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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유록 Sep 21. 2018

나의 아저씨 : 너의 '첫 사람'에 대한 드라마

첫사랑보다 진한 첫 사람

나의 아저씨.

이번 여름 가장 기억에 남을 드라마. 쓸쓸한 가을 겨울 즈음에 봤으면 좀 더 분위기가 맞았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나의 추운 계절에는 마음이 넉넉했고 더운 계절은 조금 쓸쓸하고 무언가 부족했다. 그러니 적절하다고 생각하면 될까-. 드문드문 봤었는데 엄마 입원하셨을 때에 몰아서 다 봤다. 출근하면서도 보고 퇴근하면서도 보고 이동하면서도 보고. 가만 앉아서도 보며 눈이 벌게지기도 하고 빙긋 웃기도 하며 16부작을 읽어갔다.

각 회차의 구분이 중요한 드라마 같지는 않다. 한 회 정도 빠뜨렸다고 흐름이 깨어지는 드라마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도 드문드문 봤을 때의 감정과 몰입해서 다 본 후의 감정이 다른 것 보면 몰입이 중요한 드라마이기는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물 중심으로 읽히는 이 드라마,
각 배우들이 연기를 한다는 느낌보다는 자기 옷을 입었다는 느낌 가득이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짚어보고자 한다.

- 아이유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하는 것 같은 이지안의 개인사
- 박동훈으로 기억하게 될 이선균의 이번 캐릭터에 대해서
- 후계, 후계! 후계 집단의 꿈같은 유대

잔잔하면서 괴로운, 그리고 따스한 드라마로 기억될 <나의 아저씨>

얽혀 있는 사람들.

삼안 E&C 20년 근속이 코앞인 박동훈 부장도 정치에 얽히게 된다.
그와 동시에 내연 관계로 얽혀버린 대학 동아리 구성원들.

20대도 후반인지라 그런지 바람피우는 이야기가 썰이든 풍문이든 많이도 들려온다. 친구 회사에서도 일어나고 저기 인터넷 세상에서도 일어나고.

나와 얽힌 모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겠지. 이기적인 행동이다. 본인만 생각하면 끌림을 외면하기 어려울 수도. 모를 거라 생각하면, 그러고 살 수도 있겠지. 박동훈이 자신의 비밀을 다 알고 바라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내던 강윤희처럼. 굳이 그렇게까지 얽혀 있는 사람과 내연 관계를 맺고 싶었을까. 이 부분은 몇 년이 지나고 다시 보면 생각이 바뀌어 있으려나- 모르겠다.

극의 초반부에 이 드라마에 가장 정 붙이기 어려웠던 이유가 이 어두운 색이었다. 눈코입이 흐릿해지며 상대를 읽기 어려워지는 어두움만 계속되었다. 기저에 깔려 있는 정서도 마찬가지.

극본의 박해영 작가는 <또 오해영>의 그 해영 작가이다. 사람의 약하고 어둡고 못난 부분을 이렇게 잘 옮겨주다니.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신선한 글을 계속 써주리라 믿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선균.

역을 참 잘 맡았다.
둘둘 감은 목도리도 몸에 대충 얹어 나온 코트도 이선균이고, 박동훈이다.

* 어느 블로그에서 보고 너무 공감한 내용이다. 그의 작품을 꾸준히 모니터링해오다가 그가 생활 연기를 하고 싶구나, 깨달았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 이지안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한 모금 물을 마시고 가볍게 가글하고 이에 혀까지 살짝 대는 장면. 나도 그 장면을 봤다. 감탄했다. 디테일이라고 표현하는 것보다는 엄청난 자연스러움에 놀랐다. 이런 그를 자주 보고 싶다.

이 쪽도 얽혀 있다.

아버지와 그 아들과 채무자
질기고 지긋지긋한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있었다면.

이 부분에서 이 드라마가 한창 할 때 멈춰버렸다. 저렇게 맞고 있는 걸 보는 게 너무 괴로웠다. 화면을 보고 있으려니 내가 맞고 있는 것 같고 마음이 미어질 것 같았다. 분명 우리의 주변에도 있을 것이다. 저 애.

저 애 가 내 삶의 반경 안에 들어오면 '너'가 된다.
너, 이지안.

익숙한 폭력 속의 너.
이 아이를 보면서 대학 시절 드나들던
늘 푸른 자립센터를 떠올렸다. 그럴 수도 있는 사연 속에서 생채기를 여미지 못하고 그 걸 굳어버린 채로 숨기고 살고 있었을 텐데.
지금의 나라면 그 친구들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었을까.

미안해진다.

번외,

저 밉상. 어찌나 밉상인지 뒤통수를 한 대 날려주고 싶었다. 저 인물도 우리 근처에 꼭 있을 흔한 캐릭터인데.
저 걸 확 그냥. 똥 묻은 개 같은.

약국에서의 신은
왜 들어갔을까를 고민해보게 된다.

어떤 의미를 넣기 위해 지나간 신일까.

가까이 지낼 기회를 만들어서 심어 놓은 도청앱을 통해
박동훈의 일상을 듣는 이지안.

