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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로지 Feb 08. 2022

부부, 처음으로 분만실 입구에 서다

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은 긴 출산 후기 글

(이어서) 마지막에 남편과 통화는 거의 울면서 했다. 그리고 정말 병원에 가야 될 타이밍이라고 생각된 게, 이것보다 더 아프면 정상적으로 병원에 가는 게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병원에서 빠꾸 맞고 돌아올 때 돌아오더라도, 지금은 병원에 출발해야 될 것 같았다. 

(산모가 진통이 왔다고 병원에 가도, 자궁 입구가 전혀 열리지 않아서 분만 진행이 전혀 안된 상태에서는 병원에서 산모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기도 한다 - 병원에 있으면 불편한 자리에서 고생만 하기 때문에!)


남편은 현장에서 입던 주황색 안전조끼를 그대로 착용하고 집에 들어왔고 - 오해는 마시라, 아주 긴박하게 온 것 같지만, 귀찮아서 자주 안전요원 버전으로 집에 들어온다 - 나는 아직 덜 챙겨놓은 출산 캐리어 뚜껑을 닫아달라고 하고, 다른 가방에 마지막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집어넣었다. (마지막에 멀티탭을 핸드백에 쑤셔 넣어 챙겨 온 것, 칭찬해!) 그리고 외쳤다. 오늘 이 집을 나가면, 돌아올 때는 복복이와 같이 들어온다! 


남편이 운전해서 가는 길에 아주 어려운 부탁을 했다. 신속하지만, 천천히, 최대한 흔들림 없이 가 달라고. 진통 간격과 차량 진동이 같이 겹치면 정말 힘들었다. 근데 그렇게 가려면 남편은 벤츠 세단을 사야 한다고 했다. 이 상황에서도 유머 여유가 있는 사람이다. 나중에 남편이 얘기하길, 드디어 본인도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진통하는 산모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장면을 찍었다고...


항상 붐비던 병원이 밤에 오니 아주 고요했다. 우리는 평소에 익혀둔 길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분만실로 올라갔다. 왜 인지, 분만실 앞에 오니 아주 조금 덜 아픈 것 같기도 하고... 마음이 놓여서 그런 건가? 괜히 호들갑 떨면서 일찍 왔나?라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둘 다 처음 온 공간, 처음 맞이하는 상황. 경황도 없고 정신은 더더욱 없고 얼떨떨한 상태였다. 분만실 내부로 들어가기 전에 코로나 검사를 먼저 진행해야 했다. 사실 이것 때문에 오늘 오후에 검사를 받으러 다녀온 것인데! 결국은 결과를 받아보기도 전에 분만실 입구에 와 버렸다. 


더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신속 코로나 검사를 마치고 음성 결과를 확인 후, 분만실로 들어갔다. 우선 산모 먼저 검사를 받고, 분만실 내부로 들어가서 상태를 확인한 후(내진 등), 입원 결정 여부에 따라 보호자도 검사를 실시한다고 한다. 우선 밖에서 남편과 작별하고, 나 혼자 낯선 분만실로 들어갔다. 왠지 분만실로 들어가는 나는 못 돌아올 곳으로 가는 사람 같았고, 남편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깜깜한 대기실은 더 쓸쓸해 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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