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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임 Mar 15. 2021

스물아홉이 건네지 못하는 위로

2021.03.14

  며칠 전 이사를 했다. 새로운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나니 확실히 안정감이 들었고 실로 오랜만에 청소와 빨래를 하면서 '일상'의 트랙에 들어왔음을 느꼈다. 아직도 새로운 환경에 정착하기 위해서 필요한 절차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잘해나가고 있는 것 같다. 집이라는 공간이 이렇게 충족감을 줄 수 있는지 몰랐는데 좋은 집이 생기고 나니 이 먼 곳까지 오기 위해 온갖 수고로움을 감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에서 생활을 할 때에는 회사 기숙사에서 살았기 때문에 특별히 좋을 것도 나쁠 것도 없었다. 서울에서 지낼 때에도 작은 원룸이었지만 회사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탓에 집이 좋은지 어떤지 평가할 틈도 없었던 것 같다. 원래 좀 무던한 성격이라 일상생활이 가능한 정도이면 생활공간에 대해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았던 것 같다. 이곳에 오고 나서 새로운 집을 구할 때에도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감사하게도 그런 나에게 너무 좋은 보금자리가 생겼다. 넓은 거실, 소파, 식탁, 침실, 드레스룸, 발코니 등등 혼자 생활하기에 과분할 정도로 멋진 곳이다. 


  이곳저곳 청소를 하고 물건을 정리해두니 진이 빠져서 소파에 앉았는데 거실 창밖으로 햇살이 쏟아져내리고 바람이 불었다. '아, 나 정말 큰일 날 뻔했다.' 싶었다. 지난 계절들이 떠오른 것이다. 사랑하던 이와 헤어진 이후에 과연 그 사람과 계속 만났더라면 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고 그려보았던 적이 있었다. 직장을 잃고 연인을 잃고 나서 나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던 적도 있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더욱이 나와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였고 어찌할 바를 몰라했던 것 같다. 그 시간을 지나 지금에 와 있다고 생각하니 그래도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보다 믿었어야 하는 나의 가능성 앞에서 얼마나 흔들렸는지 모른다. 앞으로 나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 또한 수없이 많은 밤들을 걱정과 불안으로 보내었다. 과거의 내가 우울에 잠식되어 꼼짝없이 좌절의 늪에 갇혔더라면, 지금의 나는 있을 수 없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졸업을 앞둔 대학생, 졸업을 한 취준생, 이직을 준비하는 회사원. 지금도 여전히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이들이 자신의 오늘을 져버리지 않았으면 한다. 스물아홉이나 먹고도 모르는 건지 아니면 스물아홉 밖에 되지 않아 모르는 건지 모르겠으나 나는 답을 모른다. 내게 물어오는 그네들의 고민과 힘듦을 나도 기꺼이 나누어지고 그럴듯한 해답이나 위로를 주고 싶은데 나도 잘 모르겠다. 가슴속 깊이 차오르는 따뜻한 위로를 주고 싶은 이들이 곁에 있는데 해주지 못했다. 오늘도 내가 이렇게 조용히 당신들을 위한 밤을 보내고 있음이 위로가 될 수 있을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언제고 이렇게 곁에서 함께 달릴 것이다. 우리는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가능성의 존재들이니까. 내가 당신 곁에 늘 있을 테니 그 길이 조금 힘들어도 우리 끝까지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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