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리스본에서의 한 학기

by 한 로지

3학년으로 복학을 하고, 나는 교환학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과는 과 이름에 걸맞게(?) 상당히 많은 학생들이 교환학생을 다녀왔거나, 준비하고 있었다.

나도 이 대열에 빠질 수 없지!라고 생각하며, 나는 4학년 1학기 교환학생을 목표로 공고가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미국에 가기 전, 교환학생을 한번 지원하여 떨어졌다. 결론적으로, 그 덕에 미국에서 1년이나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왔으니, 잘 된 일이었다.


지금은 교환학생이 너무나 흔해졌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조금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나는 유럽 쪽으로 방향을 잡고, 영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으면서, 내가 지원할 수 있는 학과가 있는 학교를 선정했다.

그 결과, 스페인 그리고 포르투갈에 있는 대학교들이 후보군에 있었다.


1 지망이 스페인, 그리고 2 지망이 포르투갈이었다. 면접 결과, 스페인 교환학생은 워낙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어서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들 위주로 합격하게 되었고, 나는 포르투갈 리스본에 있는 ISCTE라는 학교에 최종 합격하게 되었다.


유럽에는 유럽연합국가들을 중심으로 Erasmus라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워낙 잘 발달이 되어있었는데, 굉장히 많은 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적어도 공부하는 동안 1학기-2학기 정도를 다른 유럽 국가의 나라에서 공부하게 된다. 사실, 말이 공부지 '문화체험'이라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 같다. 이 시기 동안 다른 나라에서 체류하고,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도 만나는 등, 앞으로 살아가면서 많은 도움이 될 여러 가지 경험들이 만들어지는 시기 이기도 하다.

Erasmus_ISCTE.jpg 첫 오리엔테이션 날, 같은 기수(?) 친구들 & 버디 들과 찍은 사진

이 시기, 비 유럽권에서 온 학생은 나를 포함해 우리 학교 교환학생 3명, 그리고 중국에서 오 교환학생 1명이 전부였다. 나는 조금은 낯선 곳에 유학 온 것이 특별하게도, 그렇지만 외롭게도 느껴졌다.


리스본은 아주 매력적인 곳이었다. 내가 학교를 통해 소개받아 구하게 된 집은 아주 큰 공원 앞에 있는 오래된 전형적인 유럽의 건물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고, 높은 나무계단이 있는...!

큰 짐을 가지고 꼭대기 층 까지 올라가는데 아주아주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시기를 생각하면 아주 많은 감정이 복잡하게 든다.

너무나도 설레고 행복했던 기억, 외롭고 괴로웠던 기억, 일탈과 방황의 기억 그리고 사람들과의 따뜻했던 기억들 까지...


생각해보면 6개월의 시간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었는데도, 인생의 또 다른 질풍노도의 시기였는지, 나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과 씨름하느라 오히려 그 시간들을 더 즐기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있다.


교환학생을 마치고, 커리어적으로 '국적을 가리지 않고 다양하게 일할 수 있는 커리어를 가지고 싶다'라는 부분이 확실해진 것 같다. 어떤 전문분야나 직무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어떤 일이든 대한민국 영토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일 보다, 무언가 내가 하는 일들이 다른 나라 누군가와 연결되어 이루어진다면, 훨씬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 말이다.


또, 언젠가는 이때 친구들에게 '헤이, 나 지금 OO에서 일정 중인데, 너 시간 되면 차 한잔 할까?'라고 꼭 말하고 싶었다. 실제로 이후 일을 하면서, 스톡홀름에서, 헬싱키에서 그리고 파리에서 이때 만난 친구들과 연락하고 차도 마시고 밥도 먹게 되었다. 정 - 말 오랜만에 만났고, 중간에 연락하던 사이도 아니지만, 뜨거운 젊은 날 반년을 함께 한 인연은 그렇게 끈끈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도 모닝커피 마시며 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