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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록 Dec 21. 2020

#4 일의 기쁨과 슬픔, 회사에서 울어본 적 있나요

kbs 드라마 스페셜 2020

KBS 드라마 스페셜 4번째 단막극 <일의 기쁨과 슬픔>


단막극 라인업이 풀렸을 때, 눈길이 가는 요소는 크게 배우, 분위기, 주제 의식 등이 있다. 처음 이 작품의 정보가 올라온 것을 봤을 때는 아주 솔직히는 눈 가는 부분이 이번 단막극 중 가장 적었다. 심희섭 배우와의 영화에서 눈이 가던 고원희 배우의 역할에 대한 기대도 크지 않았고 말이다. 괜히 고원희 배우의 전작인 <최강 배달꾼>을 1회독 했을 뿐이었다. 너무나 어이없어서 말이 안 나오지만 사랑스러웠던 그 모습을 한 번 더 본 후, 로맨스가 중심인 다음 작품을 먼저 클릭하려다가 어렵사리 시청했는데 오히려 다른 작품들과는 결이 다른, 실생활의 공감이 묻어났다. 




일의 기쁨과 슬픔.


이 극은 우리가 일이라는 것을 하면서, 그 밥벌이에 수반되는 트러블을 다루고 있다. 


1. 직장 동료와의 대립, 트러블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당*마켓을 따온 것 같은 '우동마켓'이라는 중고거래 어플 플랫폼 스타트업 회사를 배경으로 두고 벌어지는 상황을 담아냈다. 현실과의 싱크로율이 꽤나 높은 편이라 한국의 실리콘 벨리로 불리며 미국의 평등적 노동문화를 떠올리는 외부 시선과는 괴리감이 느껴지는, '한국식'에 방점이 더 찍히는 판교의 회사원들이 고개를 들어 이 극을 바라보지 않을까 한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회사에서는 기획팀과 개발팀의 마찰은 피하기가 어렵다. 극 중에서도 안나와 케빈은 기획자와 개발자로 분해, 기싸움 아닌 기싸움을 한다. 서로의 입장에 대한 이해보다는 본인의 입장을 밀어붙이는 것에 익숙해진 회사원들에게 입사 초의 생기발랄함을 바라는 것은 과욕일 것이다. 


이만큼 입사 전후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그림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 서로의 말과 입장이 겹치는 것은 어디 하나는 매끄럽지 못한 실수가 있었다는 말이다. 바로 이때 직장 동료 간 관계를 풀어나가는 것, 그 모습이 "일의 기쁨과 슬픔"에 담겨 있다. 


장면상의 거의 마지막에 배치된, 둘의 화해 장면에 말이다. 끝내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개발자와 기획자,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가벼운 한숨으로. 조금씩 본인이 한 발 먼저 다가가려는 자세만으로도 상황은 어이가 없을 정도로 부드럽게 흘러간다. '외향적인 개발자는 상대방의 발끝을 본다'는 유머가 달달하게 들릴 정도로 말이다. 



2. 상사와의 트러블


사실 이 극이 2막으로 나뉘어 있는데 1막까지, 그러니까 '거북이알'이 나오기 전까지는 크게 관심 가는 흐름이 없었다. 그냥 '상사가 띠껍다' 정도의 흔한 이야긴가 싶어서 말이다. 그런데 이 극이 준비하던 뒷심 있는 하나의 알맹이가 마음을 흔들었다. 


중고마켓 플랫폼 회사의 입장에서는 하루에 100개를 홀로 올리는 닉네임 '거북이알'의 정체가 궁금하고 어뷰징이라고 의심할만하다. 우연히 거북이알을 직접 만나 누군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확인하고 오라는 회사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안나가 만난 거북이알은 얼핏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었다. 


누구나 상사가 있고, 누구나 어이없는 지시를 받아가며 일을 해본 경험이 있겠지만 극화로 인해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에피소드였다. 인스타그램 속 자의식이 과잉인 카드사의 대표는 기획팀장에게 어떻게든 '알프' 내한 공연을 성사시키라 지시하고 팀장은 그 일을 해낸다. 하지만 문제는 아주 간단하게 피어올랐다. 수많은 팔로워들에게 자신이 가장 먼저 그 소식을 알릴 수 없게, 보고 없이 공지를 올렸다는 것. 그것을 이유로 폭언과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쏟아낸다. 


그 상황에서, 부하 직원은 상사의 '욕받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뿐이다.


(12월에 이 부분을 중심 꼭지로 해서 글을 연재하고 싶었는데 생각보다 평화로워진 심신상태로 인해 조금 더 데이터를 끌어 모아 보는 중이다.)


이 꼭지에서는 사실 트러블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일방적 가해가 대부분이다. 일방적으로 '돈 주는 사람' 입장인 상사는(여기서 끝판왕은 대표.) 거북이알의 월급마저 포인트로 주기에 이른다. '뭣' 좀 먹어보라는 것이다. 

혹시, 회사에서 울어 본 적 있어요?
눈물이 나더라고요.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막막해서. 그 날은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뭐랄까, 이미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도 들고. 근데 더 이상한 건요, 내가 받은 충격과는 별개로 날은 어김없이 밝고, 나는 이 세상에 존재한 채로 출근도 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억지로 출근해서 하루를 보냈는데, 정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었어요. 세상은 또 그런 채로 돌아가고 있었어요.


