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한 호텔은 미국 버지니아 주에 있는 한 비즈니스호텔이었다. 위로 두 시간이면 워싱턴 D.C., 그리고 6시간 정도면 뉴욕에 갈 수 있었다. 미국에 지내면서 워싱턴은 1번, 뉴욕은 2번 정도 다녀왔는데, 지나고 생각해 보니 더 열심히 돌아다니지 못한 게 아쉽다. 항상 그렇지 머!
내가 있었던 호텔은 전형적인 비즈니스호텔로, 레스토랑은 아침시간이 가장 바쁜 곳이었다. 6.30분에 조식을 시작하여 7시 정도 되면 많은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레스토랑 내에는 총 3가지 역할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가장 먼저 고객을 맞이하고 테이블에 안내하는 Receptionist, 음식 주문부터 테이블 서비스를 담당하는 Server 그리고 고객이 나간 후, 테이블을 정리하고 새롭게 테이블을 세팅하는 Busser 가 있었다.
Receptionist는 방문하는 고객에게 테이블을 안내하고, 종종 걸려오는 예약전화도 받는다. 또 가장 중요한 역할은 서버들에게 골고루 테이블을 배정해 주는 것이다. 모든 서버는 근무하는 동안, 본인의 담당 테이블이 있고, 그 테이블에서 나오는 팁은 본인의 수입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서비스 업종은 팁으로 임금의 많은 부분을 충당하게 된다. 지금 기억을 떠올려보면, 당시 나의 시급도 2불이 채 안되었다. 임금의 상당 부분은 고객이 지불하는 팁으로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담당 서버에게 지불하는 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다. 총 음식값의 10-15% 정도 팁 금액을 예상했던 것 같다.
Busser는 테이블을 치우고, 정돈하는 역할을 맡는다. 보통은 서버의 보조 역할이기 때문에, 단기간 아르바이트가 필요한 사람이나 혹은 높은 고정 시급을 받고 싶은 사람들이 하기도 한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서버는 본인의 테이블을 정리해 준 버서에게 받은 팁의 10% 정도를 바로 현금으로 나누어 준다. 본인을 보조해 준 대가인 것이다.
Server는 본인의 테이블에 고객이 앉은 순간부터 결제까지 담당한다. 미국의 레스토랑은 앉은자리에서 결제까지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카드 결제 때, 팁 금액을 같이 넣어서 결제하거나, 혹은 현금으로 놓고 가기 때문에 앉은자리에서 결제를 마무리하는 게 더 자연스럽고 수월하다.
손님들의 메뉴 주문을 받는 것부터, 모든 요구사항을 처리해야 하는 Sever의 역할은 쉽지 않았다. 특히, 익숙하지 않았던 미국의 조식 문화(?)는 처음부터 나를 당황시켰다. 아니, 도대체 아침에 먹는 계란은 머 그리 종류가 많은지. 일반 프라이, 반숙 프라이, 아예 반만 익히고 위는 날 것 인 프라이, 스크램블 애그, 흰자만 있는 스크램블 애그, 오믈렛 - 아주 다양한 재료를 선택할 수 있다. 등등... 나는 우선 메뉴판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어디 가서 든 한국인 특유의 근면함과 성실함은 드러난다고 했던가? 나는 일을 하면서,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개인적인 성향이 강하고, 개별로 팁을 받으면서 일하는 레스토랑 서버 특성상, 본인이 서빙하는 테이블에 대한 업무는 확실히 하지만, 그 외에 공동으로 사용하는 공간이나 업무에 대해서는 나 몰라라 할 때가 많았다. 초반, 서버 업무에 미숙하기 때문에 담당하는 테이블 수가 적었던 나는 남는 시간에 서빙을 준비하는 공간 청소라던지, 공동으로 사용하는 컵, 식기 등 을 채워놓았다. 아직 언어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많이 부족한 내가, 베테랑 미국 동료들과 함께 서로 서포트하며 업무를 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그 당시, 우리는 그 호텔에 첫 외국인 인턴사원이었다. 호텔에 모든 분들은 친절하게 우리를 도와줬고, 업무 적인 것뿐 아니라, 미국에 정착해서 생활하는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받았다. 레스토랑에 오신 손님들도, 멀리 동양에서 온 어린 친구가 어설프게 주문을 받고 도와주는 게 기특했는지, 작은 실수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고 가끔은 팁도 두둑하게 주시기도 했다.
내가 있던 호텔은 2 주급이었다. 그 당시는 2주에 한 번씩 돈이 나오니 얼마나 신났는지 모른다. 그중 한 달은 날짜가 잘 걸려서, 한 달에 3번 주급이 나왔다. 그 달은 아주 신이 나는 달이었다. 지금 일을 하며 다시 생각해 보면, 그 호텔 인사팀은 급여 나가는 업무가 엄청 바빴을 것 같다..ㅎㅎ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아주 기특하다. 어떻게 낯선 나라에서 그렇게 지낼 수 있었을까. 아마 같이 지냈던 한국인 언니 오빠들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것 같다. 우리는 미국 안에서 차도 사고, 집도 옮겨 보고, 많은 큰 일들을 함께 했다. 생면부지 6명이 만나서 갑자기 같이 살게 되었는데, 우리는 참 잘 지냈다. 지금도 미국 생활의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나도 좋은 사람들과 의지하며 1년을 지냈다는 거다.
나중에, 내 주변 지인들도 내가 다녀온 것처럼 미국 인턴십을 가고 싶어 했다. 그런데 한동안 미국 경제위기가 있어서, 모든 기회들이 닫히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해 보면, 또 나는 좋은 기회에 미국을 다녀오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