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호텔 인턴십 이야기의 시작...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함께 하는 활동을 좋아했던 나는, 서비스 업무를 하면 잘 맞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교내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스로 돈을 버는 경험이었다. 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같은 대학교 학생들이었기 때문에, 나는 하나의 동아리 활동을 하는 느낌도 받았다.
서비스 업무를 하면서 일의 보람을 느끼고 처음 돈을 벌어 본 나는, 막연하게 사람을 만나고 서비스를 하는 호텔과 같은 공간에서 일하면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막연하게 호텔리어에 대한 호감도 있었고, 외국사람들을 만나고, 영어를 쓰고, 멋진 곳에서 일한다는 기대도 있었다. 또, 내가 학창 시절 때, 호텔리어라는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서울 및 수도권에 있는 호텔경영학과는 엄청난 인기가 있을 때 이기도 했다.
대학생 때, 휴학 후 꼭 외국에 나가고 싶었다. 왠지 남들 다 하는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먼가 평범해 보여서 싫었고, 다른 방법이 없을까 열심히 알아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양한 Hospitality 분야에 해외 취업을 알선하는 업체를 알게 되었고, 당시 경험도 지식도 없었던 나는 업체를 통해 해외 인턴을 준비하게 되었다.
첫 도전은 크루즈 승무원이었다. 큰 배를 타고, 몇 달씩 항해하며 일하는 일이었다. 한 때, 해군이 되고 싶었던 나는 망망대해를 가르는 거대한 크루즈를 상상하니 코가 벌렁벌렁거렸다. 그 당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알선업체가 나의 이력서를 포함하여 여러 자료들을 종합해서 채용할 회사에 보내주면, 현지 회사에서 무려 국제전화로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었다. 그러나, 크루즈 승무원은 떨어졌고, 업체에서 다음 후보로 제안했던 미국 버지니아에 있는 한 호텔의 식음료팀 인턴 자리에 합격했다.
한 번도 레스토랑에서의 일은 해 보지 않았기에, 출국하기 전, 두 달 정도 강남역 근처에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도 해 보았다. 나는 그 당시 회기역 근처에 살았고, 강남역까지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했다. 늦은 밤, 지친 몸을 이끌고 버스를 타면 항상 한강을 건너 가는데, 그 당시 보이는 야경을 보면서 먼가 '서울의 달' 같은 노래가 떠올랐다. 몸이 많이 지쳤지만, 또 한편으로는 묘한 뿌듯함과 열정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렇게 휴학 후, J-1 비자로 미국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6명이 같은 호텔의 한 팀으로 출국했다. 나는 이 팀의 막내였고, 그때 1년 동안 인턴생활을 함께 한 언니 오빠들은 지금까지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연락하고, 종종 만나고 있다. 호텔에 도착한 우리는 간단한 면담과 부서 배치를 위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F&B (식음료) 부서에는 연회부, 룸서비스, 주방, 레스토랑 등이 있었는데, 각자의 경험 및 영어 실력 등을 통해 부서가 결정되었다. 나는 레스토랑 서버 업무에 배정받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