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2일 차 론세스바예스~라라소아냐 27km
Camino de Santiago
프랑스길의 출발지 생장에서 시작해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까지 약 25km를 걷는 첫날. (본인처럼) 평소 운동량이 적었던 사람이라면 다리가 너덜너덜한 기분을 처음 느껴보고, 다음 날 일어나서 다시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프랑스-스페인 국경이 있는 피레네의 산맥을 넘는 일은 보통이 아니다.
이 과정에서 마치 드래곤볼을 하나씩 모으듯이 길에서 안면을 트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기는데, 생장 알베르게 문을 열며 만난 이탈리안 프란체스코와 피레네 깔딱 고개를 넘으면서 만난 캐나다인 바바라와 론세스바예스까지 무사히 도착 후 2일 차 여정을 같이 짜고는 잠에 들었었다.
새벽 6시경 알베르게에 울려 퍼지는 간드러진 기상송 (Good Morning♪ Good Morning♬). 까미노 첫날이었던 어제 알람도 못 듣고 눈뜨니 모두가 출발해 있던 충격적인 경험으로 맞춰둔 알람도, 기상송도 의미가 없었다.
우리 층에는 한국인들이 가득 몰려있었는데, 다들 어찌나 부지런한지 새벽 4-5시부터 불 켜고 안에서 양치하고 떠드는 소리에 계속해서 잠에서 깨고 있었다. 이래서 한국인들을 한 곳에 모아두었나 싶을 정도로 어디 경주라도 나가는 것처럼 일찍 출발하려던 한국인들.
그래도 어제 피레네 산맥 넘으며 혼비백산했던 덕분인지,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숙소) 컨디션이 환상이어서인지 생장에서보다 푹 자고 일어났다. 잤다기보다 기절에 가깝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니까 호스피탈레로 분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론세스바예스 봉사자분들 정말 친절하고, 따뜻하고 최고다.
알베르게에서 주는 유료 아침을 먹고 온 바바라, 그리고 어제 사둔 초코바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한 나와 프라 함께 길을 나섰다. (07시 50분)
알베르게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성당이 있는데 어제 못 들린 게 아쉬워 잠시 들렀더니 신부님이 계셨다. 국적을 물어보시고는 '부엔 까미노 (좋은 길 되세요.)'를 엄숙히 말씀해 주셔서 홀리했는데 성당 문 열자마자 프라가 키득거리면서 '어제저녁 미사 때는 와인을 좀 드셔서 그런지 엄청 밝고 좋아 보이셨어. 오늘은 술을 안 드셔서 완전 다른 사람 같아.' 한다.
둘째 날이라는 표시의 브이- 바바라, 프라와 함께하는 동안엔 하루가 지날 때마다 날짜를 손으로 표시해 사진으로 꼭 남겼다. 어째 나보다 더 사진을 좋아했던 프라
아주 청량하고 맑은 하늘 덕분에 시작이 좋았다. 어제의 그 빡세고 힘들었던 피레네는 없던 일인 듯 평탄했던 도로 때문에 오늘 완전 Easy Peasy ('식은 죽 먹기'/어제 바바라한테 배움)하잖아! 어제 동키 보냈던 것 때문에 배낭 메고 걷는 첫날이기도 한데 이러면 몇 십 킬로는 거뜬히 갈 것만 같았다. (착각이었다.)
거기다 만난 지 24시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낄낄거리며 함께 걸을 수 있는 프란체스코와 바바라가 있었다. 생장에서도, 숙소에서도 분명 한국인들을 여럿 만날 수 있었지만 익숙한 곳과 단절하고 낯선 곳에 나를 던지겠다는 초기의 바람대로 한국인 무리에 섞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한국말이 들려오고, 한국인들을 만났을 때 깊은 유대감과 반가움을 어느 때보다 크게 느꼈지만 더 낯설고 막막한 상황에 나를 던지고 싶었다.
