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3일 차 라라소아냐~팜플로나 15km
Camino de Santiago
다년간의 직장 생활에 찾아온 번아웃을 이겨보려 순례길에 기대했던 건 단 한 가지, '매일매일 걸어야 하는 길고 외로운 고행길이 지나면 마음의 힘듦이 잊혀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내 순례길은 시작부터 사람들로 가득 찼다. 사람과 감정 소모에 치여 떠나온 이 길에서 만나는 누구에게나 말을 걸며 마음을 내어줬고,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시작점에서 프란체스코에게, 피레네 산 중턱에서 바바라에게, 첫 마을 숙소의 옆베드 형상 씨에게 말을 걸지 않았더라면 내 순례길은 정말 '길고 외로운 고행길'이었을 테다.
항상 힘을 주고 살 필요는 없었다.
때론 이토록 작은 용기와 선택이 모든 걸 뒤흔든다.
작은 선택들이 만들어내는 결과가 인생이려니,
생각했다.
어제 수비리 (Zubiri)에서 장 봐온 것들로 오늘 아침은 바바라가 프렌치 토스트와 살라미를 준비해 주었다. 1일 차 생장에서도, 2일 차 론세스바예스에서도 제대로 된 아침을 먹고 출발하지 않았기에 오늘 아침이 너무나 든든하고 고마웠다.
바바라와 프란체스코, 그리고 또 다른 이탈리안 4명이서 쓴 방은 최고였다. 사람이 적으니 코 고는 소리도 덜나고 화장실도 바로 앞에 가정집처럼 있길래 이래서 사립 알베르게를 가끔 가나보다 싶었다.
아직도 짐 싸는 게 서툴고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급할 것 없이 천천히 준비하고 8시경 길을 나섰다.
오늘은 순례길에 등장하는 3개 대도시 (팜플로나, 로그로뇨, 레온) 중 하나인 팜플로나에 도착하는 날. 2일 차에 대부분 끝마치는 수비리가 아닌 5km 더 멀리 있던 라라소아냐까지 온 것도 팜플로나까지 가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였다.
2일 연속 무리했더니 심상치 않은 다리로 속도를 내기 어려워,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바바라와 프란체스코를 앞세워 걷는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아침부터 노래를 흥얼거리는 프란체스코에게 '그거 네가 방금 만든 노래냐, 마을 지나갈 때는 좀 조용히 좀 하자, 너나 조용히 해라'며 투닥거리며 걸었다.
처음으로 Alternative (대안길)가 나타났다. 앞으로도 종종 우회로가 나타나며, 이때까지만 해도 내가 직접 맵을 보지 않았기에 친구들을 따랐다.
가는 길에 첫날 생장에서 마주쳤던 선미언니를 만났다. 여자 혼자라 걱정했던 것보다 수월하다며 간단한 대화를 하다가 바바라와 프라에게 뒤처지지 않도록 앞서 걸었다.
어제부터 우리 일행을 불안하게 했던 한 가지, 4월부터는 본격 까미노 시즌이라 가뜩이나 사람이 많은데 코로나로 인한 자유 여행 금지가 대부분 완화된 2023년도는 더더욱이나 순례객들이 많다고 했다.
각 마을마다 알베르게(숙소)와 베드(침대) 개수는 한정적이니 이미 모든 숙소를 예약해 온 사람도, 전 날에 숙소 예약을 미리 하는 사람도 많았다.
팜플로나는 예약 대신 선착순으로 입장을 받는 공립 알베르게를 갈 것이라 괜찮았지만, 내일 도착할 마을의 숙소를 예약하려는데 자기가 한 번 해보겠다며 이탈리안 프라가 1차 시도. 스페인어를 몰라 실패, 바바라 영어 2차 시도 후에도 실패해 지나가는 순례객을 붙잡고 부탁하는 중.
'같은 알파벳을 쓰고,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가까우니까 프라는 말이 좀 통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마치 '한국과 일본, 중국은 가깝고 한자를 섞어 쓰기도 하니 언어를 몰라도 말이 통하지 않을까?' 같은 바보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다.
작고 아름다운 마을 비야바(Villava)에 도착했을 때 모자를 잃어버린 줄 알고 찾고 있는 김로지. 그리고 '너 또 뭘 잃어버렸냐'며 신나게 놀릴 준비를 하고 있는 프란체스코다. 어제부터 계속 모자, 장갑, 스틱 같은 것들을 두고 다녀서 관심병사가 되어버린 나..
쌀쌀한 아침 8시경 길을 나섰는데 오전 10시부터는 슬슬 더워진다. 그래서 아침엔 바람막이, 후드, 경량패딩을 모두 입고 출발했다가 하나씩 벗어젖히는 바람에 짐이 점점 늘어나는 중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대도시 입성할 때마다 길이 잘 닦여있다.
