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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록 Jan 13. 2019

미치겠다, 너땜에!(2018)

김선호와 이유영, 이유영과 김선호.

단막극이나 짧은 드라마만을 기록하는 매거진을 따로 만들까 생각해본다. 

단막극은 힘이 있으나 그 것을 보여줄 기회가 적었던 배우들에게 기회이다. 그리고 정규극에서 주연을 맡았던 배우들도 대중에게 소비되는 면 뿐만 아니라 자신의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기제로서도 단막극은 훌륭하다. 주연 경쟁이 너무나 심한 미니시리즈나 정규드라마에 비해 촬영 및 방영 기간이 짧고 실험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리뷰한 <옥란 면옥>이나 이 다음 글로 쓰려는 <탁구공> 등도 신인 배우의 도약을 돕거나 이미 입지를 다진 배우의 다른 면모를 보여준 분명한 사례이다.


1. 두 인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감정선이 섬세하면서도 강렬하다는 점.
2. 독특하고 신선한 소재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
3. 신선한 얼굴을 데려올 수 있다는 점.

이 세 가지가 짧은 드라마가 가지는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연출가 현솔잎 님, 눈에 띄는 예쁜 이름!

이 작품은 막역한 친구 사이인 두 남녀 사이의 감정선을 그린다.

그 유명한 난제, 남녀 간에 친구 사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사례로 들려준다.

김선호 배우.


이선균의 목소리에서 오는 울림과는 다른 경쾌한 중저음의 울림을 가진 배우다. 

출연작으로는 가장 최신작인 <백일의 낭군님>이 있고, 이 작품 이전에는 <미치겠다, 너땜에>, <투깝스>, <최강배달꾼>, <김과장> 등의 공중파 드라마 출연 이력이 있다. 비교적 빠르게 조연에서 주연급으로 발돋움 했다고 볼 수 있다. 김과장에서 조연급으로 '귀여운 멀대' 회사원 이미지로 눈길을 살짝 끌고는 최강배달꾼에서는 고원희* 배우와 맞춘 귀여운 케미 그리고 어느 편에 서야 할 지 선과 악의 갈림길에서 헷갈려하는 몸만 어른인 역할을 너무나 잘 소화했다. 반면 투깝스에서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기는 어려웠던 역할인데다 스토리의 완성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그의 행보 중 다시 조연, 그 것도 메인에 완전히 집중 되어 있는 백일의 낭군님의 조연을 맡은 것은 포지션의 다양성을 꾀하기에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고원희 배우와 <흔들리는 물결>에서 호흡을 맞춘 심희섭 배우의 근황이 문득 궁금해서 찾아보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개봉했던 <메이트>가 극장가에서 1월 17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심배우도 지금 김배우에 대해 적는 것처럼 적고 싶은 배우인데 반가운 소식이다. 


그의 매력은 현실성에서 온다. 어디 멀리 있는 왕자님이 아니라, 내가 동아리에서 회사에서 혹은 동네에서 함께 대화하고 밥 먹으며 가까워지는 동생, 친구 또는 오빠 같다. 좋아하게 될 친근한 오빠 같다. 또 그의 행동 곳곳에 피어있는 유머는 그를 더 재치있고 경쾌한 느낌의 구성원으로 만들어준다. 그래서 그는 부드럽게 스며들어 미소를 주는 역할을 종종 잘 해낸다. 이 작품 <미치겠데, 너땜에>에서 그는 매력적인 친근함의 김선호 그 자신을 보여준다. 따로 옷을 차려 입지 않고 가장 편한 후드에 츄리닝을 입고 나온 동네 편의점에서의 소탈한 모습을 마주한 것 같다.


* 드라마 출연 전에는 <뉴 보잉보잉>, <거미 여인의 키스>, <보이스 오브 밀레니엄> 등 연극 배우로 먼저 얼굴을 알렸다. 연극에서 그가 가진 목소리의 울림이 긍정적으로 쓰였을 것 같은데 약간은 부정확한 발성이 연극에서 어떻게 작용했을지 모르겠다. 그가 또 연극을 준비한다면 즐거이 가서 들어보고 싶다. 그만큼 그는 찾아보고 싶은 배우이다. 

그리고 이유영 배우

고 김주혁 님과 함께 출연한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을 보았다면 압권이었던 이유영 배우의

저 아세요?

를 잊을 수 있을까.


투명한 그녀의 눈과 피부에는 빨려들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영화 <봄>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저 아름다움을 누군가 다른 사람도 알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영화에서 피사체로서의 그녀는 완벽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극중 동시통역사 역할을 맡은 것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게, 그녀의 가늘고 높아서 자칫 가벼워질 수 있는 목소리에 끝을 늘여 여운을 남기는 프랑스어가 잘 어울렸다. 

