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닝커피 마시며 일하고 싶다

by 한 로지

미국에서의 일상 중, 아주 평범한 날 중의 하루였는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까지도 머릿속에 영화 한 장면처럼 또렷하게 기억나는 순간이 있는 날이 있다. 마치 내 눈이 비디오카메라 렌즈가 되어 기록하고 편집까지 하여, 내 기억 속에 저장한 것 같은...


내가 일했던 호텔은 전형적인 미국의 비즈니스호텔로, 아침시간이 가장 바쁜 곳이었다. 보통 새벽 6시까지 출근해서 준비해야 했으니, 나는 아침에 눈곱만 겨우 떼고 머리끈 질끈 묶고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했다. 6.30분에 조식을 시작하여, 한 7시 정도 되면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따끈한 커피포트를 들고, 여기저기 서빙을 하는데, 갑자기 평범한 장면이 줌-인되어 보였다.


말끔하게 옷을 잘 차려 입고, 모닝커피와 호텔 조식을 먹으며 신문을 보고, 미팅이나 출근을 준비하는 사람들, 또 원형 테이블에 여럿이 둘러앉아 노트북을 열고, 커피 마시며 미팅을 하고 있는 사람들. 나는 그 테이블에 떨어진 커피를 리필해 주러 커피 주전자를 들고 가는 중이었다.


early-morning-coffee.jpg


'그래, 나는 저기 저렇게 앉아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커피를 따라 주는 사람이 아니라, 커피를 마시면서 일을 하고 싶다고...'


아주 평범하다면 평범했던 그 장면들이, 그날따라 왜 이리 머릿속에 남고, 나를 생각하게 만들었던지...

(그날 힘들었나...?)


그 순간 이후, 나는 내가 커리어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되는 대로, 주어진 대로, 가는 대로...


나는... 사실 목표를 세우는 것이 항상 두려웠었다.

목표가 있으면, 성공/실패라는 결과가 있고, 성공의 기쁨보다는 실패의 아픔에 지레 겁먹어, 항상 뭐든 '됨 직한'것을 하고 있었다. 서비스 업이라는 것도, 이게 내가 진짜 하고 싶어서 인지, 나의 성향과 해 온 경험에 비추어, 될 법 하니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천천히 생각해보았다. 나는 후자였다.


원래 2년 정도 있고 싶었던 미국 생활이었다. 그런데 막상 호텔리어의 목표가 사라지니, 미국에서의 쳇바퀴 도는 일상은 갑자기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나는 쳇바퀴 같은 외국인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는데 (그나마, 간신히 등록한 커뮤니티 컬리지에서의 공부는 작은 위안이랄까...), 다른 한국의 친구들은 커리어 목표를 향해 앞으로 뛰어가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움을 떨칠 수 없었다.


나는 1년의 계약을 마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먼가 다시 원점에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했고, 지금 하고 있는 공부부터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학과 공부를 집중해서 하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장학금도 받았다. (우리 엄마의 작은 소원이었다... 큰 딸이 장학금 한 번 받아보는 것...)




나는 본인이 집중 한 사람들을 집중 한 대로, 다양하게 잡식 한 사람들은 잡식 한대로 무언가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양한 경험의 힘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가능한 다양하게 경험을 쌓고, 나 자신과 어떤 영역/부분이 잘 맞는지 접점을 찾아 늘려간다. 그러기에 상대적으로 시간도 오래 걸리고, 하나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한 시간들에 대한 아쉬움은 있지만, 나는 다시 대학생 시절로 돌아가면 그때보다 더 스펙트럼을 넓혀 움직였을 것 같다.


20대는, 유연하게!

모든 것에 유연하게 꿀렁꿀렁 자신의 경계를 늘려 가다 보면, 세상은 나에게 더 많이 배우고 자랄 기회를 줄 거라고 생각한다.


커리어는 참 신기하다.

쌓인 경험들이 길을 보여주기도, 또 길을 틀어 주기도 한다.

호텔리어를 희망하며, 서비스 업무를 했던 이 경험들은, 몇 년이 지나고 난 후, 내가 다른 기회를 얻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미국 커뮤니티 컬리지 다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