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시간을 내어주고, 우리의 시간을 얻다

함께 살아가기

by 균형


둘째 B의 100일을 갓 넘긴 어느 날 친구가 놀러 왔어요. 첫째 J와 동갑내기인 그녀의 딸도 함께요. 아이들의 넘치는 에너지를 소진시키기 위해 놀이터에 갔다가 근처 카페에 들어갔어요. 저희에게 허락된 시간은 만 1세 아가들의 집중력이 허락된 시간뿐이었어요, 집에서는 절대 주지 않는 달달한 과자를 양손 가득 쥐어주고 오물오물 먹느라 잠시 조용한 틈에 커피를 (진짜) 호로록 마셨지요. 누가 뭐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작은 카페에 유모차 2대를 끌고 들어갈 때부터 눈치가 보이지 뭐예요. 혹시나 아이들이 시끄럽게 할까 싶어 사람들이 최대한 멀리 떨어진 구석진 자리를 잡았어요. 그러고도 가까운 테이블에 마주 앉아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이들에게 혹여나 방해가 될까 아이들을 계속 주시했어요. 어쩜, 카페에 음악소리조차 조용하다 싶은 거 있죠. 집에서 먹지 않는 달달한 과자를 쥐어주니 허겁지겁 먹네요. '조금 천천히 좀 먹으렴.' 최대한 타이르다 아이들이 몸을 뒤틀고 옹알옹알 소리를 지르기 바로 직전에 부스러기며 그릇이며 정리하고 나왔어요. 3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어요. 카페를 나와 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하는데 글쎄 너무 아쉬운 거예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엄마의 삶은 이런 건가요. 정녕.


결혼 전, 3살 아이를 키우는 한 친구가 보고 싶어 외근으로 일찍 끝나던 날, 집에서 먼 친구 집에 찾아간 적이 있어요. 3살 아가와 함께 카페에 갔는데 친구가 아이를 보느라 저에게 집중을 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날도 1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을 앉아있다가 나와서 금세 헤어지고 집에 오는데 친구에게 너무 서운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생각이 났어요. '아, 친구는 그날 나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한 것이구나'


'산후우울증'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셨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겪고 넘어간다고 하죠. 대체 무슨 자신감인지 저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그럴 리 없어. 분유를 먹지 않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느라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던 그때, 밥 먹을 시간조차 부족하던 그때, 그 와중에도 배고프다고 울고, 오줌 쌌다고 울고, 안아달라고 울고 졸리다고 우는 아이들을 달래며 지쳐가고 있었어요. 임신과 출산, 신생아 육아가 되풀이되는 지난한 시간을 지날수록 도저히 예전의 삶이 회복되지 않을 것만 같았어요. 나도 모르게 깊이 파내려 가는 땅굴을 바라보며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지요. 스스로 회복탄력성이 크다고 자부했건만, 저도 별 수 없더라고요. 결국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 xx 염색체를 가진 한 존재일 뿐임을 깨달았죠. '애 낳고 날씬한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예쁜 몸매는커녕 이 살을 과연 뺄 수는 있을까. 복직을 한다고 한들 내가 일을 다시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나의 삶은 어떻게 흘러가게 되는 걸까.' 온갖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어요. '시간을 빼앗긴 것 같아. 나의 삶인데, 내 시간은 어디에 있지?' 친구와 단 둘이 카페에 앉아 도란도란 수다를 떨고 싶었어요. 딱 한 시간만이라도 우아하게요. 그런데 그것조차 사치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어요.


