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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고래 Aug 15. 2020

YES KIDS, NO BAD PARENTS

갑자기 문득 떠오른 노키즈존에 대한 나의 생각

독서실에서 나와 연비가 영 좋지 않은 위장에 뭐라도 채워 넣고자 같은 건물에 있는 김밥집에 들어갔다. 건물 주변에 학원도 많고, 아이들도 많은 동네인지라 그 김밥집은 언제 가더라도 어린아이들과 엄마들 손님이 가장 많다. 후다닥 주문을 하고 곧 나올 비빔밥을 위한 최적의 세팅을 마련한 채 편히 앉아있던 그때, 양 손에 새로 산 장난감을 들고 해맑게 들어오는 두 명의 남자아이들과 엄마가 내 옆에 앉았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아직 장난감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엄마만 홀로 현실의 식사 세계에서 고군분투하고 계셨으며 나는 저분이 언제 폭발하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는 것을 자식의 직감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말해주는 메뉴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응 응 하다가 엄마가 계산을 끝내고 처음으로 제대로 앉자 "엄마 나 근데 냉모밀 먹으면 안 돼?"라고 칭얼거렸다. 그 순간 나는 비빔밥을 비비던 숟가락으로 아이들의 머리에 딱콩 해주고 싶은 욕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고 밥을 넘겼다. 생판 모르는 남에게 연민을 느끼기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그러나 어머님은 역시 다년간의 수련을 거치신 분 답게 단숨에 제압하시고, 아이들은 그제야 엄마의 식사 세계에 기꺼이 동참하며 평화로운 식사를 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세 모자의 입장부터 식사까지 모든 광경을 본의 아니게 라이브로 지켜본 후 김밥집을 나오면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생뚱맞게도 '역시, 노키즈존은 아이들로 인한 문제가 아니야.'라는 것이었다.




노키즈존에 대한 논쟁으로 사회가 한창 시끌시끌했을 때 사실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비범함을 굳이 공공장소에서 요란하게 드러내는 아이들에 의해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은 분명히 있었다. 그렇지만 몇 안 되는 기억 용량을 차지할 만큼 인상적인 추태 쇼는 없었기 때문에 그 이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내가 가는 식당에만 없으면 그만이지.'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아이를 가진 엄마도, 식당이나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도 아닌 나에게 노키즈존의 이슈가 진지하게 다가올 리 없었다.


식당과 카페가 노키즈존으로 변하느냐 마느냐 보다 그 식당과 카페가 과연 맛있는 곳인지가 더 중요했던 내가 확실하게 '노키즈존이 점차 늘어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닌 것 같다.'라고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작년에 교직 면접을 준비할 때 들었던 강의 덕분이다. 면접 예상 문항 중에 노키즈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라는 문항이 있었고, 답변을 구상해야 했다. 당연히 교사가 될 사람을 뽑는 면접에서 교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노키즈존에 반대한다고 답하는 것이 질문 의도에 맞는 적절한 답일 것이다. 그쯤이야 알고 있었다. 그런데 뒷받침할 근거를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깊이 고민하고 있을 때 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포용과 배려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가 자라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아이는 어른을 보고 배웁니다.

면접 답변으로도 더없이 훌륭한 말씀이었지만, 그 보다는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하는 책임감을 일깨워주는 말씀으로 다가왔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우리는 아이들이 포용적인 분위기에서 배려 받으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나 이 결론만으로 노키즈존을 둘러싼 모든 담론이 해소 될 수 있을까? 나는 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 구성원이 아이들을 향해 따뜻한 마음을 보이고, 배려를 실천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본다. 아이들의 부모 또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갈등 해결을 위한 역할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손님들은 식당에 아이들이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싫어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자. 부모가 자녀의 소란스러운 행동으로 인해 다른 손님들이 피해를 본 것에 대해 미안해하고, 자녀에게 식당에서 지켜야 할 규칙에 대해 지도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온 몸에 피 대신 냉매가 흐르는 인간이 아니고서야 대부분의 손님들은 '그 나이대 애들이 그럴 수 도 있지.' 등의 반응을 보일 것이다. 


반면 자녀의 행동이 다른 손님들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어떠한 제재도 가하지 않고, 타인이 피해를 입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배려와 포용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아이들의 비슷비슷한 행동이 어떤 경우에는 그 나이대에 나타날 수 있는 당연한 행동이 되고, 어떤 경우에는 진상유망주의 행동으로 여겨지는 것은 누구 때문일까. 자신이 하는 행동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도 못하는 어린 아이들에게 잘못이 있을까? 혹시 후자와 같은 부모가 있다면 내 아이가 왜 이런 취급을 당하는지 마냥 억울해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키즈존 문제에서 아이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 그러나 가장 큰 희생양은 아이들이다. 맛있는 음식 먹으러 가서 눈칫밥까지 덤으로 먹는 것만이 아이들이 겪는 불행의 전부가 아니다. 더 큰 불행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고, 공공예절에 무지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그 부모와 똑같은 어른으로 자라 다른 사람들로부터 외면 받고, 미움 받을 수 도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불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No Kids Zone은 긍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우리 아이들에게 모욕적인 표현이므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대신 Yes Kids, No Bad Parents Zone으로 불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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