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서사의 아쉬움, 그리고 가능성의 예고
스윙키즈 개봉일 2018년 12월 19일
12월은 내 생일이 있는 달이라 그 날을 손 꼽아 기다리는데 그보다 더 기다린 날이 스윙키즈 개봉일이었다. 비록 무대인사는 어마어마한 예매율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개봉일에 근무가 끝나자마자 달려가서 보았다. <카트>, <순정>, <형>, <7호실>, <신과함께 1,2>를 지나 도경수 배우의 7번 째 작품 스윙키즈. 그의 첫 단독주연 영화라서 많이 기대했다. 도경수 배우를 보는 대중의 시선은 나 역시 궁금한 바인데, 한국을 넘어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은 아이돌 그룹 엑소의 멤버가 아닌 <괜찮아, 사랑이야> 에서의 한강우로 처음 그를 보았어서 오히려 배우 도경수가 익숙하다. 도경수와 임시완은 가수(그 중에서도 아이돌)와 배우 그 어디에도 갇히지 않고 본연을 지키고 발전시켰으면 한다. 원석의 묵직한 가치와 날선 예민함을 꼭 지켰으면 좋겠는 마음이다. 10년 20년 후 그들이 하고 있을 예술이 어떤 모습일지 정말 기대된다.
메가폰은 <과속스캔들>, <써니> 등으로 대중영화 흥행에서 저력을 보인 강형철 감독이 잡았다.
개인적으로 분위기가 지나치게 발랄한 영화를 선호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무서운 영화도 질색이니 영화를 보는 범위가 매우 좁은 것이 사실이다.
큰 분야에서 좁은 부분을 찾아내어 집중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인 것 같다. '로맨틱 코미디'는 안되어도 '정통 멜로'는 되며, '코미디'는 안 되어도 '블랙코미디'는 되는 이상한 취향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난하게 웃고 가는 장면에 무표정할 때가 많다. 물론 남들은 안 우는 장면에서 울고 남들 안 웃는 장면에서 숨 넘어가게 웃기도 한다. 지금부터 쓰는 이 리뷰도 개인적인 특성이 영향을 많이 미쳤음을 밝혀둔다.
스윙키즈를 설명하는 가장 깔끔한 문장은
거제포로수용소의 오합지졸 댄스단 스윙키즈의 뜨거운 이야기 _ 도경수 피셜
배경이 전쟁 한 복판이기 때문에 춤이 가능했겠냐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제네바 협정 이후 대외적 이미지를 위해 일부러라도 연출해야하는 평화의 장면들이 있었다. 그렇기에 가능했던 전쟁 포로들의 댄스단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고, 소장이 하사 잭슨의 개인적인 사정을 빌미로 브로드웨이에서 춤을 추던 실력으로 댄스단을 결성해 소위 '그림'을 만들어 보라고 한다.
그 구성원은 잭슨 포함 다섯.
- 북한 출신 사고뭉치이자 춤에 천재적 재능이 있는 로기수
- 생활력 강하고 누구보다 똑똑한 양판례
- 유명해져서 부인을 찾아야 하는 김병삼(병이 세 개)
- 전쟁이 아니었으면 천재 안무가가 되었을 춤꾼 샤오팡
먼저 로기수.
형 로기진과 동생 로기수는 전쟁 통의 영웅이다. 난세가 영웅을 낳는다는 말, 바꿔 말 하면 전쟁이 없으면 그 누구라도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산다는 말.
아주 뛰어난 춤꾼이자 호기롭고 건방진 로기수라는 옷은 본래부터 도경수의 옷인양 잘 맞았다.
그가 아닌 누구라도 남자 배우가 욕심낼만한 배역이기는 하지만 그가 입었을 때 날아오를 수 있는 '선녀옷'같은 캐릭터가 로기수였다. 지금까지는 우울한 소년 느낌의 역할이 그를 대표하는 이미지였다면 이 시점 이후로는 로기수라는 새로운 얼굴이 더해질 것 같다.
개인 도경수의 팬이기도하지만 그렇지않은 영화관의 관람객으로서도 그가 블랙큐브인 영화관의 스크린에 담아낸 얼굴은 생동감 그 자체였다. 연기를 잘했다는 말보다는, 진심으로 기쁘게 즐긴 얼굴을 그대로 관객에게 전달한 점을 나는 꼽고 싶다. 그의 정말 신난 얼굴. 아마 도경수는 평생 이 때의 현장과 본인의 얼굴을 계속해서 보게 되지 않을까 한다. 연기를 즐기고 있는 것 이전에 정말로 춤을 즐기고 무대를 즐기고 있는 그는 천상 예술인이었다. 배우고 가수고의 규정을 떠나서 말이다.
그리고 이 컷은
도경수의 새로운 얼굴이었다는 점에서 신선한 인상이었다. '춤대장'이라는 말에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아이같은 모습. 호기로운 어린 아이 그 자체.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이 그저 좋은 젊은 치기의 로기수.
전쟁이 큰 일이라도 그 안에는 분명 몸만 어른인 아이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었다.
전쟁 통에 가장이 된 양판례 역의 박혜수. 그녀의 연기를 본 것은 <내성적인 보스>에서 잠깐.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는 특유의 톤에 오래 보고 있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스윙키즈> 안에서는 매력적으로 비추어졌다. 어떤 분의 개봉 전 글에서는 연기력도 안 되는 박혜수의 분량에 따라 영화의 평점이 갈릴 것이란 말이 있었는데, 몰입에 방해가 된다거나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그녀가 매력적인 재원이고, 생각보다 더 예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달까. 둥글고 밝은 달 같은 얼굴을 계속 보게 된다. 기수가 이런 마음이었을까.