그래야만 모든 것을 잠시 중단하고 구억만리를 떠나온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순례길에는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몇 km가 남았는지 적혀있는 비석이 있다. 어제는 피레네가 떠들썩할 정도로 웃고 떠들며 와서 그런지 비석을 다 놓쳐버렸다.
그렇게 둘째 날에 처음 보게 된 까미노 비석. 가장 위의 문양은 가리비로 까미노의 대표적인 상징, 가운데 화살표는 길의 방향, KM: 755는 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까지 755km가 남았음을, NAVARRA는 지금 걷는 이 길이 나바라 주도 (우리나라로 치면 강원도/경기도 같은 개념)라는 것을 뜻한다.
지도에서 우측 위가 나바라 지역 (론세스바예스~로그로뇨. 그리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가장 왼쪽에 있다. (파란색 포인트들을 이으면 걸어서 지나간 800km 여정, 걸으며 몇 개의 주도를 지나치게 된다.)
뭐가 그렇게 웃기고 재밌는지 수다가 끊이질 않는 프라는 말이 진짜 많은 이탈리안이었다. 덕분에 조용한 샛소리와 청량한 공기, 그리고 프라의 수다 완벽한 삼박자를 갖춘 아침
둘의 페이스는 아주 일정하고 빨랐고 주로 앞서 걸었다.
배낭에 한국에서부터 데려온 인형 밀구를 달아놨었다. 남편의 분신 같은 인형이었는데 걷다가 잠시 멈추라길래 보니 밀구가 달랑달랑하다가 떨어질 것 같다고 똑바로 고쳐 매주기도 했다.
어제 론세스바예스 이후의 일정 짤 때의 옵션은 두 가지.
1. 아마도 가장 많이들 멈추는 수비리 (Zubiri)까지 21km를 걷는 것 2. 수비리에서 약 5km가량을 더 걸어 라라소아냐 (Larrasoana)에서 멈추는 것이었는데, 둘은 라라소아냐를 택했다. 내일 팜플로나라는 대도시에 도착하기 때문에 오늘 많이 걸어 내일 일찍 팜플로나에 도착해 여유로운 관광을 즐기자는 것!
30분 정도 걸었을 때에 작은 수페르메르카도 (Supermercado, 슈퍼마켓)이 나왔다. 오늘 라라소아냐 도착 후 저녁을 만들어 먹기로 했었는데 마트가 어디에 있을지 몰라서 장을 봐갈까 하다가, 짐을 캐리하고 20km 가는 건 오바라는 생각이 들어 가벼운 간식거리를 사고 지나쳤다.
이 앞에서 프랑스에서 온 마리라는 친구를 만났다. 프라가 '저 친구 혼자온 거면 같이 걷자고 하는 게 어때?' 하며 드래곤볼을 모으길래 제안했다가 혼자인 시간을 갖고 싶다며 거절당했다. 외국인들은 참 표현을 솔직하게 하는구나? 다음번에 또 만나 마리
수비리/라라소아냐까지 가는 초반 길이 아주 평탄하기 그지없다. 배낭을 메고 걷는데도 괜찮잖아?
초반에 다리가 좀 풀린다 싶었더니 어제 장장 7시간을 걸은 탓에 다리가 내 맘 같지 않다. ATM이 나타나서 바바라 돈 뽑는 동안 아무 데나 철퍼덕 앉아 간식 먹는데 순례자들 계속 지나가길래 이 자세로 부엔까미노 연발하는 나, 제법 순례자 같잖아?
약 6.5km 정도를 걸어 에스삐날 (Espinal)이라는 마을을 지나고 있을 때, 저 멀리 반가운 말의 궁둥이가 보이더니 어제 피레네 산맥에서 그의 말 헤라클레스와 함께 걷던 릭을 만났다.
'릭! 어제는 어디서 잤어요? 잘 곳은 있었어요?' 하면서 반가운 인사를 마친 우리 주위로 모든 순례자들이 모여 말을 찍기 시작한다. 어제 길에서 한 번 만났었다고 이렇게 반가울 줄이야
마을길을 걷다가 본격 산길이 시작된다. 걷다가 어제 프라를 잠시 멈추게 했던 강아지와 함께 걷고 있는 이탈리안 커플도 만났다. 큰 배낭을 메고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니 홈리스 (Homeless)인 줄 아는지 숙소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며, 어제도 텐트를 치고 잤다고 한다.