가만히, 그를 이해하게 된다.
어쩌면 의식적으로 돈을 받고 하는 일이니 일적으로만 생각하고 들었어야 하는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에선가부터 이야기를 듣는 모습으로 듣기 시작한 이지안.

영어 듣기를 하고 있는 모습, 즐겨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있는 모습,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 모습이랑.
어느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나는 그랬다.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행복해지는 얼굴이 만개한 꽃이라면,
지안은 관심이 가는 때의 중립적인 표정이었을까?

사람과 사람으로의 만남의 시작이었다. 비록 시작은 일방적이었을지라도 말이다.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어본 적 없는 이지안식의 이해였다. 사람을 알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 미워할 수가 없다.

문자의 답은,

"니 몸은 기껏해야 백이십 근. 천근만근인 것은 니 마음."

사람을 알면,
그 사람을 알면,
새로운 세상이 온다.

여러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려간다.

저 장면은 뭉클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순간이었다.
말간 달. 할머니가 달 같았다.
지안의 유일한 가족.

몸이 불편한 할머니가 달 보고 싶으시다는 그 말에
카트 끌고 달 산책 나온 이지안.

자기 식구는 끝까지 챙기는 사람.
너라는 사람.

알아,
버렸다.

그리고 좋은 사람인 박동훈은
바로 손 내민다.

그 손이 박동훈이다.

그냥, 힘들어 보이는 사람이면 손 내밀고
그 손 잡으면 같이 걸어가고-
하는 그 단순함을 지키는 몇 안 되는 사람이 박동훈이다.

불륜남 도준영이 말했다. 여자들이 박동훈을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마땅히 그러할 것 같은 일을 우직하게 하고 꾀부리지 않고 손해 보는 듯 묵묵히 가는 그 모습이
자기도 좋은 사람이 되게 해줄 것 같아서 더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냥, 그 사람은 좋은 사람 같아서.

출세에도 돈에도 큰 관심이 없고 식구의 안위와 가족 유지가 전부인,
술 마시고 공 차러 나가는 게 삶의 낙 같아 보이는 그 단순한 사람.

청소방 하는 두 형제네에도 찡한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큰 형은 밀려나 일찍 실업자가 되고 이혼 위기에 노모의 집으로 다시 들어오고
셋 째도 영화 판에서 자리 못 잡고 또다시 노모의 집으로 들어왔다.

이 순간의 숨소리를 한숨을 또 듣는 사람이 있을지 생각 못 했겠지.
수치심을 느낄 수도, 안도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의 내밀한 소리인 한숨을 나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도 알고 있다면.

그 초라한 순간에 나는 혼자가 아니었구나- 하며.

3명 중 셋 째인 박기훈.
장래가 기대되던 영화감독. 분야가 분야라서 그런지 우리 집 대학생 생각도 많이 났다.

한 편 제대로 찍지도 못 하고 영화판에서 밀려났는데, 그때 못 되게 굴고 구기고 나온 여배우 하나가 형과 같이 청소하는 빌라의 토쟁이였다.
일부러 그러나, 싶을 정도로 집요하게 따라오고 해맑게 웃어서 침 뱉거나 때리지도 못하게 괴롭게 만들었다.

기훈은 결국 상처받고 잘난 것 없는 사람이라고 본인을 몰아가면서 한껏 구겨져 있는 저 여배우를 펴주기로 한다.

동훈이 가장 무서워하는,
가정이 무너지고 잔잔한 흐름을 깨는 일이 생기는 것.

아무도 모르고 아무것도 아니라 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된다는 그 말에 스멀스멀 넘어오는 반기 같은 상황들.

이지안은 어느새 박동훈의 쪽에 서서 그를 위한 방향으로 간다.
그의 가정이 깨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박동훈을 사랑하는 그의 아내 강윤희를 확인해가면서.

그녀는 남의 인생에 개입한다.
개입을 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같이 살아가는 삶인데, 이지안의 삶에는 없던 일이었을 것이다.

웃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웃었다. 웃는 얼굴 한 번 참 보기 힘든 드라마였다.
사채업자 광일이 이 모습을 보고 분을 삭이지 못하는 부분에서
전에 지안을 좋아했던 마음이 미움과 분노가 됐을지언정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렇게 한 번 웃기가 힘들었을 너. 이 드라마를 보면서 언제부턴가는 나와 성장과정이 다르고 성장과정에서 큰 일을 겪었으며 할머니와 어렵게 살아가며 마음을 꽁꽁 감추고 살던 못된 사람을 보는 눈이 아니라 상대방인 '너'를 바라보는 눈으로 이지안을 보고 있다.

쉽게 수군거릴 수 있는 타자에서 나와 이야기하는 상대방인 '너'가 되는 과정을 어느 순간에 훅 줄여 놓는다. 그 게 이 드라마와 서사의 특이점이라 생각한다.

