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타인 (2018)
완벽한 타인 (2018)
완벽한 지인이 있을까, 그렇다면 완벽한 타인은 존재할까. 완벽한 지인부터 떠올려보면 타인에 대해 완전하게 모든 것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이 말을 또 작게 나누면, 완전하게 아는 것과 모든 것을 아는 것을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있냐는 물음까지 불러 일으킨다. 이 생각 실타래의 마지막 부분은 완전함이란 밀도적이해와 상황의 모든 개수의 합인 모든것이라는 양적이해가 같지는 않다는 쪽으로 흐르는 듯 하다.
타인이자 지인으로 모인 이 작품의 티켓을 어느 배우 한 명이 '하드캐리'하지는 않는다. 조진웅 배우는 종종 주연을 맡아 분하는 배우이지만 오직 그만을 보겠다고 영화를 선택하게 하는 배우, 그러니까 튀는 배우는 아니다. 연기력의 깊이가 아니라 성실한 다작 배우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가 언제나 지지대의 역할을 큰 덩치로도 유연하게 해내는 배우임에 이견이 없을 듯 하다. 다만, 염정아 유해진 배우가 작품을 하드캐리하다는 말에는 동의한다. 이야기의 중심이자 폭발점이었는데 누구보다 예민하게 잘 표현해주었다. 단독주연보다는 작품 자체에 녹아들어 역할을 해내는 배우들이 커플로 모인 듯 보이기에 옴니버스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인가 했더니 거의 한 테이블에서 이야기가 쏟아진다. 그래서 영화보다는 연극같은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그 식탁은 곧 무대였다. 그 무대에서 세 부부와 한 커플의 식탁 위의 게임이 진행된다. 신선하게 여겨질만 하다.
이 인물은 인생에서 관찰자의 역할을 꾸준히 유지한다. 그 부분 때문에 멋있고, 바로 그 부분이 안쓰럽고 걱정스럽다. 마음 어디 한 구석이 부분부분 저며지는 것 같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석호가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갈 인물이라는 걸 관찰자인 관람객들이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한 명인데도, 여럿의 인물인양 멋지고 든든한 아빠, 삶의 지지대가 되어주는 남편, 그리고 유머러스하고 좋은 친구 역할을 하고 있다. 어느 하나에 집중한다고 다른 부분을 소홀히하는 법도 없다. 든든하다. 그런데 사람이 든든하고 뿌리 깊은 나무 같이 튼튼해보이면 약한 사람들이 모여 기대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 나무가 걱정이 된다. 앞으로도 쭉 누군가를 지지해주며 살아갈 그 인물이 말이다. 그 에너지가 아스라이 꺼져가는 것을 누군가는 알아채줘야 했는데. <완벽한 타인>의 석호는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과 닮아있다. 이 작품을 보면서 스친 생각이다. 가족을 지키려는 그 태도. 이 마지막 안전선이 무너지지 않게 하려는 묵묵한 노력. 다만 박동훈보다 더 적극적이고 힘있는 제스쳐로 지키려 했던 것이 다른 부분일 것이다.
- 석호 & 예진
이 영화를 보고 '멋있다'는 말을 끌어냈던 인물은 태수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동시에 안 쓰럽기도.
김지수 배우의 안정적인 목소리 톤도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단단히 한 몫 했다. 게임을 권한 장본인이자 발칙한 인물. 그녀 나름의 권태와 불안과 답답함을 남편의 친한 친구와의 밀애로, 그리고 그 밀애에 화끈한 도발을 가한다. 게임의 약점이 같은 공간 안에 있으니 안심했겠지.
가부장체제의 수장 한국 남자. 그러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보이는 한국 남자에겐 없는 여운, 다정함이 있는 남자 역할. 위 사진의 가물치같은 얼굴로 독한 말을 내 뿜는다.
- 태수 & 수현
염정아, 유해진이 이 영화를 살렸다는 댓글을 많이 보았다. 그렇기에 더 붙일 말이 많지 않다. 그들은 서로에게 진 빚 때문에 서로에게 미안해하고 그 미안한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고 꾹, 입을 다물었다. 입을 다문 부부에게 이해는 갈수록 아스라이 안개처럼 흐릿해진다. 이 부부는 꼭, 작품으로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형적인 그의 전형적인 얼굴.
