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에 비가 내렸던 숲 속은 한껏 후텁지근했다. 모기가 온 몸을 공략하고 땀이 비오듯이 쏟아졌다. 어느 순간 너무나 지쳐버렸다. 내가 꽃을 찍는 동안 남편은 숲의 여기저기를 산책한다. 나보다 더 많은 꽃을 보고 더 좋은 모델로 안내해주기도 한다. 숲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남편이 새로운 꽃을 봤다며 길을 이끌었다. 해가 제대로 들지 않는 숲에 어두컴컴하게 핀 꽃에 별 감흥이 없었다. 그저 희귀한 또 한 종의 난초인 모양이다 생각했다. 그래도 열심히 찍어보려고 했다. 안경은 습기와 얼룩 때문에 흐려져 꽃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 게다가 이 꽃은 거의 컬러를 안 가진 듯 카멜레온처럼 피어 어둑한 숲에서 초점이 잡히지 않았다. 수없이 씨름하면서 몇 컷 찍고 돌아오는데, 사람들이 자꾸 물었다.
“혹시 비비추난초 보셨어요?”
비비추난초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던 터인데 일부러 이 꽃을 찾아온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나니 호기심이 생겼다.
“혹시 아까 그 꽃일까?”
아직 꽃을 잘 모르는 남편이,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본 이름 모를 식물에게 그를 안내했다.
“오 맞아요. 고맙습니다.”
꽃 이름을 모르던 남편과 꽃자리를 모르던 그분이 마침내 비비추난초를 확인했다. 덕분에 제주와 남부지방 한두 곳에 자생한다는 아주 보기 어려운 꽃을 영접했다. 애써 꽃을 찾아온 이들이 아니었으면 그냥 모르고 왔을 수도 있는 꽃이었다. 나중에 검색해보고야 쉽게 만나기 어려운 꽃이란 걸 알고는 좀 더 잘 찍어올 걸 후회도 했지만....이렇게라도 만날 수 있어서 참 반갑고 고마운 일이었다.
숲을 나올 때도 또 비비추난초의 행방을 찾는 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보고 싶어들 하는 꽃이구나 싶어 검색해보니 원래 비주얼이 썩 빼어나진 않은지 오늘 우리가 본 정도면 어지간히 괜찮은 외모는 돼 보였다. 좀 더 힘을 쓸 걸, 우리가 만난 비비추난초가 그나마 월등하다면서 좀 많이 웃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 아주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이솝우화에 ‘맹인과 절름발이’ 이야기가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회자되던 이 이야기들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항상 필요한 조언이었을 것 같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 그러니 어떤 의미로든 도움이 필요하다. 마음을 열어 지혜로워지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라고도 하지만 우리는 ‘맹인과 절름발이’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친구든 부부든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산다. 그리고 삼인행필유아사는 사람들의 관계에서만이 아니라 사물들과의 세계에서도 종종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