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가 피면 궁궐에 간다. 창경궁 옥천교를 거쳐 창덕궁 성정각과 칠분서 삼삼와로 올라가면 만첩홍매를 보러 온 사람들이 꽃처럼 핀다. 때로는 꽃보다 사람 구경이다. 조금 떨어져 그 풍경을 보면 또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봄이 오면 고궁에도 수많은 꽃들이 핀다. 옛 시절부터 그곳에 있었던 꽃들도 있고 새로 심은 꽃들도 있다. 꽃을 보며 어떤 시절들을 생각해보는 시간들이 흐른다.
어느 해 봄꽃이 다 지던 무렵에 미선나무의 꽃말을 들었다. ‘슬픔은 사라지고’라니! 순전히 꽃말 탓에 부리나케 창경궁에 가보았지만 이미 지고 난 후였다. 기억하고 있었다.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이유의 하나가 되었다.
묘하게도 자경전 옛 터에 미선나무가 줄지어 있다. 오며가며 미선나무를 가장 많이 봤던 곳이 자경전 터였다. 정조 임금이 혜경궁홍씨를 위해 궁의 가장 높은 언덕에 지은 이 전각은 가장 존귀한 ‘전’이라는 이름을 얻기도 했다. 사도세자 사당인 경모궁을 저만큼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하고, 창덕궁을 편히 오가시라고 그곳에 지었다고 하는데,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하며 헐었다. 일제 강점기에 제실박물관이라거나 장서각으로 쓰인 건물을 크게 지었지만 건물들이 다른 곳으로 옮겨간 후 빈 터로 남아 있다. 진달래 피고 댓잎 수런거리는 자경전 빈 터는 오갈 때마다 바람결에 들리는 말이 있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삶의 모든 것은 한순간이다. 무엇도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기쁨도 한순간이어서 아쉽고 고통도 시간이 지나면 위로를 얻는다. 그래서 사람이 산다. 살 수 있다. 그 순간들이 지나가지 않으면, 망각의 힘이 없다면, 때로 처절한 그 고통의 날들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가. 모든 것이 지나가고 스러지고 퇴색하면서 우리는 살아간다. 아무리 죽을 것 같은 상황이어도 견뎌봐야 한다. 산다는 건 예기치 않은 무대를 허락한다. 새옹지마. 슬픈 날이 지나면 웃으며 기억하게 되기도 한다.
사람들이 꽃말을 염두에 두고 이 자리에 미선나무를 심었을까 우연일 뿐일까. 말의 힘이라거나 공감하게 하는 의미라거나 아무튼 꽃말 때문에 미선나무는 찾아다니는 꽃이 되었다.
요즘은 꽃을 어떻게 고를까. 옛날엔 ‘꽃말’을 생각하며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그래서 장미나 카네이션 등은 용도가 분명했다. 사랑을 전하고 고마움을 전하는 꽃. 그리고 일반적으로 노란색 꽃은 질투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용서를 구하거나 후회를 전하는 꽃말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은 예전만큼 꽃말을 염두에 두는 것 같지 않다. 꽃말은 감정을 지금처럼 드러내기 힘들었던 시대에 꽃의 상징과 꽃말을 통해 마음을 전하기 위해 많이 쓰였다고 한다. 확실히 지금은 감정표현에 어떤 제약도 없다. 그러니 이제는 굳이 감추어져 보이지 않는 상징을 빌릴 이유도 없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만큼 설렘도 줄어들었다. 즉각적인 의사표현 앞에서 꽃들의 말은 예전만큼 효용이 없다.
그렇다고 꽃말이 사라진 건 아니다. 여전히 보다 깊은 감정을 느끼는 이들은 무엇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말로 다 못하는 어떤 표현들을 꽃으로 대신하고 싶기도 하다. 꽃은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메신저가 된다. 때로는 대상이 없어도 나 자신에게 말을 건다. 오랫동안 담지하고 있는 꽃말과 꽃들의 이름은 그 자체로 어떤 이야기들을 갖고 있다. 꽃들을 볼 때 조금 더 풍요로워지는 이유다. 꽃말을 알고 난 후 미선나무가 내게 다가온 것처럼.
슬픔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라진 슬픔이 되돌아 기억되는 슬픔으로, 꽃을 본다. 마음을 담아 꽃을 본다. 살랑이는 바람에게도 전한다, 슬픔은 사라질 거야. 그렇지?
꽃말이 유행한 건 빅토리아 시대였는데 시초는 이슬람 풍습인 셀람(selam)이었다고 한다. 무슬림들은 모든 꽃 안에 하느님이 계신다고, 혹은 하느님의 말씀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꽃을 보며 알아들은 하느님의 말을 꽃에게 주었다.
그들의 시선으로 본다면, 모든 꽃에는 하느님이 계신다. 꽃을 보는 건 꽃의 하느님을 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인사를 드려야 한다. “당신 안의 하느님께 경배합니다, 나마스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