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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록 Nov 26. 2018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2018)

바로 서는 것보다 나로 서기.

여러 번 쓰고 여러 번 날아간 두 개의 작품이 있다.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니 마음 가는 작품들이 많아서 고민하다가 일단 네이버 블로그에서 썼던 글을 올렸다. 그  직후 박정민 배우를 중심으로 <변산>, 이진욱 배우를 중심으로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런데 블로그 습관이 남아서인지 당연히 자동 저장이 되거나 다시 앱을 열었을 때 마지막 모습 그대로 나타날 줄 알았는데 없어져 버렸던 것이다. 나 같은 사람 없길 바라지만 혹시라도 네이버에서 쓰다가 넘어온 분이면 잘 저장해두기를 바란다...  문제는 한 번 당하고도 정신을 못차렸던 것이었다. 3번 정도를 그리 날리고 원점으로 돌아가 사진만 남아있는 빈 칸을 보고 거의 3개월 만에 이 자리로 돌아왔다. 박정민 배우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었던 그 작품보다도 먼저, 마음에 큰 구멍이 뚫린 것 같았던 11월에는 이 작품이 더 어울릴 것 같아서 기록한다. 

헤어졌다 다시 만났다. <호랑이보다 무서운 겨울손님>

이광국 감독의 작품이다. 초반 정도 보다가 킵 해 두었던 <꿈보다 해몽>의 극본 감독 제작을

<하하하>,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등 홍상수 감독 작품에서 조연출을 맡았었다. 이 사실을 모르고 본 관객이라면 이제 하나하나 짚어가며 뭔가 모를 익숙한 느낌, 기시감들을 다시 깨워 보아도 좋을 것 같다. 


두 주연 배우는 이진욱, 고현정.

고현정 배우. 눈빛과 제스쳐에 정확히 '그 것'을 담아낸다. 수많은 시간이 쌓여야 표현할 수 있을 '그 것'을 말이다. 그의 연기는 둔탁해진 몸으로 극강의 유연함을 선사한다. 극을 장악하는 힘, 그 자체인 배우. 


이진욱 배우. 사실 한 작품을 기억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쓸 때 마다 한 배우를 중심으로 담곤 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힘 있는 배우는 분명 고현정 배우라서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경유'역을 맡은 그의 연기가 이 시기를 바탕으로 다른 곳으로도 전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중심을 이진욱 배우, 그리고 그의 캐릭터 경유로 잡아 보았다. 


_압글. '압화'가 있듯 작품을 압축한 이런 글들의 이름을 압글이라 칭하면 어떨까 싶다. 

이 영화의 첫인상에서는 두 배우가 먼저 보였고, 그 다음은 제목이 보였다. 요즘 영화는 제목을 되도록 짧게 잡는 편인데 그 흐름도 벗어나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이다. 

1. 호랑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두려움일까 현실일까, 마주함그 자체일까. 


아래 링크를 첨부한 GV에서 제목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감독의 어머니께서 호랑이보다 무서운 '여름 손님'이라 표현한 어구에서 영화를 찍게 될 계절을 담아 '겨울 손님'으로 바꾸었다고. 


내가 요즘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여름이나 겨울이나 바로 서지 못한 사람들에게 가혹한 계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집이 없는 사람에게 정말 지옥은 바람을 막아주는 집에 조차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집에 들어가기 전에 꽤나 오래 생각한다. 물리적인 안식처가 없다고.


또한 홍상수에게 없는 '빈곤'이 이광국에게는 있다. 옆에서 친구가 한 마디 거든다. "홍상수는 빈곤하지 않으니까." 그래, 그렇지. 박찬욱이 내는 미장셴도 돈 없이는 만들 수 없다. 돈이 있으면 미장셴의 미를 극대화 시켜 예술에 닿기도 하고 어떤 이는 감정에 집중하여 배우의 특성을 잡아 극대화 시켜 사람만으로 영화를 찍는다. 그리고 또 어떤 감독은 빈곤을 영화로 들고 왔다. <소공녀>같이 빈곤을 전반에 내세운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이 영화의 메인 주인공은 개인의 '자아'요, 서브주인공은 '빈곤'이었다. 


그렇기에 호랑이라는 비유에 넣을 수 있는 여러 선지가 생겼다. 빈곤현실, 마주치기 싫은 본연의 고민

극은 이렇게 시작된다. 

경유의 뒤통수로부터. 이 장면 픽


자고 있는 뒷머리에서 시작되는 장면. 이 글의 끝단부는 그의 앞모습이다. 

이 작품이 끝나는 부분에서 다시 연결해볼 수 있을 것 같다. 

-> 1 ( 뒷 부분의 1과 연결된다.)

