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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로지 Jan 21. 2022

엄마 생일에는 나오지 않기로 하자!

출산 예정일 D-3일에 생일이 있는 예비엄마 

우리 집은 유독 1월에 생일이 많이 몰려있다 - 정확히는 생일 및 가족행사. 

안 그래도 우리 친정집만 해도 많은 일정이 몰려 있었는데 - 남동생 생일, 아빠 생신,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및 내 생일 - 나와 여동생의 결혼 후, 쏠림 현상은 더 심해졌다. 날짜 순으로 잠깐 정리하자면 


- 아가씨 생일 

- 남동생 생일

- 아빠 생신 및 둘째 친정 조카 생일 (같은 날이다) 

- 내 생일 및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 (역시 같은 날)

- 복복이 예정일 : 조금 빠르던, 늦던 1월에 생일이 될 것 같다 

- 시댁 조카 생일 


여기에 신정 해피 뉴 이어! 와 조금 정신 차리고 보면 구정까지 곧 몰려오니, 연초는 우리 가족에게 정신없이 서로 축하 인사를 나누면서 행사를 치르는 기간이다. 


처음 임신 사실을 알고, 출산예정일에 대해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냥 '아, 1월 생이구나. 계획하진 않았는데 1월생이 좋다고들 하는데 잘 되었네!'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남편이 자꾸 내 생일날 아기가 나오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 싸람이? 나중에 딸내미 생일이랑 내 생일이랑 퉁 치려고 하나?! 그럼 무조건 내 생일이 묻히겠지? 안되지 안돼!!'


하면서, 진심으로 싫다, 서운하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고유한(!) 생일을 축하받는 날이 있어야 한다 등의 말로, 나와 복복이의 생일을 같이 맞추려는 불순한 의도를 줄곧 반대해 왔다. 


반면, 남편의 논리는 이것이었다. 

'나는 내 생일에 아기가 태어나면 너무 행복할 것 같은데!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이잖아! 아기보다 더 큰 선물이 세상에 어딨어' 


언뜻 들어보면 맞는 말이지만, 나는 철저히 아빠의 입장에서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뿅! 하고 새 식구를 만나는 날이지만, 엄마라면 생일날 황천길 한 번은 건너갔다 와야 만나는 아기가 아닌가! 안돼, 안돼, 내 생일에 그런 고생을 할 순 없다. 


그러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던 와중, 다행히(?) 초산이라 예정일 이전에 아기가 나올 가능성은 점점 매우 희박해졌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사실 남편도, 나도 기념일 챙기기엔 무딘 편이다 - 앗, 정정. 남편은 '우리' 기념일과 세상에 다른 기념일들에는 무디지만, 본인 기념일 (생일 및 축일)은 아주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 달력에 표시부터 다르다. 


근데, 출산 전, 호르몬 폭발하는 막달 임산부의 아기가 태어나기 전 마지막 생일은... 설마... 아무리 무심한 남편이라도 그냥 넘어가지 않겠지? 게다가 나는 지금 셀프 미역국과 잡채를 저녁상으로 하고 있단 말이다!!

게다가 요즘 너무나 바쁜 회사일로, 오늘도 정시퇴근을 못하는 남편... 점점 더 막달 임산부의 서러움을 쌓여만 간다. 


'어디야...? 출발했어?? (이미 목소리 상기되어 있음)' 

'으응... 차가 많이 밀리네... 한 30분은 더 걸릴 것 같아...' -라고 한 시간은 이미 처음에 도착하기로 한 시간에서 한 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나는 저녁 준비를 마치고 '이 사람이 오면 도대체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안방으로 쑥 들어가서 비스듬히 누워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몇 분 후 도착한 남편... 소리는 들렸지만 나가보지 않고 퉁명스럽게 '얼른 손발부터 닦아~'라고 툭 던져 놓고 느릿느릿 일어나 거실로 나가는데, 식탁에 케이크와 환한 꽃다발이 놓여 있다. 

환-했던 꽃다발! 연애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받은 다발 중에 가장 크다는 ㅎㅎㅎ

' 힝... 머야아아~~~~~~~' 애교도 아닌 것이 투정도 아닌 것이 감동도 받고, 기특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빈손이면 정말 가만두지 않았을 텐데 라는 마음이 들면서도 광대 승천이다. 


남편도 본능적으로 오늘 그냥 들어가면 본인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렇게...ㅎㅎㅎ 셀프 상차림과 배달한 보쌈으로 차린 저녁상이었지만, 앞으로는 다신 없을, 오붓하고 평화로운 둘이 보내는 내 생일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갔다. 


복복아, 늦게 나온다고 머라고 하지 않을 테니, 며칠 더 잘 크고 보자~ 오늘 뱃속에서 얌전히 잘 있어서 고마워! 엄마 생일날 이쁜 짓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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