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온 지 몇 달이 지나니, 이제 여러 가지 생활에 제법 적응이 되었다. 하루하루 다이내믹하던 일상이 잦아들기 시작하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장보고, 언니 오빠들과 쇼핑이나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기도 하고...
그런 나에게... 병이 찾아왔다.
'가만히 못 있는 병'
레스토랑에서 서빙하는 일을 하다 보니, 영어 회화가 느는 것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손님들을 응대해야 하고, 또 동료들과도 수시로 이야기하다 보니, 매일 하는 일상의 대화는 무리 없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거기서 뱅뱅 도는 느낌이랄까? 좀 더 잘하고 싶은데, 매일의 일상에서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학교를 다니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보통 많은 미국의 대학교에는 영어공부가 필요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ESL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코스들이 있다. 나는 무작정 가장 가까운 학교들 중, 학비가 저렴한 Community Colleage (우리나라의 전문대 과정)를 검색했다.
학교를 다니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차를 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얼마 전, 10년이 훌쩍 넘은 포드 (그래, 미국에서는 포드를 한번 타 봐야지!) 한 대를 구입했다. 그 당시 약 250만 원 정도 주고 샀으니, 상태는 알만 하지만, 나에게 이동의 자유를 줬다는 것에 우선 아주 많이 감사한 녀석이었다.
구글 지도에서 차로 다닐법한 학교들을 찾고, 각 학교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ESL 과정을 검색했다. 그때 나의 눈에 들어온 한 학교가 Reynard Community Colleage 였고, 그리고 다음 학기 ESL 과정 등록 접수 마감은 바로... 오늘이었다.
'오, 이건 지금 바로 당장 학교에 다니라는 계시야!'
나는 바로 학교에 전화하면서 동시에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들어서서 접수를 문의하니, 접수를 하려면 아래와 같이 이틀에 걸쳐 두 가지 시험도 봐야 하고, 면접도 봐야 한단다.
Day 1: Writing Sample (40 minutes) and Reading Comprehension (untimed)
Day 2: a 30-minute Oral Interview
오늘이 마감일이니 예외적으로 오늘 일정을 다 잡아서 처리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오 감사합니다! 나는 그렇게 그날 바로 레벨 테스트를 보고, 구술 면접을 하고 학교 접수를 마쳤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저녁 Reading Class에 수강하였다. 일은 매일 아침과 점심 서빙을 하고, 새벽에 시작해서 2-3시 정도면 끝나니, 조금 쉬고 7시 수업은 충분히 가능했다. 나는 영어로 말하고 듣는 건 제법 자신 있지만, 읽기와 문법이 학생 때부터 약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이런 부족한 부분을 더 채우고자 Reading class에 신청했다. 더 많은 수업을 듣고 싶었지만, 금전적으로도 그리고 일과 병행하며 무리 일 듯했다.
수업은 각 나라에서 온 다양한 외국 친구들과 함께 했다. 나 말고 다른 친구들은 아예 몇 개씩 수업을 들으며 영어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다. 사실 그 당시 나는 수업시간에 빠듯하게 맞춰 오고, 끝나고 바로 집에 가는 생활을 반복해서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들지는 못했다. 외국인 노동자 신분으로 학교 가지 다니는 게 먼가 심적으로 벅찼던지, 그 당시는 친구를 사귈 생각을 못했는데, 그래도 한 학기 동안 같이 수업을 들으며 단 한 명과도 연락하지 못하고 헤어진 것은 좀 아쉽다.
한 학기 주 교재로 쓴 책은 'To kill a mocking bird, 앵무새 죽이기'라는 책이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의 피폐해진 시대에, 인종차별과 정의에 관한 무거운 이 아기를, 아이들의 시선에서 풀어내는 책이다.
책을 읽고, 서로 줄거리에 대해 팀원들과 이야기하고 퀴즈도 풀어가야 했기 때문에, 나는 더딘 읽기를 반복하며, 책을 열심히 읽어 가야 했다. 어느 날은 주차장에서까지 책을 겨우겨우 읽으며 수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내가 있었던 리치먼드는 흑인 노예들이 처음 미국에 들어온 도시 중 하나로, 흑인 역사에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이 앵무새 죽이기라는 책 역시, 백인과 흑인의 인종차별에 대한 깊숙한 메시지를 담고 있던 책이니, 나는 미국의 아픈 역사의 한 부분을 간접적으로 많이 체험한 셈이 되었다.
한 학기 수업을 들으며, 엄청나게 영어실력이 향상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경야독하는 생활을 했다는 나 자신에게 뿌듯함을 느꼈다. 새벽부터 일을 하고 저녁 수업에 학교에 가다가, 조금 일찍 도착해서 쉰다는 것이 주차장 차 안에서 쿨쿨 자기도 했고 - 다른 친구가 깨워줘서 겨우 수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주차가 미숙해서 교내에서 역주행 해 버리는 바람에 딱지도 떼일 뻔했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면 미국 생활이 조금 덜 다채로웠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니, 배우고 싶을 때 달려가서 배울 곳 이 있고, 시간이 맞았고, 여건이 되었다는 것이 참 행운이었다. 그 당시 그렇게 간절하게 무엇이든 하고 싶고, 행동에 옮겼던 것들을 생각하며 앞으로 해 나갈 것들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