이름이 뭐니?

by 이아인


서울에서도 가장 먼저 피는 봄꽃은 복수초다. 흥릉수목원 울타리 안팎에서 피어나는 봄의 전령은 누구에게나 아주 많이 반가운 존재다. 복수초(福壽草)는 일본식 이름을 우리말로 옮겨 부르는 거라고 하는데 글자 그대로는 ‘복과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일 거다. 좋은 의미를 담고 있지만 ‘복수’라는 단어가 먼저 바리케이드를 치기도 한다. 이렇게 반갑고 어여쁜 꽃인데 ‘복수’라니.


봄꽃이 하나둘 피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꽃의 속도는 무척이나 빨라진다. 동시에 우후죽순처럼 피어나니 꽃들을 제대로 만나기가 너무 어려워진다. 서울 경기 강원에 순식간에 만발하는 뭇 봄꽃들 가운데 복수초도 조금은 여유를 찾고 덩달아 피어난다.


눈 속의 꽃을 만나는 건 행운에 속하는 일이다. 눈이 내린다고 어디서나 항상 '설중화'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눈이 많이 내리면 가뜩이나 연약한 꽃들은 눈의 무게로 묻혀 버린다.

드물게 눈 속의 복수초를 만나곤 했다. 복수초는 제 몸의 열기로 눈을 녹여 꽃을 보여준다. 흰 눈 속에서 피어오른 복수초는 황금빛 램프 같다. 눈 속에서, 혹은 얼음을 뚫고 피는 복수초를 ‘얼음꽃'이라거나 ‘얼음새꽃’이라고도 부른다. 복수초라고 할 땐 심드렁했는데 얼음꽃, 얼음새꽃이라고 하니 이 꽃이 좀 달리 보인다. 설연화(雪蓮花)도 좋다.


어느 날은 눈부시게 쏟아지는 개울가 햇빛을 고스란히 담고 핀 복수초를 보았다. 햇빛 속에 찬란한 꽃잎을 보면서 ‘빛사이꽃’, 빛새꽃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싶었다. 이름은 그 자신이기도 하다. 마음을 담은 이름은 서로의 사랑을 깊게 전한다. 꽃들의 이름은 꽃 자체다. 나는 너를 내 마음의 이름으로 부를 테다.


‘얼음새꽃’이라고 부르니 복수초가 더 애틋해진 것과 달리 ‘현호색’이라는 이름은 문득 정색하게 만든다. 어감으로 보면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가만 들여다보면 이 꽃은 얼마나 자유로운지. 새처럼 노래하거나 천사처럼 날갯짓하고 있는 꽃들은 꽤 동적이다. 처음 화야산 초입에서 본 날부터 이 작은 꽃들은 나팔 부는 천사였다. 현호색을 만나면 마음에서 찬양이 이어진다. “찬양하라 주님을 그 이름 찬양하라 이제로부터 영원히 찬미를 드려라 …”


늘 현호색은 마음껏 노래 부르고 싶은 꽃인데 어느 날 천마산에서 깊고도 짙은 갈퀴현호색을 보며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그런 느낌은 홍천 도사곡리에서 각시붓꽃을 들여다볼 때도 엄습했다. 하나의 꽃이 완벽한 충일이었다. 넘치는 생명력 안에 지고의 아름다움, 지고의 완전이 투영돼 있었다. 거기, 누군가가, 어떤 존재가 거하시는 게 분명했다. 꽃은 터질 듯한 존재감으로 보는 이를 고양한다. 나는 도취 같은 눈물을 흘릴 뻔했다. 아름답고도 동경의 사다리 저 끝을 향하게 하는 일순간의 도취. 혹은 선망. 닿을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한순간의 그리움. 그런 순간들이 오곤 했다.


현호색도 종류가 많다. 조금씩 다른 모양의 꽃이 저마다 다른 그림을 그려준다. 그 그림이 늘 좋다. 현호색은 항상 어딘가를 향하고 있다. 그런데 이 한자어 이름은 도서관 나직한 어둠 속 책상에 앉은 기분을 들게 한다. 현학이라는 단어가 연상되는 탓일까. 학명‘Corydalis’가 그리스어로 ‘종달새’를 뜻한다고 하는데 우리 말 이름은 뿌리가 검은색을 띄고 있어서 붙여졌다고 한다. 이름은 여전히 멀다. 그래도 현호색이 늘 반갑다.


IMG_4821.JPG 눈 내리는 현호색, 가평(2018. 4.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