송새벽 배우 참 매력적이다.
단발하고 저 얼굴로 나와서 개그를 하는 건가 생각 들었었는데, 처음에. ㅎ ㅎ

저 배우가 드라마에서 소리 지르고 있는 걸 보고 있으면..
<월레스와 그로밋>의 닭
고무장갑 쓰고 다니는 닭 생각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어느 장면에서는 웃겨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ㅋㅋㅋㅋㅋ

약간 선을 넘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 부분이긴 하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로 행동으로 이어지는 사람이다.

그 사람을 알면, 이해하게 된다는 그 간단한 말이 이해가 되는 장면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드라마의 여러 장면들 중 가장 웃겼던 장면.
미친 사람처럼 뛰어다니는 거 보는데 정말 월레스와 그로밋의 닭같았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웃겨가지고 정말ㅋㅋㅋㅋㅋㅋ

아니 어디 증거를 찾아 놓은 것도 아닌데 미쳐서 뛰어다니는데 저 야성을 보고 여배우가 좋아하는구나 싶고. ㅋㅋㅋㅋㅋㅋㅋ

이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동양화에서 많이 강조되는 개념인 여백이나 공간 시선이 잘 나타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어 있으니 한 사람의 시선이 더 잘 드러나는 것 같다. 박동훈이나 이지안이 자기 목소리로 독백을 하는 부분을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닌데
허공으로 보이는 공간에 뻗어있는 그네들의 시선을 보면 말소리가 들려온다.

좋은 사람, 너무 좋은 사람.

이지안의 인생에도 누군가 이런 사람 하나. 꼭 있어야 했다. 남이 안 가르쳐 주는 것 알려주고 조건 없이 위해주고, 꼬인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하는 그런 사람.

남녀의 관계보다 인생을 이루는 키 맨인 사람으로서의 매력이었을 것이다.

세탁실의 낮과 밤

박해준 배우
이 작품 저 작품에서 참 잘 녹아든다. 전 작품 독전에 나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진심이 베어 나오다가 장벽이 뚫리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좋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이지안 씨 좋아합니다.

살짝 비현실적인 요소가 있다고 하면 이런 사람들 아닐까.

회사에는 맘 좋고 사람 좋고 장사할 줄 몰라서 출세 못하는 약간 바보 같은 상사들이 있는데,
그 사람 곁에 저렇게 헌신적으로 행동하고 대신 화도 내주며 자기 면 깎이는 거 감수해줄 사람이 얼마나 있단 말이냐.

여기부터는 스토리 라인은 많이 뛰어넘은 이후이다.

박동훈을 상무 만들기 위해 도준영과의 거래를 깨고 청문회 자리에서 박동훈을 그 자리에 공고하게 올려주고,
붙잡히면 박동훈이 가장 드러내기 싫어하는 부분이 세상 사람들의 가벼운 입에 오르내릴 것을 경계하며 붙잡히지 않을 것이라며
떠난 이지안.

원래 그렇게 적을 두지 않고 떠다니던 사람이었으니, 하고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은 박동훈의 도움과 개입으로 그녀의 인생은 이미 많이 달라져있기 때문이다. 하루키의 표현을 빌리면 더 이상 그녀는 그 이전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성질의 성분으로 채워져 버렸달까.

그 사람을 이루는 물질이 완전히 바뀌었다. 비가역적인 변화이다.

그녀가 도청을 듣고 있다는 것을 안 박동훈. 그녀에게 말한다.
듣고 있는 것 안다고, 괜찮다고. 전화 달라고.

이 장면이 왜 이리 뭉클했는지. 나라도 죽였을 것이라는 광일과의 대치 장면과 이 장면이 나는 가장 가슴이 미어졌다.

그리고 가장 애처로웠던 이지안.
어떤 사람은 자신을 알아봐 주고 믿어준 그 한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한다.

중학교 문학시간이었다. 어느 한순간 빛을 보지 못하던 사람이 한 번의 등대 불빛이라도 보게 되었을 때, 다시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그곳을 향해서 평생을 다가간다고.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 이 게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인가.

잘못을 먼저 털어놓고.
마지막에는 광일의 도움까지 받아서

녹취록이 공개되고 안정적으로 상무 자리에 안착하고 지안은 자신을 좋게 봐준 회장님의 덕을 받아 부산의 한 회사에 발령받는다.
부산. 왜 그렇게 멀리 가니.

서울에서 아저씨 마주치려고 종종 거릴 그 시간.. 그 시간이 너무 안타깝고 구차했겠지.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봐도 돼요..?

딱 이 정도가 맞는 헤어짐이었다.

그리고 더없이 행복한 진짜 엔딩.

이 작품이 롤리타 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녀 간의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라 사람 간 자체의 연민이고 동정이고 애착이며 정성이었다.
나중에 보면 어떤 종류의 사랑이었는지 지안이도 알게 될 것이었다. 어떤 사랑인지. 아저씨를 남자로 사랑한 것보다 자신을 알아봐 주고 4번 이상 도와준 그 첫 사람에 대한.

첫사랑이 아니라, 첫 사람이었을 것이다. 자신과 다른 세상을 살고 있었던 사람의 진짜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