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야만 돌아가는
드라마의 시작은 대뜸 차 사고로 붕 떠 오르는 한 남자의 장면이다. 알고 보면 그의 이름은 김진영, 대학 새내기부터 커플이었던 이안과의 연애가 권태에 이르러 한 번의 결별을 한 후 곧 다시 만날 것 같았던 남자.
이 드라마 역시 심희섭 배우가 출연한 작품이라 보게 되었다. 심희섭 사진을 몇 개 보내며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이 드라마도 한 번 보라며 알려준 작품, <알 수도 있는 사람>.
제목이 이 게 뭔가 했더니 페이스 북의 한 기제. 함께 아는 친구가 N명일 때, 그 N이 클수록 두 사람이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커진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알 수 있는 사람으로 뜬다는 것은 두 사람은 친구 사이가 아니라는 것. 아마도 함께한 시간이 오래인 연인들이 관계를 정리한 후 흔히 겪는 상황이겠다. 이 두 사람도 딱 그 시간에 이별을 맞이하였다. 연인 관계의 종지부를 넘어 아예 한 사람은 세상을 떠났다. 아주 갑작스럽게. (여기서 자꾸 상해의 개념이 떠올라서 다른 의미로 감정이입이 또 되는 것은 직업병인가 싶다. )
헤어졌다 생각하지 않았다며, 스물 무렵부터를 함께 한 김진영을 보낸 이안은 첫 만남 그 무렵으로 자꾸만 돌아간다.
그와의 첫 만남과 첫 생일과 실수와 애정과 그때는 큰 일이라 느꼈던 군입대나 어학연수와 같은 일들. 그리고 다툼, 또 최근의 권태기 까지.
그의 어머니께 받은 핸드폰의 비밀번호를 풀 수 있는 기회 10번을 쥐고 그와의 시간을 헤매는 이안.
그 수많은 김진영과의 시간은 생생하고 지금의 나에게 영향을 미친 존재인데, 김진영은 없다.
있을 때 잘 하란 말은 정말 진리인 듯하다. 건강할 때 보험 준비 잘 해 놓는 거랑 같은 이치야. 잃고 나면 남은 사람이나 본인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다니. 이 생각까지 미치니 또 마음이 무겁다. 나는 그럼 좋은 사람인지, 좋은 담당자인지. 늦어버린 것에 대한 마이너스는 그 누구도 채울 수 없을 때가 있다. 이안의 김진영이 없어지고 난 다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 나중에 들은 건데,
진영이는 첫눈에 반하는 게 이런 거구나 했다고 한다.
의 바로 그 장면.
아이러니하게 나는 이 장면에서 김진영에게 반한 것 같다. 이안에게 반한 진영에게 말이다. 누군가를 바라보는 얼굴이 저렇게 예쁘구나.
저렇게 선하구나. 저 배우 참, 좋구나. 왜 이 배우에게 눈이 갔나 곰곰 생각을 해 보았는데, 좋아하는 배우인 박해일이 떠오르는 부분이 있다. 다만 박해일이 야누스적 얼굴이라 하면 아무리 해도 이 귀여운 얼굴의 배우는 악역을 해도 짠하고 분명히 그 안은 선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 다르지 않을까 한다.
다시 흐름으로 돌아와서,
여주 이안은 수영이 맡았다. 개인적으로 수영의 연기도 얼굴도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생각보다 그녀의 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걸 보고 사람마다 시선이 전부 다르다는 것을 또 느꼈다. 또한 내가 선호하는 상이 제법 뚜렷하다고도. 술 잘마시고 술 마시고 놀다가 기억을 잃는 현실 세계의 사람 느낌도 나는 것 같고.
아,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저 첫인상이 마음을 끌지 않는 다는 이유로 이 배우를 들여다본 적이 없어서?
이번 작에서는 억지로라도 들여다 보았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아무래도 웹드라마라 깊게 들어가지 못하고 서둘러 나와야 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엥엥대는 하이톤의 여성 목소리에 피로감이 강한데 그 역시 영향이 있는 듯 하다.
마지막 주연, 이원근. 그녀 인생의 새로운 김진영.
이원근 그 선한 웃음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었는데 이 작품에서는 너무 별로였다. 생각이 없는 사람 같달까.
생각이 깊지 않은 사람을 옆에 두는 것은 힘들고 피곤한 일이다. 사람 간 조화, 케미라는 게 있으니까......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까지 다가오고 앞에서 기다리고 들이대는데, 얼마 전에 오랜 기간 함께한 너와 동명인 남자친구를 먼저 보낸 사람의 마음은 생각에 별로 없는건가.
그리고 그 부주의함들이 일으키는 헤프닝도 흐름을 종종 깨는 것으로 느껴졌다.
학생 마스크와 귀여운 매력이 그간의 작품들에서는 참 좋았는데 여기서는 너무 어린애 같아 보였다.
이 드라마를 내가 나중에도 기억한다면
두 주인공의 대학 시절 연애의 장면을 기억할 것 같다. 그 예쁜 모습을 말이다.
친구와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친구가
대학 때! 그 때! 그런 사랑을 했어야 해! 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 추억이 없는 사람도 추억으로 간직할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있다.
- 진영이 잠깐 이안과 헤어진 시기에 소개팅 했던 여성. 전해줄 것이 있다고 다시 만난( 대신 만난) 장면.
유명하진 않은 작품인데 심희섭 고원희 배우 주연의 <흔들리는 물결>이라는 영화가 있다.
혹시 그 인연으로 함께 나온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잔잔하고 예쁜 영화였다.
고원희 배우는 화려하지 않은 얼굴인데 또 그 안에서 화려함을 뿜는 듯 하고 간결한 듯 섬세한 부분이 있는 연기가 그녀를 자꾸 보게 만드는 것 같다. 심 배우와 고 배우 투샷이 없다는 게 살짝 아쉬웠다.
아마도 데이트로서는 마지막이었을 것 같은.
많이 이해가 되고 그래서 또 슬프기도 한 장면.
중간중간 이안의 후배 김진영은 그녀에게 대시하고 그녀 또한 10번의 기회들을 하나씩 디카운트해가며 점 점 예전의 김진영에서 지금의 김진영에게 더 가고 있었던 걸까.
개인적으로 이해 되지 않는 그녀의 마음이었지만, 사람이니 또한 그럴 수 있을 거다.
저 둘은 핸드폰은 그 섬에 두고 함께 나갔는데, 내 관심은 그 섬 그 역 의자에 있는 진영이 핸드폰에 있다.
조금만 더 호흡이 길었으면 - 얕은 연기의 감정선이 들키거나 - 조금 더 개연성을 얻거나.
둘 중 하나였지 않을까.
- 알 수도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