바바라랑 나도 잠깐 쉬어가자며 멈추고, 프라의 동향 사람들과의 수다가 이어지는 순간 여기서 프라가 그들(이탈리안 커플)과 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지게 되는데.. 30분 뒤 내가 모자를 흘리고 간 걸 알아차려 프라의 연락을 받은 이들이 고맙게도 모자를 챙겨 와 줬다. 작은 인연이 소중한 연으로 이어지는 까미노다.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셔서 잠깐 스몰토크를 나눈 70대 프랑스 할아버지. 동양인 버프+화장기 없는 맨 얼굴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어리게 보는 경향이 있었다. 정말 신기하고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어떻게 혼자 왔냐고(?) 여쭤보시는데 저는 30대 유부녀입니다만..
그렇게 만났다 헤어지는 작은 순간들이 반복되어 인연이 된다.
마을길 걸을 때까지만 해도 평화롭다가 숲길이 나오고서부터는 거의 사진도 못 찍었다. 바바라와 프라의 빠른 페이스, 그리고 웅덩이나 잘 닦여있지 않은 산 길을 타느라 걸음에 집중해야 했다. 한 5시간 정도 17km를 걸어 Pass of Erro (에로)라는 마을을 지날 때쯤 나타난 푸드트럭. 지금은 오후 1시다.
그러고 보니 수비리까지 가는 길에도 쉬어갈 카페가 거의 없으니 초입에 나온 마트에서 간식을 꼭 챙기는 게 좋겠다. 스페인의 뜨거운 햇빛은 금방 지치게 하고 계속해서 갈증이 난다. 중간중간 음수대가 나오면 물을 꼭 채워두는 것도 필요하다.
그럼 화장실은 어떡하냐고? 중간에 바르 (BAR)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으면 바로 노상방뇨행이다.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도저히 그럴 자신이 없는 나는 물을 최대한으로 먹지 않다가 몇 번이나 탈수가 올 뻔했다.
수비리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점, 바닥에 지갑이 떨어져 있는 걸 발견했다. 어제 론세스바예스 다 와서 누군가 지갑을 흘렸고 다시 되돌아갔더니 지갑은 있었는데 안에 돈은 모두 사라져 있더라는 순례애 와장창 사건이 있어서인지 조마조마하게 지갑을 열어보니 다행히 돈도, 신분증도 있었다. 길 중간에 떨어져 있었고 이 자리에 그대로 있는 걸로 보아 분명 우리 앞사람들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때부터 미친 듯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한 30분 경보한 끝에 영국에서 온 세 친구 어르신을 만났다. 길에서 지갑을 주웠는데, 지금 본인 지갑 다 있는지 체크해 보라고 프라가 말을 건네니 가운데 빨간색 옷을 입은 어르신이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놀라서 지갑이 없어졌다고 하신다. 바바라가 침착하게 신분증 속 이름과 어르신 이름을 대조하더니 돌려드리면서 주머니에 넣지 말고 백에 넣고, 진짜 조심하시라고 당부했다.
너무 고맙다며 수비리에서 맥주 한 잔 사겠다고 하셨지만, 갈 길이 멀었기에 인사만 하고 그들을 추월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우리 진짜 까미노 천사들 아니냐며 행복해하는 프라를 보며 덩달아 행복해졌고, 우리 셋이 있는 메신저 단톡방 이름이 'Angels of Camino'가 된 배경이었다.
아침 7시 50분 길을 나서 2시경 도착한 수비리. 점심 즈음부터 햇빛이 본격적으로 내리쬐기 시작해 아침과는 다르게 찌는 듯한 날씨가 더더욱 지치게 했다. 거기에 제대로 된 밥을 먹지도 못했지만, 수비리는 오늘의 종착지가 아니다.
