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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록 Dec 10. 2020

#3 나의 가해자에게, 트로트보다 울림 있는 단편

kbs 드라마 스페셜 2020

KBS 드라마 스페셜 3번째 단막극 <나의 가해자에게>


이제는 학교 폭력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버스 타기 위해 기다리는 정류장에서도 교복 입은 아이들을 보며 저 아이는 남에게 해코지하며 지려나, 혹은 괴롭힘을 당하려나 생각해보기도 한다.  앳된 얼굴을 나는 뭐라도 쓰여 있을까 유심히 읽어보는 것이다. 


나는 교육학을 전공했지만 복수 전공인 경제학에 관심이 더 많았고 요즘은 출근하지 않고 쉬고 있지만 돈도 지금까지 복수 전공 관련해서 벌어왔다. 전공인 교육학은 내게 금전적인 영향을 미친 적이 없다. 모두 봉사 등의 활동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지식 봉사, 소외 계층 초등생 관련 교육 봉사, 돌봄 교실 봉사, 넓게 보면 학교에서 배웠던 것이 많이 도움이 되었던 미술관 도슨트 재능봉사, 그리고 지금까지 하고 있는 야학 활동까지.  


이렇게 보면 나는 교육으로 돈만 벌지 않았지 돈을 벌지 않는 상당의 시간에는 대부분 사람과 교육에 관련된 일을 해 왔다. 하지만 교육학과 학생들 상당 부분이 고등교육기관의 행정직 혹은 임용고시, 또는 사립 교육 기업에 들어가는 결정을 하는 것에 반해 나는 대학 3년에 들어서며 내린 명확한 결정이 있었다.

직업으로서의 교육을 하지 않는다.
서른 전에 난 그 어떤 학생의 무게도 감당할 수 없다. 


여기서 서른이란 숫자는 아주 임의적이다. 사실 스무이레 정도 지나면 난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된다. 그럼 이제 나 스스로 교육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는가.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직업적으로 마주할 학생이라는 대상에 대한 '미지의 두려움'은 거의 덜어낸 것 같다. <나의 가해자에게>에서도 볼 수 있는 물리적 폭력이든, 지능적인 괴롭힘이든 이제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이제야 나도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는 계단 하나를 올랐는지 모르겠다. 

학생들이 어리고 작은 얼굴과 몸으로 어떤 일을 저지를까, 어디까지 영약 하게 굴 수 있는가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그래서 그들을 그냥 앳된 학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한 명 한 명 내가 바라봐야 할 대상으로 두고 그 눈을 들여다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소외계층 교육 봉사를 하던 중에 기억에 남는 일이 둘 있다. 생애 첫 카네이션을 이십대 초반에 받게 해 주어서 벅찼던 스승의 날 기억도 있지만, 다른 하나는 아무리 어린 학생도 남을 괴롭힐 수 있다는 걸 인지한 기억이었다. 그 이후로 앞서 말한 결심을 더욱 굳힌 것도 있다. 


이 극에서 나오는 숱한 장면들이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 배우며 함께 자라는 장소가 아닌 필수 복역을 채워야 하는 감옥으로 느껴지듯 말이다. 



네 인물 정도가 중심에 서서 <나의 가해자에게> 극을 이끈다. 


지방의 사립 고등학교 무진여고의 4년제 기간제 교사 송진우(김대건 배우)
송진우와 같은 과목으로 첫 기간제 발령을 받아서 온 유성필(문유강 배우)
아 사장의 손녀 박희진(우다비 배우)
무진여고에서 양아치로 여겨지는 학생 이은서(이연 배우)


과거의 송진우와 유성필은 피해자와 가해자, 

현재의 이연과 박희진도 피해자와 가해자. 


학교를 무대 삼은 괴롭힘의 피해가 가해가 이어나가야 할 전통도 아닌데 이어오고 있다. 

더군다나 기억에 묻고 싶었던 과거의 관계인 송진우와 유성필은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관용어구를 몸소 보여주듯 같은 학교의 정교사 자리를 두고 만난다. 이번에는 피해자 송진우가 한 발 정도는 나은 처지로 말이다. 


이때 묘한 기류를 파고드는 박희진. 

자신의 위치를 너무나 잘 알고 이용하며 살고 있는 인물이다. 


캐스팅이 탁월했다고 느낀 이유는 전형적으로 인기 있을, 예쁠 얼굴에 서린 서늘함이다. 몇몇 장면에서 긴장하고 보게 만드는 장본인이었다. 네 중심인물들 중 장면 장면의 장악력은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극의 중심이 되어 안정감 있게 끌어가는 재목임을 증명한 것은 아니지만 시선을 붙드는 배우임은 확실히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박희진의 괴롭힘을 받고 있는 이연. 

이 배우는 스스로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를 정교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두 젊은 배우 모두 기대된다. 

극은 박희진의 악행을 보고 있으면 긴장으로 전개된다. 

과거의 괴롭힘 방식과는 다르게, 지능적으로 진행되며 힘을 이용하여 사람의 가장 작고 어두운 부분을 잡고 조종하는 영악함이 돋보인다. 


그중에 과거의 가해자였던 유성필은 '진정한 선생님'임을 송진우에게 호소하며 때 묻지 않은 새내기의 마음가짐을 아주 잠시 보이지만, 이내 착오를 바로 잡고 어린 권력에 복종하고 동화된다. 박희진의 수족처럼. 


박희진의 어린 권력을 이용해 쉽게 복수와 정교사 자리 모두 성취할 수 있었던 송진우에게 아른거리던 얼굴은 자기와 같은 피해자인 이은서의 얼굴보다도 약 10년 전의 자신의 얼굴이었다. 


"아무도 소외받지 않는 학교"를 만들려던, 송진우도 유성필도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던 꿈을 결국에는 힘겹게 잡아든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었다. 희망이 다발로 날아들며 극은 막을 내린다.

   



이번에는 극 중 사진에서 좀 더 자유로이 글을 쓰고 싶어서 장면마다의 설명이나 흐름은 최대한 배제해 보았다. 

그러다 보니 남는 것은 굵은 줄기의 질문, 생각들이다. 

왜 학교 폭력은 반복되는가

하는 질문에 <나의 가해자에게>는 '묵과'라고 답한다. 

그래 봤자 바뀌는 것 없어


식의 묵과가 본인이 10년 전에 겪은 학교 폭력을 반복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이 작품은 반복을 어쩔 수 없다는 듯 비관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학교 폭력이라는 사실은 직시하고 인물은 평면성을 버리고 입체적으로 구성해내었다. 전형적인 악역으로 여겨지는 유상필마저도 '진정한 선생'을 운운하는 풋내기적 모습을 보였고, '소외되는 사람 없는 학교'를 꿈꾸던 송진우도 권력의 엘리베이터에 대한 유혹에 흔들리고 자신이 본 사실도 부인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입체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단편이었다. 


시청률 1.5%의 이 단편의 경쟁 프로는 트로트 프로그램이었다. 

1.5%, 희망이 보인다. 그 1.5%에게는 트로트보다 울림 있는 한 편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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