연인 현지. 경유에게 부모님이 오시니 며칠 나가 있으라는 거짓말을 하고 나서는 번호도 집도 바꿔버린다. 


하지만 그녀 역시, 경유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었다. 이 김에 정식으로 인사 드리는 게 어떠하냐고. 

'회사에서 잘렸다.'는 말로 날려버리긴 했지만.

현지는 이 작품의 말미까지 한 번도 다시 나오지 않는다. 정말 딱 이 앞부분에서 자취를 감춘다. 그녀의 마음도 상황도 더 이상 그녀를 통해서 볼 수는 없게 된다. 


다만 경유의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지금이 끝이라는 것을 혼자 알고 있는 현지의 얼굴. 

이 작품에 나오는 아주 조연의 배우들까지도 연기가 정말 좋다. 류현경 배우를 딱히 눈여겨 본 적이 없었는데 경유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저 표정 연기가 참 좋았다. 오늘이 끝인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둘이 골목에 있고,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을 바라본다. 호랑이가 있는 곳으로 그를 밀어낸다. 


"호랑이 조심하고."

익숙한 풍경


2. 면접은 정당화된 모욕의 순간인가


 얼마 전 인스타그램의 추천 페이지에서 네이트 판에서 캡쳐해서 가져온 글을 보게 되었다. 

글쓴이의 남편은 택배일을 하면서 월 500이 넘는 월급을 가져오고, 글쓴이는 몸으로 정직하게 일해서 가정을 먹여 살리는 가장 남편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누군가 남편의 직업과 근황을 물어올 때마다 택배기사라는 말에 돌아오는 두 가지의 반응 중 하나는 "힘들겠다"는 겉면으로는 안 됐다는 표현, 그리고 그 경멸이다. 다른 반응 하나는 노골적으로 "그래도 그 건 아니지. 제대로된 직업을 찾아라."


이 사례를 통해서 우리 사회의 유리 벽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사회에는 수직의 벽, 즉 천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수평의 벽, 유리벽이 마찬가지로 존재한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 간에도 벽이 있다. 물리적으로 옆에 있다고 해서 모두가 동질감을 가지고 공감하게 되지는 않는다. 공감과 연민을 가장한 경멸이 오히려 더 빈번하다.


 정곡치기도 아닌 빗겨치기로 오는 상처에는 가해자가 없다.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 게다가 그 피해자는 어디가서 상처 받았다는 말도 못 한다. 한 번 더 상처받게 될 것을 이미 알기 때문에. 우리가 아는 특정 부류의 범죄에서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보호 받게 되는 그 양상도 이와 비슷하다. 


 이 작품의 경유도 공감과 연민으로 포장된 연민의 대상이 된다. "힘드시겠어요." "다른 경력은 없으세요?" 등의 말로 불쌍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확정된다. 비슷한 경우로 <이번 생은 처음이라>의 고학력 백수 윤지호의 면접도 있었다. 다른 작품의 두 배우는 공통적으로 글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표적으로 앞이 안 보이는 직업으로 보인다. 무언가 하나 해내고, 이름을 떨치기 전까지는 연민으로 장된 멸시와 경멸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 그리고 되고 나서는 "나도 그렇게 쉽게 돈 벌며 살고 싶다"는 소리로 노력을 평가 절하 당하기 일쑤다. 우리 사회의 맨 얼굴이 이 정도이다. 이 면접 장면은 갑이 을에게 향하는 모욕이 정당화된 것인가 하는 의문마저 들게 한다. 진정한 의미의 배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특별한 경력 없이, 운전을 할 수 있고 밤낮의 바뀜을 용인할 수 있는 경유는 대리 운전기사를 하게 된다. 그러다 만난 옛 연인 유정. 그녀는 등단했고 그와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그토록 쓰고 싶었던 글을 그녀는 쓰고 있고, 그는 아니다. 보아하니 삼청각인 것 같은데 원로들과 자리를 가지는 듯 영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은 그녀.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 시간을 급히 정리한다. 

그리고 경유가 맞게 되는 위기.

현지가 자취를 감추었다. 제대로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떠났다. 현지도 그와 함께 하는 더 이상의 미래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뒷 장면에서 나오지만 근무하던 서점에서의 계약 기간은 만료 되었고, 부모님이 오신 다는 것을 보아 서울이 아닌 곳에 고향이 있을 것이다. 직장도 잃었는데 서울에 남아있을 수는 없는 터. 그래도 힘을 보태어 함께 살아갈 수 있었으면 이렇게 떠나지는 않았을테지만, 현지는 경유에게 직접 호랑이가 되기를 포기하고 뒷문으로 조용히 나간다. 그리고 잘 입고 간 코트와 좋은 한우는 그의 빈곤을 더욱 부각시킨다.