어쩔 수 없는 그의 모습.
'양아치'
그를 부를만한 적당히 속된 단어이다. 이 그룹 안의 어느 부부보다 사이 좋고 애정행각이 강한 두 사람이지만 그 넘치는 사랑이 이 둘 안에서뿐만 아니라 바깥으로도 아주 넘치고 넘친다. 순간을 낚아채는 재치가 있지만 그릇이 크지 않아 번번히 사업을 '말아 드신다'.
- 준모 & 세경
이입하지 않게 되던 커플.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을 해보았는데 댓글란의 직설적인 말들은 이서진의 어색한 연기력을 꼽았다. 식탁 바로 앞에 나도 참여하고 있는 기분이 들다가도 그가 나오는 장면에서 일종의 '삑사리'가 느껴진 것이 그의 연기력이 끼친 영향일 수도 있겠다. 송하윤 배우는 요즘 여기저기 얼굴을 비추고 있는데 너무 한 캐릭터로 국한 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마성의 기쁨>에서 앙증맞음을 쥐어짜는 느낌보다 <쌈, 마이웨이>에서 흘러나오는 측은함에 더 눈이 가게 하는 배우였다. 하나의 얼굴로만 알려지는 배우가 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이입되지 않은 이유 하나 더, 이 둘은 헤어지더라도 서로의 상처가 가장 없을 것 같아서이다. 가장 사이좋고 불타오르지만 남 + 여의 조합 이외의 부부 간 승화된 감정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두 부부와 한 커플에게는 있는 것이, 부부의 단계에 알맞은 감정이, 그들에게는 없다. 그래서 풋풋하고 불탄다.
- 가장 비극적인 일
이 작품에서 가장 비극적인 일은,
식탁 위를 빠르게 돌아가던 반지가 멈추지 않은 것이다. 그 것은 태수, 수현, 준모 간의 관계와 그들의 인생에서 큰 비극인 일이었다.
석호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친구들을 돌고 돌아 배우자인 예진에게까지 전해지고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마주하게 하는 열쇠였으며 석호의 노력을 예진이 알게 하는 기회였다.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하는 관계들 중에는 상대방의 노력에 대해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당신때문에 힘들고 당신이 남들보기에는 좋은 배우자이고 착한 사람이지만 그 착함이 나를 숨막히게 하고 나를 나쁜 사람 만드는 것 같아서 너무 싫고 이 관계에 즐거움이 사라졌다고 말하는 많은 부부들이 분명 있다. 하지만 그 상대방도 역시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 노력을 하고 있을 수 있다. '노력은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노력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이론과 실무가 다르듯, 관계의 실무에서는 노력을 내어 보이거나 혹은 그 것보다 더욱 파워풀하게 볼 수 있게 만드는 그 '쇼잉(showing)'이 상당한 역할을 해낸다. 그런 노력을 하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는 별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말이다.
석호는 준모와 예진의 이상 기류를 알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속초에 분양 받아놓은 부동산 문제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것 보다는 친구와 아내의 관계를 알게 되거나 혹은 아내와의 관계에서 오는 버거움 때문에 치료를 받고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는 생각을 많이들 하게 되는 것 같다.
이 작품에서 영배 커플은 동성애에 대해 이야기 했다. '진수'가 아닌 '진서'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며 얼마나 이야기할진 몰라도, 개인적인 시선이 머물렀던 자리이기 때문에 나는 영배와 진수의 에피소드에 마음이 머물 수밖에 없었다. 태수가 오해 받아서 게이로 산 2시간과 그 눈빛이 우리의 시선 또한 대변했으리라. 윤경호 배우 또한 분위기, 공기로 연기한 것 같다. 많은 말도 액션도 아닌, 눈빛과 음성의 떨림으로.
- 영배 & 진수
이 부분에서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가 힘들지는 않았을까 생각했다.
이 이전에는 <역린>을 작업했던 이재규 감독
- 19호실에 대하여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놓은 19호실이 있다. 이들의 19호실을 우리는 보고 말았다. 한 식탁에서 쏟아져내리는 이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할지는 역시, 우리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