피곤한 와중에도 아이들을 재우고는 꼭 나와서 고요한 시간을 가졌어요. 물론 1시간마다 깨는 아이들을 달래러 들어가야 하지만 그래도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시간이 너무 좋았어요. 사실 뭐 별다른 일을 하는 것은 아니에요. 핸드폰 손에 쥐고 세상 돌아가는 이모저모 기웃거리는 게 전부죠 뭐. 그러다 우연히 글쓰기 공동체를 찾았고. 매달 바뀌는 리더 언니가 던져주는 글감에 맞게 글을 지어내기 시작했어요.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글감에 맞는 글을 쓰기 위해 육아 혹은 집안일과 상관없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쉬어지던데요. 그렇게 오랜만에 생각이란 것을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요. 아이나 가정 말고 나를 위한 공부를 해야겠다 싶었죠.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을 하면 지금보다 시간이 더 없을 테니 지금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의 도움을 받아 (친정어무이=사랑) 오후에 3시간 정도의 시간을 확보했어요. 물론 그 시간에 집에서 쉬는 것이 체력 확보 측면에서는 더 나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만으로도 삶에 활력이 생기던데요.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서 씨름하다 보면 내 애지만 정말 미울 때가 있는 거, 혹시 저만 그런가요. 그런데 잠시 외출하고 돌아가면 아이들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어요. '세상에 내가 이렇게 예쁜 아이를 낳았다니! 너네, 엄마 뱃속에서 나온 거 맞아?' 그때 확신했어요. '그래, 조금이라도 나의 시간을 갖자. 그 외의 시간은 오롯이 함께 할게. 그러면 너희와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양 발 묶인 채 쳇바퀴 돌던 삶에서 잠시 거리를 두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 있었어요. 나라는 존재에 대한 관찰, 내가 좋아하는 모습들, 쉼을 얻는 방법 등. '나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바라보고 계획하고 노력하면서 활력을 얻는 사람이었지. 아무리 바빠도 하고 싶은 것들을 죽을 만큼 피곤하게 찾아서 그것을 하기 위해 일상을 살아내는 사람이었지.' 아이들을 열심히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과 함께 잘 살아내기 위해 스스로를 돌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저를 조금씩 보듬고 나니 그제야 아버지가 제게 매일같이 하시던 말씀이 귀에 들어오더라고요. '이렇게 예쁜 아이들이랑 함께 하루를 보낼 수 있다니, 부럽다 딸. 이 순간이 길지 않을 거야. 곧 지나간다. 지나고 나면 무척이나 그리운 순간이 될 게야.'


J의 2번째 생일과 멀지 않은 B의 첫 돌이 지났어요. 한 번의 유산과, 연이은 임신&출산으로 아이들을 제 몸에 품고 키우기 시작한 지 어느새 3년, 시간이 훌쩍 흘러갔군요. 지난한 시간들을 지나고 있다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그 무엇보다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들이었네요. 눈도 제대로 못 뜨던 하나의 생명체가 웃고, 기고, 일어나 걸으며 사람다운 모습이 되기까지 성장하는 과정은 무척이나 신기해요. 이 경이로운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 제게 주어진 축복일 거예요.


나의 시간을 빼앗겼다고만 생각하던 시간이 분명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은 '나'만을 바라볼 때의 관점이었어요. 나만을 바라보던 시간은 어쩌면 빼앗겼을지도 모르죠. 대신 우리를 바라보는 시간을 얻은 것 같아요. 아직은 낯설어요. 엄마라기엔 너무나도 서툴고요. 그래도 어렴풋이 우리의 시선으로 제 삶을 바라볼 때 경험할 수 있는 세상이 더 다채로울 것 같기도 해요. 잘만 하면, 우리가 함께 한 모든 시간은 눈부신걸요.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다면서요. 그래, 나만 예쁘게 찍는 사진 말고, 나도 예쁘고 너도 예쁘고 우리 모두가 예쁜 그런 사진을 담아봐요 우리. 잘 찾아봐야겠어요. 온전한 나로서, 한 남자의 아내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우리가 평화롭게 균형을 맞추어 살아갈 수 있는 지점이 분명 있을 거예요.


며칠 전, 그 친구를 다시 오랜만에 만났어요. J와 동갑내기인 그녀의 딸도 함께요. 이제는 둘이 제법 깔깔대며 뛰어다니는군요. 만 2세 아이들의 집중력이 허락하는 시간뿐이었지만, 커피 한잔 여유롭게 마실만큼은 된 것 같아요. 아, 장소는 키즈카페였어요. 아이들도 저희들도 자라고 있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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