그 부분에서 보면 호랑이는 '직접 대면' 즉,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상황"이 아닐까.

위의 꼭지에서는 간접적인 경멸이었다면

이번에는 직접적인 경멸을 받게 된다. 


이미 뒤틀어지고 망가진 그의 내면을 흔드는 외부적 상황이었을 것이다. 


-> 2(뒷부분의 2와 연결된다.)

이 장면에서 경유의 대사를 명대사로 꼽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우리가 .... 우리가 이 거 먹자..흐긁...."


이진욱 배우의 연기를 보며

바로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의 넘치는 감정에 부담스러운 상황을 떠올렸다. 


그의 연기가 부담스러웠다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들었다. 아마 그의 옆에 앉아서 오롯이 이 감정을 보던 친구 '부정'이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다시 만난 경유와 유정.

그녀는 글을 갈구하고 있던 차였다. 

진상 손님

자기 자리 가까스로 지키는 경유의 잔잔한 호수에 꼭 모난 돌 던지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사람에게 이럴 수 있는걸까. 아무에게도 그럴 권리가 없다.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보지 않고 살면서 부딪히는 원인인 것 같다. 서로에게 의무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상대방의 행복이나 불행에 계속하여 권리를 행사하려 한다. 균형이 무너지면서 폭력이 스며들게 된 것 같다. 

지낼 곳이 없는 경유, 

그리고 그에게 이 곳에서 지내라는 유정. 여자저차 하여 함께 지내게 된다. 

꺼내면 안 되는 이야기를 꺼내는 유정

그러나 꺼내면 안 되는 이야기는 꺼내어지기 마련이다. 

또 그녀 유정은 절대 그 것을 속에만 두고 살 수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미완작 '나그네'를 내어 달라고 한다. 

경유.

그가 드디어 터진다. 

-> 2

본인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그 마음을 마주한다. 드디어 경유에게 호랑이가 찾아온다.


사실 앞부분의 2)는 외부적으로 그를 건드리는 부분이었다. 켜켜이 쌓여오던 스트레스 등에 충분히 터질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이 부분은 유정의 말을 계기로 내부적으로 터져 버렸다. 그 글을 어떻게 썼는지 알면서, 그 걸 달라고 하냐며.


유정이 자극해서 터졌으니 외부적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의 내부에 있던 어느 작은 점까지 찾아서 터뜨리지만 않았다면 그가 이렇게 내부의 분을 분출할 일은 없다. 슬픔을 표현했던 친구 부정과의 신과는 다른 측면이다. 그가 주체적으로 어떤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외부적으로 일을 당해서 그에 밟혀서 아프다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들고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경유는 마주해 버린다. 그렇게 글에서 도망쳤지만 그는 글을 쓰고 싶었다는 것을. 

너무나 단촐했던 그의 짐


여기 혹시 망원만방인가?
신작을 재촉받는, 벼랑 끝에 선 유정

곧 유정의 작품이 표절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하지만 유정은, 궁지에 몰렸던 그 벼랑에서 가벼이 물러나 다른 벼랑을 찾아갈 인물이었다. 상당히 여유로운 인물로 보인다. 심연이 흔들리거나 하지 않는다. 

또 다시 그의 삶의현장.

대리 운전을 하기 위해 온 곳에서 

연탄불에 잃을 뻔 했던 두 생명을 구한다.

그가 떠난 자리에서 발견한 책
노인과 바다

이 책, 우리 집에도 있다. 중학생 시절 읽어보려던 것을 세로 쓰기가 되어 있기도 하고 낡아서 읽지 못했는데 

경유는 다시 글을 쓴다. 

그의 정면에서 영화가 끝난다. ->1


마주 보지 않던 그 뒤통수에서 정면으로 맺음 한다. 

결국 그는 자신의 심연과 마주한다. 보통 심연에는 직접 대면하기에는 어려운 고민들이나 아픈 진실이 있기 마련이다. 

경유는 호랑이라는 심연과 '마주'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다른 방향의 인생이 시작된다. 영화는 우리에게 각자의 호랑이를 만나라고 하는 것 같다. 각자 가출한 호랑이를 찾아 마주하라고 말이다. 그 때 인생이 다시 시작된다고 말이다. 


초반부터 이 글을 맺는 지금까지, 호랑이는 다양하게 추측되었다. 결국 호랑이는 그 다리를 건너온 '심연'이 아닐까. 그 호랑이와 마주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선' 인간이 아니라 '나로 선' 인간이다. 


모두 각자의 호랑이를 마주하자. 인생의 다음 장을 열기 위해서.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14784573&memberNo=15205863&vType=VERTICAL

이 인터뷰 일독을 추천한다. 

http://indiespace.kr/3897

이 건 인디토크 기록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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