수비리 앞에서 만난 미국인 피터, 부엔 까미노 인사하다가 '어디까지 가?' 했더니 '라라소안? 라라오냐? 모르겠어 잠시만.' 하고 이름 찾는 중이다. 모두에게 마을 이름들이 낯서니까 흔한 일이다. 첫날 바바라에게 우리의 목적지는 '론세스바예스'라고 20번은 넘게 얘기했는데 오늘 아침 또 까먹은 것처럼.
무튼 나도 라라 어쩌고 거기까지 간다고 하고 헤어졌다.
라라소아냐까지는 앞으로 5km를 더 걸어야 했다. (5km=1시간 남짓) 라라소아냐에 마트가 있을지 모르니 이제는 정말 식료품을 사가자는 말에 잠깐 슈퍼마켓에 들리기로.
분명 입구는 좁은데 안에 들어가면 정육, 과일, 공산품까지 없는 게 없던 신기한 구조의 스페인 슈퍼에서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거리를 간단하게 샀다.
슈퍼 앞의 테이블에 잠깐 앉아서 맥주 한 캔 하는데 이게 바로 지상낙원인가. 솔직히 어제의 피로+처음 백팩 메고 걸어 부서질 것 같은 어깨+너덜너덜한 다리 때문에 나는 여기서 멈추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그럴 용기가 안 났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수비리에 자리를 잡고 쉬고 있는데 나는 또 1시간 이상을 더 걷는다니?
무튼 이렇게 쉬는데 다들 숙소 풀부킹 걱정을 하길래 알베르게에 전화를 돌리고 있는 바바라. 그럼 뭐 하나, 스페인어가 안 통한다.. 30분 정도 짧은 휴식을 갖고 다시 출발.
오후 4시, 라라소아냐 도착
론세스바예스~라라소아냐 (27km, 8시간 소요)
시간이 지날수록 나만의 패턴이 생기지만 초반에는 km 수에 대한 감이 없다. 둘째 날이니 없을 수밖에. 근데 오늘 8시간 동안 걸은 27km는 초반치고 굉장히 긴 거리였다.
평균적으로 1시간에 4km 정도를 걷는다고 했을 때 순수 걷는 시간만 해도 8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인데, 중간에 몇 번 쉰 걸 감안하면 8시간 만에 도착했다는 건 평균 시속이 5km 가까이였다는 소리였다. 다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굉장히 무리했다는 걸.
하지만 누굴 탓하리오. 분명 어제 프라와 바바는 라라소아냐까지 가는 것에 내 의견을 물었고 괜찮다 답했다. 근데 27km를 걸어봤어야 이 힘듦을 알지, 다음부터는 분명히 말할 수 있겠다. '안 괜찮다고'
오후 2시가 넘어가면서 스페인 태양은 미친 듯이 내리쬐는데 수비리에서 먹은 맥주 한 캔 때문에 열기가 더해지고, 걱정했던 화장실은 급해오고, 라라소아냐까지 가는 길은 험난하고,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제대로 된 식사 한 번 없이 걷고 있는 나 자신....
첫날 피레네보다 힘들어서 사진 한 장 못 남겼다. 그래도 거의 다 와갈 때쯤에는 파일럿 영국 할아버지와 그의 친구들을 만나서 인천공항으로 비행 왔던 경험 등을 들을 수 있었는데 거의 혼수상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숙소는 San Nicolas Hostel이라는 베드 40개의 아담한 사립 알베르게. 15유로 (21,800원)이라 순례길 숙소치고 비싼 편에 속했다.
순례길 숙소는 1. 시에서 순례자들을 위해 저렴하게 제공하는 '공립 알베르게 (Municipal)'와 2.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 알베르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일반적으로 공립 알베르게는 저렴한 대신 베드수가 굉장히 많고, 사립 알베르게는 가격이 좀 있는 대신 베드수가 적고 시설이 더욱 좋을 가능성이 있다. (모든 사립 알베르게가 다 공립보다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어제 몇 십 명이 같은 층을 쓰던 공립 알베르게에서 4명만 쓰는 사립으로 오니 이렇게 아늑할 수가.