담담한 배우의 얼굴과 목소리로 읊는 이 대사는 회사 생활을, 아니 어떤 방식으로라도 사회생활을 하며 부조리를 겪어본 사람이라면 이 막막함에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너무 막막해서 눈물이 거북이알처럼 쏟아져 나왔던 때가 있었다. 내 존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그 단계까지 굳이 한 번 짚고 와야 하는. 극의 초반에 원가 절감의 명목으로 직원들의 커피를 믹스로 바꾸는 치사한 행동, 결국에는 아주 작아도 저항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그렇게 작은 행동도 저항으로 돌아오는데, 사람의 근간을 흔드는 힘을 가진 상사나 대표의 그릇된 행동은 한 사람의 세상을 흔들어 놓는다.


- (그러한 행동들이) 그 게 말이 돼요?
- 네, 저도 안 된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이상하다는 생각을 안 해야 돼요. 그렇게 생각하면 내 머리가 이상해지거든요. 일 하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한 거 없었어요?
- 있죠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또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라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내려놓지 않은 상태로 회사에 남아있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상하지만 그 이상함만큼 그곳의 아이덴티티가 드러나는 것은 없다. 


내 위에 존재하는 사람의 치졸함에 대해 순간의 반항심과 역겨움을 느끼는 때때를 거쳐 이해하려는, 혹은 이상하다 생각하려는 생각마저 들지 않을 때 바로 그때 사람은 퇴사라는 것을 한다. 혹은 그 자리에서 생각은 죽고 몸만 남아 열심히 할 일을, 할 일 만을 하게 된다. 



이 중심 에피소드가 아니었다면, 커피, 잔소리, 어쭙잖은 영어 이름, 말도 안 되는 지시, 월례 행사처럼 돌아오는 쪼았다가 풀어주기 타임 등 등 눈에 선한 '상사질'의 자잘한 에피소드 등으로 웃음 조금이나 유발하고 공감을 얻으려 했다면 이 극이 기억에 오래 남았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이 떨리는 눈으로 이해 불가한 상황에 마주하여 폭격당하는 등장인물에 쌀 한 톨만큼의 공감이라도 느꼈다면 기억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은 행동을 한 직원이라도 월급을 1년 동안 포인트로 주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노동청이 있기에....... 하지만 극이 주는 희열과 카타르시스, 그리고 공감은 여기서 온다. 벌어질 것 같지 않은 일이 벌어질만하다고 보이면서, 그 중심인물에 대한 공감이 생길 때, 극은 중심 뼈대가 살고 힘을 얻게 된다. 아주 인상적이었다. 


3. 내 안의 트러블, 그리고 극복



대표나 이사는 매일 생각하겠죠. 어떻게 수익을 내고, 3%의 성공한 스타트업이 될지. 근데 전요, 퇴근하고 나면 회사 생각을 안 하게 되더라고요. 

나도 그래요. 회사를 나가는 순간부터는 머릿속에서 회사 생각은 코드를 빼고, 아름다운 생각만 하고 아름다운 것만 봐요. 


'직장 생활을 존버하는 비결은 밸런스'라고 극 중 인물 하나가 말한다. '일의 기쁨과 슬픔 사이의 밸런스'

그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코드 뽑기가 필요하다. 이 밸런스, 코드 뽑기를 제 때에 실패해서 아예 그 전기제품에 손을 뗀 나로서는 지금도 존버중인 누군가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다. 


누가 뭐래도, 하루의 최소 시간은 코드를 콱 빼버리라고.

너 자신의 길을 중심에 두라고, 대표가 생각하는 3%를 함께 생각해주는 건 그 게 네 일이라서가 아니라, 너의 길이라서일 때 비로소 맞는 말이 되는 거라고 말이다. 


사실 카드 포인트로 사원 월급을 준 그 회장은 안나 회사 대표의 롤모델이다. 견주기도 어려운 규모의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본인의 롤모델과 같은 길을 걷고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그 카드사 대표의 본모습을 모를 땐 안나도 우러러볼 뻔하고, 자기네 회사 대표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세상 참, 살아가고 일 하는 것들이 참 한 면만 보고는 알 수 없다. 젊은 꼰대인 우동마켓 대표조차 고용승계 없이 우동마켓을 엑시트 하고 본인만 자수성가할 수 있는 기회를 잡지 않는다. 그대로 이 사업을 사람들과 함께 꾸려 나가기로 한다. 이 결정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잰 체 하지 않고 말이다. 


이 극의 좋은 점은 인물을 평면적으로 한 곳으로만 몰고 가지 않으면서도 보여줘야 할 때를 안다는 것. 기본적으로 인물에 대한 애정이 상당해서, 마침표를 찍을 때 즈음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


사실, 회사에서 울어본 적이 있다. 케빈의 한숨이 너무 신경 쓰여서.
찰나의 순간 짧게, 와륵 눈물이 났고 그 게 다였지만, 울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외로운 직장인들, 모두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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