위의 두 장면이 박혜수가 맡은 양판례 캐릭터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사진으로는 없지만, 자신을 향한 미군의 뺨세례에 로기수나 다른 남성 팀원이 대응하기도 전에 "*새끼가!!"라는 말과 함께 이단 옆차기를 날리던 모습까지 포함하면 '센 척'하는 '걸크러쉬'가 아니라 충분히 약해지고 무너지고 주저 앉을 수 있는 악조건과 상황에 굴하지 않고 대등하게 달려드는 모습이 진취적이고 '걸크러쉬' 뿜어내는 모습일 것이다. 본인이 여성이며 신체적으로 약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자신을 지켜내는 인물이었다. 댄스단 스윙키즈 안에서도 가장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인물이다. 가장 본받고 싶은 멋진 인물을 꼽으라면 양판례를 꼽겠다. 박혜수 배우를 꼽은 것이 아닌 캐릭터를 꼽은 것이지만 그 양판례를 맡은 박혜수의 저런 한 컷 한 컷이 아니었다면 정말 능동적인 여성상도 묻히기 마련이었을 것이다.
복슈퍼 아들 오정세 배우. 아내를 찾아 유명해지려는 단순하고도 눈물겨운 사연을 가진 인물.
언제나처럼 재미를 강하게 견인했던 인물이다. 다만 그의 비중이, 아니, 인물들 자체의 비중이 더 많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 같은 얼굴로 한 신 한 신을 이어준 샤오펑. "춤을 무슨 이유로 춰, 그냥 추지. " 대사에서 드러나듯 '쟈스트 댄스' 정신의 시초라고 볼 수 있는 인물.
좌천된 미군. 인종 차별적 행위에도 담담한 것을 보면 오래 된 것 같다. 이미 포기한 모습. 하지만 댄스단 스윙키즈 팀을 꾸리며 그에게도 변화가 일어난다. 내 팀, 내 팀원이라는 유대감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생각, 또 춤 자체를 본인이 얼마나 즐겼는지에 대한 그 단순한 희열의 기억.
스윙키즈 아쉬운 점
스윙키즈는 참 많은 것을 담으려 했고, 그리려 했다. 그러다보니 아쉬움이 있는 동시에 가능성을 보여준다. 먼저 아쉬운 부분은 인물 각각의 서사가 지나칠 정도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로기수가 트러블메이커이며 말썽쟁이로 그려지는데 대체 왜 그렇고 어떤 면이 그런지에 대해서는 설명은 대부분 생략되어 있다. 거의 원톱의 주연인데도 말이다. 그 캐릭터가 가진 강렬한 힘이 있었지만 인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마음은 해소되지 않았다. 매력적인 인물이었기에 더 그랬다. 양판례 또한 집에 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과의 한 신, 그리고 댄스단 스윙키즈를 소개하던 잭슨이 전쟁 통에 고아로 가장이 되어 버린 소녀라 말하는 신 외에는 드러난 내용이 없다. 그녀가 4개 국어나 하게 된 이유나 그 상황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그리고 김병삼과 샤오펑 두 인물은 코믹 위주로 역할을 해 주었으나 좀 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갔다면 좀 더 진하고 탄탄한 이야기가 되었을 것 같다.
그 다음 아쉬움은 역시, 너무 반찬 가짓수가 많았던 점이다. 이데올로기, 인종차별, 부부애, 춤에 대한 열정, 형제애, 우정 등 전쟁통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은 거의 들어가 있다. 또한 초반부 춤에 대한 열정만있었을 때는 강감독 특유의 경쾌한 유머로 순도 높은 재미가 있었으나 후반부에는 의도한 바라고는 하나 온도차가 큰 변조로 인해 관객은 얼떨떨하게 영화에서 한발짝 물러나게 되었었다. <긍정이 체질>에서 도경수와 함께 나왔던 이다윗 배우가 미제 초콜릿을 보고 돌아버린 그 순간을 기점으로 영화는 완전히 돌아선 듯 보인다. 그러나 완전히 돌아선 것도 아니고 그 또한 변조의 도구였던 것 뿐이라 몰입의 밀도를 아주 낮춰 놓았다. 전체적으로 허술해져 버린 것이다.
차라리 전쟁 통에도 멈출 수 없던 열정, 순수히 춤에 대한 열정을 중심으로 했다면 토끼가 아닌 한 마리의 호랑이는 완전히 잡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위의 두 가지는 개선이 가능한 아쉬움이었다면 로기수를 괴롭히는 미군들은 다른 리뷰어 말대로 서프라이즈 외국인 배우를 보는 것 같았다. 그 인물들만 나오면 아무리 주연 배우들이 노력해도 매끄러워지기 어려워보였다. 연기력의 수준의 문제라면 자세히 짚을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스윙키즈를 연말의 선물로 보는 이유는 궁금증을 만드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그 열정과 유머를 가능성으로 배우들이 너무 잘 해준 저 캐릭터를 더 알고 싶다는 투정이다.
개인적으로 로기수와 양판례의 로맨스는 조금 더 나왔으면 좋았겠다. 꼭 로맨스가 중심은 아니더라도 조금 다 밀도 있었더라면 좀 더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 같다. 정식 공연에서 두 인물의 춤은 아주 잠깐이었어도 정말 설레는 포인트가 있었다.
스윙키즈 리뷰였다. 12월에 어울리는 영화이니, 로기수 안 본 사람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