오른쪽 위는 로지, 그 아래 바바라, 그 옆에는 다른 이탈리안, 그리고 그 위 프라 이렇게 우리 셋이 같은 방을 쓸 수 있었다. 샤워부터 하고 빨래도 한 후에 베드 커버를 깔고 침낭을 꺼냈다. (바바라에게 1층을 양보했으니 나는 3일 연속 2층 베드다.)
거의 여섯 시가 다 된 시각, 스페인의 해는 아직도 중천이다. (저녁 9시 정도 되어야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알베르게 앞 테라스에서 옹기종기 수다 떨고 있는데 (이때 프라가 개조해 이탈리아 전국을 누볐던 다마스 Ulisse를 보여줬다.) 옆 자리에 앉아있던 미국인이 본인을 데이빗이라고 소개하며 '주위에 오디오 있는 것 같아서, 같이 얘기 나눌 수 있을까?' 하고는 합류.
캘리포니아에서 왔다는 데이비드 영어는 특별한 억양과 미국 본토 발음 때문인지 '한국인 20대들은 뭐 하고 놀아?'라는 간단한 질문도 알아듣기가 너무너무 힘들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었다.
출신 나라와 이름 등을 소개하고 있으니 옆에 있던 완전한 금발의 핀란드인 얀이 맥주를 한 캔 들고 '너 파인애플이랑 피자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으며 프라 옆에 앉는다. 프라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그건 안될 일이지.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야.' 하는데 자국 음식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전통에 목숨 거는 이탈리안에게 거의 금기시되는 조합이었고, 우리는 모두 숨넘어가게 웃었다.
맥주를 더 사 와야겠다 싶어 바로 옆 슈퍼로 갔더니 갑자기 주인이 "안녕하세요!" 한다. 알고 보니 한국인 여자친구가 있었던 스페인 사장님, 라면 있냐고 여쭤보니 김치도 있다고 하시길래 당장 흡입하고 싶었지만 왠지 지는 것만 같은 기분에 맥주만 사들고 나왔다.
아직도 훤한 지금은 저녁 7시 반. 우리는 수비리에서 사 온 달걀, 파스타면, 베이컨을 꺼냈다. 오늘은 프라가 이탈리안으로서 까르보나라를 만들어주겠단다.
크림소스를 넣는 한국식 까르보나라와 달리 (크림소스 얘기를 듣더니 아주 기겁을 하던 프라) 계란+베이컨+면으로만 만드는 진짜 이탈리안 파스타. 근데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어찌나 대단하던지, 티라미수가 프랑스 건 줄 알았다고 하니까 또 극대 노하면서 그거 이탈리아 거라고 설명을 늘어놓는다.
자기를 진짜 화나게 하고 싶다면 본인 앞에서 스파게티 면을 반으로 잘라서 냄비에 넣으면 된다는데, 나중에 어떤 한국인을 통해 한국인들끼리 파스타를 만들고 있었더니 그걸 보다 못한 이탈리안 할아버지가 그게 아니라며 직접 만들어줬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들에게 파스타는 모욕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한 상, 이탈리안이 만들어준 정통 파스타라니! 레시피가 정말 심플하고 한국식 까르보나라와 달랐지만 배고파서인지 맛있게 먹었다. 수페르메르카도에서 사 온 싸고 (2-3유로) 질 좋은 와인까지 있어 행복하기 그지없었다.
이 날, 같은 알베르게에 있던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알베에서 제공하는 15유로짜리 저녁을 신청해 커뮤니티 식사를 했다.(모든 순례자가 둘러앉아 함께하는 식사) 덕분에 우리는 붐비지 않은 부엌에서 각국의 결혼 문화부터 여성/남성의 인권, 그리고 왜 순례길에 오게 되었는지 등등을 얘기하며 오랜 시간 프라이빗한 저녁을 즐긴 후 10시 30분경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