오전 11시 30분경, 팜플로나 Jejus y Maria 공립 알베르게 도착. 12시부터 체크인이 가능해 먼저 도착한 순례객들이 가방을 줄지어 세워두었다.
생장에서부터 마주쳤던 나이 지긋한 한국인 아버님은 은퇴한 역사 선생님이셨다. 바바라에게 어쩜 그렇게 잘 걷고 빠르냐며 베스트라고 (바바라도 60대였다.) 통역을 해달라시는데, 영어나 스페인어를 하지 못하시면서도 은퇴 후 꿈을 이루기 위해 여기까지 오신 아버님이 더 대단해 보였다.
이 날 처음 뵌 창민님 역시, 추후 일정을 간간히 함께한 인연으로 발전했다.
처음으로 1층 베드를 받았다. 1층에 집착하는 이유는 너덜너덜한 발목으로 2층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 옆 자리엔 처음 만난 독일인 피자, 그 옆은 얀, 그 옆은 또 역사 선생님 어르신 등 오며 가며 마주친 사람들이 모두 같은 공간에 있었다.
1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에 온다는 20번째 까미노였던 벨기에인은 짐을 푸르자마자 술 병을 꺼냈다. 이미 어느 정도 취기가 있어 보이는 상태였지만 번역을 도와달라는 선생님 옆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데, 점점 얘기가 어떻게 하면 동양인과 결혼할 수 있는지, 나는 애인이 있는지로 이상하게 흘러 자리를 떠났다.
한국에서부터 챙겨 온 원피스가 있었다. 공용 샤워실에서 비좁게 샤워한 후 가볍게 걸치기 좋고, 대도시에서는 관광객 느낌을 내기 좋다길래 엄청나게 고심해 골랐던 원피스였다.
알베르게에서 땀에 절은 운동복을 벗어던지고, 트래킹화가 아닌 슬리퍼를 신고 나와 혼자 걷는데 완벽한 해방감, 완벽한 자유였다.
산책을 하다가 친구들이 있다는 광장으로 갔다. 저 멀리 걸어오는 내 모습을 보며 너무 엘레강스하다는 바바라와 너는 너무 순례자 같지 않다며 놀리던 얀. (솔직히 순례자였어도 완전히 내려놓을 수 없었던 것은 인정한다.)
이름도 생경한 낯선 도시에 와있는데, 내 이름을 불러주고 기다려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할 행복이었다.
그러다가 처음 만난 케일리라는 친구.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와서 조금 후회 중이라는 그녀는 20대 초반의 미국인이었고 간간히 길에서 마주쳤다.
대도시를 마음껏 구경하고 싶다는 프란체스코의 바람대로 잠깐 관광지 안내소에 들러서 설명과 안내문을 받았다. 여기저기 신나서 가이드를 해주는 프란체스코 뒤를 바바라, 나, 얀, 그리고 어느새 합류한 벨기에인 팀까지 졸졸 쫓아다녔다.
오늘만큼은 왠지 혼자 돌아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아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카페 이루냐를 혼자 찾았다.
카페콘레체 (카페라떼)와 치즈케이크, 많이 걷지도 않고 여유로운 완벽한 하루.
저녁 7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는 스페인의 4월. 모두와 연락해 레스토랑을 함께 찾았고, 광장 앞 야외로 2차를 갔다. 바바라가 데려온 아스트리드는 58세로 바바라와 동갑이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소개하니 얼마 전 어떤 레스토랑에서 Son (손흥민)을 봤고 와인을 직접 따라주었다며 신나 했다.
본인의 국적을 '홀란드'라고 소개해 알아듣지 못하니 네덜란드는 아냐고 묻는다. 후에도 종종 본인을 홀란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알고 보니 네덜란드 일부 지역을 홀란드라고 한단다.
'NO VINO, NO CAMINO (와인이 없으면 까미노도 없다.)'를 알려준 얀에게, 건배는 핀란드어로 'Kippis! (킵피스)'라는 것도 배웠다.
저녁 10시 통금에 맞춰 알베르게에 들어가야만 하는 우리는 알베르게 대문 앞에서 춤을 전파하는 프란체스코를 보며 배를 잡고 웃었다. 이탈리안은 이렇게 흥이 많구나.
오늘 육십이 가까운 나이의 캐나다인, 네덜란드인, 40대 핀란드인, 30대 김로지와 이탈리아인, 20대 벨기에인 톰까지 국적 나이 성별 관련없이 편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확실히 낯선 상황에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