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 황시목
비밀의 숲 : 황시목, 역린의 드라마 <1>
역린_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 즉 군주가 노여워하는 군주만의 약점 또는 노여움 자체를 가리키는 말.
<나의 아저씨>를 보고난 후 적은 글이 오래도록 여운으로 있다. 좋은 드라마를 보며 떠올렸던 것을 남겨 놓으니까 새로운 생각을 누군가와 또 함께 나누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이와 같은 드라마를 보고, 그 드라마의 여운을 간직하려는 이유로 내 글을 읽고 표시를 남겨주시는 것도 참 고마운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을 때 그 결과물을 사람들도 좋아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고.
지금 보고 있는 작품은 <비밀의 숲>이다. 챙겨볼 수밖에 없는 조승우 배우, 그리고 항상 눈여겨보게 되는 배두나 배우가 가장 전선에 있는 작품임에도 '아끼느라'보지 못했다. 나의 아저씨가 그랬던 것처럼. 두 작품이 비교하기에 적당한 작품은 아니지만 모두 사건 중심임에도 시선을 자꾸만 묶는 몇의 사람들의 감정에 더 집중되었다면, 비밀의 숲은 딱 그 사건을 파기 위해 곧장 뿌리로 들어가면서 슬쩍슬쩍 사람들을 곁눈질하게 한다. 결국 좋은 드라마인 두 작품 모두 어딘가로 눈길을 향하게 한다.
시선이 향한 곳에 개연성을 부여하는 것이 이수연작가의 힘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입 아픈 말이지만, 과연 이 작품으로 입봉한 작가가 맞나 싶다. 힘 있는 작품을 쓰는 것, 정조준하고 있는 것을 제대로 노리며 뿌리로 곧장 직행하는 것이 작가의 특징이라 생각한다. 이 다음은 <라이프>를 한 번에 보고 리뷰해봐야지.
<비밀의 숲>은 극의 초반부터 네 인물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황시목.
이성과 감성의 비율이 0.5:9.5 정도 되는 것 같다. 뇌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부분에 문제가 생겨 그 것을 해결하려다가 감정까지 날아갔다. 그런 그에게 가장 적합한 직업은 법조인이었다. 이성에 의해 판단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며 합리성과 원칙으로 하는 일.
사명감이나 측은지심, 정의감
보다는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부분을 제대로 흘러가게 하는 일.
이공계 전문가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보게 된다. 황검사 상황에서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하는 일 보다는.
하지만 종종 감정 등이 완전히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반증처럼 미세한 감정 표현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한여진
보기드문 독립적인 여성캐릭터이다. 남, 녀 하나씩 둘이 주연을 서는 게 보통인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에 종속적이지 않기가 여간 여려운 것이 아니다.
독립성을 유지하며 일답게 일을 해내는 캐릭터가 아직은 부족한 것이 사회상의 반영일수도 시선의 폭력일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귀여운 여형사, 예쁜 여형사가 아니라 아, 좀 독특한 강력반 형사구나, 하게 만드는 캐릭터의 작화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한여진은 열정을 단순히 불타오르는 패기가 아닌 '끈기'로 표현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괄괄대고 소리지르고 울고 메달리는 것만이 열정이 아님을 보여주는 캐릭터. 나는 그래서 이 캐릭터를 긍정적으로 보았다. 황시목과의 인간적 케미도 자연스럽고 말이다.
서동재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비열한 캐릭터이다. 큰 눈을 굴리며 사욕을 채우고 변명하고 권모술수를 쓰는 것을 보면 정 떨어진다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린다. 이준혁 배우, <한 여름의 추억> 작품에서의 모습과는 너무 다르다. 흰 티를 입은 산뜻한 느낌이 너무나 어울리는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였는데, 배우의 변신은 참 다채롭고도 놀랍다.
자신의 지위와 힘을 파악해서 그를 이용한다. 감정 조절도 잘 되지 않는 인물. 이 극에서 감정을 어설프고 유치한 채라도 분출하는 인물.
이창준
형사 3부 차장님에서 검사장이 되었고, 대기업 오너의 사위.
표현하는 듯 표현하지 않고, 표현 않는 듯 계속 표현한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여요!
황시목이 <보이스>의 강권주 캐릭터 같이 목소리의 미세한 차이를 구분하며 감정을 구별하는 경우도 있다. 한 쪽은 비정상적으로 과발달한 청력이고 한 쪽은 감정이 배제된 극이성과 방관에서 나오는 판단력이지만.
초반, 왕따이자 사회생활을 전혀 못 하는 황검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편.
사회성도 포용력도 오지랖도 없다.
그러다가 홀로 길을 걷게 되었다.
하나의 사건으로 극은 바로 시작된다.