한은성(이유영)과 김래완(김선호)


친구의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며 있었던 실수 때문에 어색해진 친구 관계.

그런데 집에 공사를 해야 하는 일이 생기며 또다시 은성은 래완에게로 온다. 


약간 어색한 두 인물의 분위기가 무엇인가 잠잠히 보니 둘은 친구와 연인 사이를 아찔하게 오가고 있었다.

둘 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지내기로 한다.

이렇게 다정하게 음식도 덜어 주며.


래완이 본래가 다정하고 정 많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오히려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전남친, 전여친 이야기도 부러 더 하는 둘이었다.

은성이 데려온 복고

친구와 연인 사이를 이렇게 아찔하게 오간다. 

화가 래완에게는 아무 일도 아닐 수 있겠지만 은성은 아이라인을 그려주는 래완에게 떨리는 감정을 느낀 시간이었을텐데.

뜯어보았을 때 보다 한 폭의 그림으로 있을 때가 더 예쁜 것 같다. 김선호 배우는.

둘 다 로에게 남 녀인 포인트가 있는데 자신이 무슨 행동을 했는지를 도통 알지 못한다. 

둘이 함께 지내며 술 한 잔 씩 하는 것은 의례적인 순서에 가깝다.

남의 집에 살구 서리를 하러 간 은성, 그런 엉뚱한 은성을 어이없는 눈으로 보면서도 함께 해주는 래완.

봄 날의 달큰한 살구 향에 

취한 둘.

실수였다고 흥분한 둘,

그러다 몇 달 전의 실수를 떠올린다.

언제나 래완에게 먼저 다가간 은성.

컵라면이 익는 그 3분이 지나면 모든 것을 잊기로 한 둘. 

절대 이성 관계가 아니라는 둘에게 각각 썸남과 썸녀가 생긴다. 

은성을 뮤즈로 생각하며 다가오는 연하의 남자

예쁘고 연하인 어떤 여자.


각각 연애하기에는 더 좋은 상대가 나타났는데도 섣불리 시작하지 못한다. 어느 쪽의 관계라도 말이다.

어색한 마음의 화살표 속, 드디어 가닥이 잡히는 것 같다. 

그들의 첫 만남은 대학 시절의 당황스러운 그림으로 시작한다.

또 스물 일곱의 은성을 그리는 래완.

언제나 은성이 다가왔지만, 그 전에 래완의 펜은 항상 은성을 향했다. 

자신보다 더 엉뚱한 썸남에게

은성도 이 관계를 정리하자 말한다.

래완은 이제 은성을 향한 마음의 갈피를 잡는다.

함께했던 대학생 시절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이제 은성을 향한 래완의 마음과

그 것을 두려워하는 은성의 마음.

수도관도 터졌겠다 핑곗거리도 있겠다, 근데 내가 진짜 원하는 거, 그런 니가 아니었어. 우리 엄마아빠보다 날 더 잘 아는 사람, 8년 동안 내 모든 과거 다 알고 내 주정 다 받아주고 심지어 내 똥까지 본 사람. 나 그런 사람, 나한테 너밖에 없어. 나 남친한테 차이고 미친년처럼 걔네 집앞에서 울고 있을 때도, 그래 나 통역 잘못해서 완전 우울했을 때. 나 그냥 심심할 때, 맨날 떠오르는 사람이 너밖에 없어. 그런 사람을 내가, 언제 어디서만나, 8년을 같이 한 너같은 사람을 어디서 어떻게 또 만나!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던 은성의 즉흥적인 행동과 복잡한 생각들의 이유를 폭포수처럼 쏟아낸 대사였다. 

이 드라마가 가장 빛나는 지점이 아닐까 한다. 


사랑과 우정 사이, 친구와 연인 사이.

그 복잡한 마음과 걱정을 여과없이 드러내 준 장면이다.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 복합적인 장면을 직관적으로 공감하게 하는 것은 장르를 불문하고 예술작품이 가진 힘이다.

래완의 집에서 나간 은성.

1년이 지난다.

자리가 잡히지 않아 고민하던 27을 지나 28의 안정.

우리는 고민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시기를 보내다가도 갑작스런 안정을 찾기도 한다.


우리에게 은은하게 주는 이 작품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의 마음에 언제나 본인이 있었음을 알게 되는 은성

래완에게로 향한다. 

언제나처럼 은성이 오기를

기다려준 래완.

사랑과 우정 사이를 기가 막히게 표현해준 <미치겠다, 너땜에>였다.

요새 찾기 어려운 싱그러우면서도, 청춘의 복잡한 마음이 잘 담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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