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결혼생활

둘이 살아가기

by 균형


'저 결혼하려고요. 그런데 이혼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친한 목사님께 소식을 덤덤히 전하던 날, 목사님은 눈이 동그래지셔서 잠시 말을 잇지 못하셨지요. 잠시 말을 고르신 후, '우선 결혼을 축하해요. 그런데 혹시나 주변 시선에 떠밀려 결혼을 강행하지는 말아요. 이혼보다는 파혼이 훨씬 쉬워.'


짧은 대화가 오간 후, 둘 다 웃음을 터뜨렸어요.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다가 갑자기 결혼 소식을 전하며, 친한 사람들에게는 결혼 소식과 함께 '이혼'이라는 단어를 함께 언급했어요. 다들 의아해했지요. 결혼을 해서 부부의 연을 맺더라도 남편은 결국 내가 아닌 타인이에요. 어느 누구라도 언제든 헤어져 남보다 더 못한 사이가 될 수도 있지요. 우리의 관계가 깨어질 수도 있는 사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 관계가 깨지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는 뜻일 거예요. 부부 사이는 엄청난 노력이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관계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어요. 같은 맥락으로, 저는 잘 살기 위해 죽음을 생각합니다. 언제 떠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 함께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은 너무나도 소중한 찰나거든요.


결혼을 고민하는 저에게 한 선배는, '일을 오래 하고 싶으면, 웬만하면 결혼은 하는 것이 좋아. 일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싱글 여자보다 기혼 여성이랑 일하는 것을 더 편해해.'라며 조언을 해 주었어요. 남성 중심적인 분야, 남자 사람의 비율이 90%를 훌쩍 넘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저를 진심으로 위한 충고였을 거예요. 미혼 여성에 대한 편견이 가미된 듯하여 미간이 미묘하게 찌푸려졌지만, 한편으로는 저도 미혼남성보다 기혼 남성이 대하기 편한 부분이 있기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기혼자란 이런 것인가요, 남성 여성을 떠나 그 사이 어디 애매한 부분에 위치하는 그런 어떤 존재. 그런데 저 말은 묘하게 저에게 장점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공과 사를 철저하게 하고 싶지만, 첫날 첫 만남에서 남자 친구는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부터 묻는 윗사람들을 대하며, 저는 없는 남자 친구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시 연애 관계는 개인의 일이므로 가타부타 알리지 않았던 이전의 회사와는 다른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리고 이곳에서 일을 얼마나 하게 될지 모르지만 저는 죽기 전까지 내 일을 하고 싶은 사람이고 이직 후 다른 곳에서 일을 하게 된다고 하여도 사람을 대하는 본질이 다르지는 않을 터, 어디서라도 B사감이 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왜 결혼을 결심했냐고 물으면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그냥 결혼할 시기였던 것 같아요. 주변에서 결혼한 친구들이 아기 낳고 남편이랑 알콩달콩(?) 사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고, 부모님이 결혼에 대한 말을 꺼내시지 않았음에도 괜히 죄송한(?) 마음도 들었고, 결혼은 언제 할 거라고 묻던 주변인들의 지나가는 말조차 사실 부담스러웠어요. 비혼으로 살 대단한 각오가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지금 하자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지요. 이런 생각이 들 때 남편이 제 곁에 있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결혼에 대한 결심은 이성적이지 않았고, 어찌 보면 사회적인 시선에 떠밀려 결정을 했던 것 같지만 그것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거든요. 배우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연애할 때와 결혼할 후에 확연히 달라지던데요. 싱글일 때에는 절대 알 수 없는 면모가 있더라고요. 운명이 있다면 우리의 타이밍이 적절했던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때에는 물론 몰랐지만요.


어떤 이유로 결혼을 결심하였든 결혼에 대한 결심은 온전한 내 선택이고 결정이었어요. 저는 부모님께 연애 소식을 어떤 방식으로도 알린 적이 없었기에, 갑자기 결혼하겠다는 폭탄발언에 엄마는 심지어 축하한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셨어요. 딸의 결혼을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하셨는지 일주일 정도가 지나서야 진심으로 말해 주셨던 생각이 나요. 부모님은 평소 결혼에 대한 어떤 말도 내게 하지 않으셨는데, 결혼의사를 전하니 그제야 걱정이 되는 마음도 부담이 될까 말을 아꼈다며 안도하셨어요. 그리고 사실 얼마 전만 하여도, 부담감에 결혼 이야기만 꺼내도 털을 바짝 세우는 고양이처럼 가르랑 대는 통에 헤어질뻔한 후로 당시 애인은 결혼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노라 약속한 후 관계를 이어나가던 때였거든요. 얼마 지나지 않아 해가 바뀐 후 저는 돌연 결혼을 결심했고 애인의 생일에 좋은 레스토랑을 예약해 분위기를 한껏 잡은 후, 직접 프러포즈를 했더랬지요. 운전에도 사람의 심리가 반영되는지 집으로 데려다주는 그의 차 마저 살짝 들떠 있었던 생각이 나요.


결혼에 대한 모든 선택과 결정이 나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사실 큰 부담이었어요. 혹자는 누구의 반대 없이 진행되는 결혼이 쉬워 보인다고 했지만, 대신 물러날 곳이 없었어요. 모든 선택의 책임이 내게 있다는 것은 꽤 무거운 법이지요. 나의 선택이었고, 결정이었고, 그로 인해 내 앞에 펼쳐질 나의 새로운 삶도 오롯이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었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누구의 탓도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결혼생활을 잘 유지해 나갈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누워서 침 뱉기라고 했던가요, 이 사람도, 이 생활도, 저의 선택이고 안목인걸요. 그러니 이 이의 좋은 점을 더 보고, 단점이 있다면 그것을 단점으로 보는 '나'라는 존재에 깊이 숙고하고 그러면서 이 생활에서의 균형 잡기를 치열하게 하는 중입니다.


가끔은 여전히 싱글인 지인들의 삶이 부러울 때가 있어요. 왜 없겠어요. 시간을 온전히 나에게 쏟을 수 있는 그들의 자유로움이 종종 그립지만, 그 자유를 누리고 있을 때 저는 정작 가족에 매인 지인들을 부러워했어요. 이는 아마 내가 가지 못한 길을 걷고 있는 이들에 대한 동경이고 애착일지도 모르겠네요. 30대 초, 싱글이었던 당시의 저를 부러워하는 결혼한 지인들을 보면서 다른 삶을 부러워하느라 허비하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인생은 돌고 돌아 저 다짐이 반대편에 서 있는 내게 다시 돌아오네요. 부러워하지 말자. 현재의 내 삶에 감사하고 만족하자. 지금은 지난 일은 지나간 대로 두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 더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다행히 파혼 없이 신랑과 무사히(?) 결혼했고, 여전히 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 생각이 역으로 우리의 관계를 더 건강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저, 이상한가요. 함께이지만 따로, 따로이지만 우리가 나란히 걸어갈 수 있는 방법을 늘 궁리할 거예요. 물론 예전보다 약간(아니, 아마도 아주 많이) 제약이 있겠지만 이 또한 제가 선택한 삶인걸요. 신랑은 자신의 최선을 다 해 그의 삶을 살아가겠죠. 저도 최선을 다 해 나의 삶을 살아갈 거예요. 각자가 행복하면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