검사들의 스폰서를 맡던 건설사 대표 박무성 살해 사건.
죽은 자와, 죽인 자로 의심 받았으나 죽은 자.
그 명확한 스토리가 나오기 전, 모정은 엇갈린다.
시끄럽다가 또 잠잠하다가.
1)
누군가는 감정을 분출하는데, 이 드라마의 중심 인물인 황시목은 그에 대하여
달래거나 함께 분출하지 않는다.
자른다, 혹은 선을 긋는다.
딱 잘라서 방향성을 주거나 본인은 본인의 일을 하겠다며 선을 긋는다. 특히 영은수에게 많이 대응한 방식이다.
처음 한경위가 황검사의 특징을 포착한 장면이다.
감정대입이 어려워서 한경위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살해 동작이나 동선의 경우는 직접 시뮬레이션 한다.
다른 수사물은 범인을 대입해서 보여주는데 황검사가 직접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
* 황검사는 믿음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왜 한경위에게는 경계나 의심을 심히 올리지 않는지? 이 부분에서 황시목 검사의 감정이 100% 사라진 게 아니라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는 '느낌대로'의 결정을 하기도 한다는 반증인가.
2) 황시목의 사회 생활
대체적으로 이런 플로우. 그저 조용히 먹고 대답하다가 자신의 일이 생기면 나간다.
고개 박고 먹는 것만 집중해서 있는 것이나, 융통성 없이 경위서를 엉거주춤한 자세로 써내려가는 것 보면
이 사람 되게 애 같다, 미숙하다.
그러니까, 덜 자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인생에서 마땅히 넘어왔어야 할 굴곡이나 사회성 문제 등을 제 때에 겪지 않고 덜 여물게 된 아이 같다.
검사장과 황검사의 대립신이 이 드라마에서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했다.
그리고 영은수
이 캐릭터도 아버지 영일재의 말대로 학력과 스펙으로 감춰져서 더 위험한 어린 아이 같다.
가족과 본인의 큰 상처는 어른스러운 어른으로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이성적인 소통이 아니라 여유있는 소통을 가로 막는다.
영은수의 잘못으로 몰릴 뻔 했던 일을 미디어를 통해 직접 알리고나선 황검사.
한경위와 황검사의 공조수사가 시작된다.
한경위니까 그의 등을 토닥거리며 밀 수 있다.
여기서 그의 귀여움 포인트
저기서 가방 땅바닥에 내려놓고 경위서 같은 거 작성하고 있는 거 너무 웃겼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융통성없는 덜 자란 아이의 모습이기도 하다.
가장 앞 부분에 나왔던.
황시목의 유년 시절.
그리고 지금도 종종 느끼는 고통
3)
?, !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나서는 도중 종종 이런 물음표와 느낌표를 작가는 적절히 혼용한다.
적절한 혼용률로 구성된 옷 같다.
황검사와 일 하는 계장이 서동재 검사에게 뒷돈 찔리는 듯한 장면, 과장이 이창준의 명으로 황검사의 뒷조사를 하는 등의 모습 등
드라마는 종종 물음표와 느낌표의 믹스를 보이며 의구심을 이용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다.
종종 두 인물의 대립
한 번은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눈 앞에서 검사장 당신을 지목하기도 한다.
건조하게 팽팽한 매력이 있는 장면들이다.
그리고 한껏 긴장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박무성의 모친과 아들의 피붙이간의 정.
세상에 둘만 남은 사람들에게 그나마의 평안과 안심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사건과 더 얽혀있다. 이 드라마의 인물들은 누구하나 패를 완전히 내어 보이지를 않는다.
완벽한 선도 완벽한 악도 없는 듯 보인다.
중간중간 자꾸 끼어 들어 해결을 돕기도 하는 영은수.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 뛰는 어린애 같다.
그리고 10화 초반을 보고 있는 지금, 가장 궁금한 인물.
다음 글에서는 이 인물에 관해 정리하게 되지 않을까.
서동재 쟤 눈알 굴리는 거 보면 진짜 화가 치밀었다.
저 비열한 인간...
강약-약강 의 폭력성을 보면 치가 떨린다.
5)
인상적이었던 장면_검사장이 되는 순간.
권력에의 방향성, 그에 대한 역린. 황시목.
다시 한 번, 역린은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 즉 군주가 노여워하는 군주만의 약점 또는 노여움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글의 중심인데 중간부에 되어서야 언급하게 되었다.
황시목은 감정적인 정의, 즉 사명감이나 외부로 표출되는 소위 열정적인 모습을 배제했지만 권력의 방향성에 종종 역행하는 인물이다. 감정적으로 핏대올리고 괄괄대지 않아도, 무미건조하게 보아도 '마땅히 그런 것, 그래야 하는 것'을 본의 아니게 지킨다.
무미건조하지만 감정의 기립을 일으키는 힘.
눈물 흘리는 인물을 보여주지 않아도 마땅히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불러 일으켜 주는 것이 또 하나의 이수연 작가의 작품색이라 생각한다.
슬프게 울고 눈물 콧물 버무려진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지르지 않아도 불러 일으켜져야 하는 감정은 필연적으로 우리 안에 있다. 그 자연스러운 감정이나 응당 사람이면 있는 마음들을, '감정의 과잉'을 통하지 분출않고도 자연스럽게 그저 안에 있는 것을 꺼내어 내는 것,
조금 더 자연스러운 방법이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이 작가의 작품이 다른 작품들과 달라보이는 것이 아닐까 하기도 하고.
'역린'인 황시목은 매우 화를 내거나 열정적으로 용의 목에 거꾸로 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기는 그렇게 생겨 먹었으니까- 응당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맞다, 고 이야기 하며 조승우 배우의 그 눈을 빌려 용이나 용 주위의 권력자를 응시한다. 그 눈이 드라마를 읽어내는 우리를 보고 있는건가 느낀 분이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있으면 동질감을 느낄 것 같다. 이제 그런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누군가는 그렇게 조용히 응시하며 당연한 자기 할 일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필연적으로 용의 노여움을 사게 되는 것 또한 필연이다.
'용'은 검사장이기도 큰기업의 회장이기도. 누구나 알 수 있다시피 권력자일 것이다.
6)
밥, 그 일상적인 밥. 모든 시작은 그로부터 시작된다.
한 번은 그저 넘어가도 될 정도의 부담없고 쉬운 밥 한 끼.
다음엔 그냥 내가 한 번 사면 되는- 가장 느슨하다가 가장 자연스러운 관계가 되는.
후에 완결을 보면 이창준의 시작이 이 곳에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 같다. 프리뷰로 그의 이야기를 들은 듯 하다.
서동재의 동선을 따르는 한여진 경위
리고 참 현실적이고 참 안타까웠던 한 샷.
권력으로 찍어내리고 주눅들게 하고 힘으로 짓이겨버리는.
이 샷에서 지나가던 차주가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어주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마땅한 정의(아무리 작은 정의라도.)를 행하는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그러나 검사신분증을 보여주며 신경끄고 가라는. 찍- 하고 뱉어내는 듯한 더러운 권력. 강약약강을 그대로 표현하는 인물이다. 서동재.
* 킬링포인트
황시목은 감정이 옅은 사람이긴 하나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느낌이 스멀스멀 온다.
(그리고 귀엽다)
아직 섬뜩한 저 여자.
윤세아 배우는 이 드라마, 내가 본 지점에서까지는 곳곳에서 섬뜩하다.
얼마 안 되는 평생 이미 갖춰진 것들 위에 있는 아버지의 어깨 위에서 앉아있던 그 모습. <작은 신의 아이들>의 백아현 역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사건에서 발을 빼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걸고 넘어지거나 건드리게 된다.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박무성의 죽음으로 벌어진 균열을 메꾸려다 이 곳 저 곳이 흔들린다.
붙들리는 서동재.
다시 한 번, 강약약강 서동재
한숨이 나온다.
영은수 어린이
황시목의 웃음
완전히 없는 것이 아닌 그 감정. 그도 그저 사람.
연이은 서부지검의 불명예.
자체 내사를 위해 특임위가 구성되고 특임 검사로 임명되는 황시목.
역린은 용에게도 노여움이지만 옆에있는 비늘들에게도 거꾸로의 방향성을 띤다는 것을 표현한 장면이라 생각한다.
타겟 몇.
불편하기 그지 없는 쇼잉(showing)과 자연스럽게 찍어내리는 익숙한 권력의 표현
좀 더 세상의 나이를 먹은, 좀 더 똑똑한 <작은 신의 아이들> 백아현이 상상되는 모습.
백아현보다 훨씬 덜 감정적이고 저의와 목적성이 더 뚜렷하고 많다.
모두를 불편하게 한 자리
그리고 황시목의 어린 시절, 다른 또 하나.
특임위 구성원들은 의심을 내려놓게 하며 하나씩 자신을 드러내간다.
* 인상적이었던 장면 _ 서동재 이관
이 부분 핸드헬드 방식인 것 같은데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땅히 서동재 저 인물이 느꼈을 불안감과 어지럼을 드라마 내에서 저렇게 부분적으로 기법 사용을 해가며 표현했다는 것이 나는 놀라웠다.
그리고 비열한 그의 자유자재 각도 무릎을 마지막 장면으로
다음편에 이어서 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