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스턴스(The Substance, 2024)를 보고
누군가 내게 (주로 소개팅 상대가) ‘어떤 영화를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면 ‘좋은 영화요’라고 솔직하게 얘기하고 싶지만.. 나의 대답으로 상대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는 않기에 꾹 참고 대신 5초간 적절한 대답을 찾아 대처한다. 그러나 OTT로 영화 선택과 시청의 대안이 늘어난 만큼, 따로 영화관에 돈을 내고 직접 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한 보람이 느껴지는 좋은 영화가 아니면 영화관까지 가고 싶지 않은게 우리 모두의 솔직한 마음 아닌가? 어쨌거나 정리하자면 나는 좋은 영화라는 소문이 나면 기꺼이 취향을 접고 과감하게 도전하는 사람이라서 서브스턴스가 고어, 바디호러 장르의 영화임에도 조용히 장기흥행 중이라길래 기꺼이 취향의 장벽을 넘고 보러 갔다.
140분가량의 혼을 쏙 빼놓는 경험 후 우선 짧게 몇 문장 적어본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몰입도 최상, 등장인물이고 감독이고 미친 사람들처럼 계속 끝까지 몰아붙이는데, 그럼에도 참고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한번 참고 보십쇼. 단언컨대 취향을 이기는 영화입니다.”
타고난 외모로 부와 명예, 사람들의 인정을 얻은 여배우 엘리자베스 스파클(Elisabeth Sparkle)이 나이 들어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그 수단을 잃게 되며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서브스턴스’라는 약물로 반짝반짝했던 자신의 전성기를 되찾고자 하는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약물로 수(Sue)가 되어 얻은 영광의 순간을 영원의 시간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통제력을 잃으면서 관객들 모두가 예상하는 (근데 저 정도일거라고는....) 비극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고, 마지막까지 모두의 멘탈을 자비없이 탈탈 털어 끝내버린다.
영화의 가장 첫 부분에서는 노른자에 서브스턴스를 주입함으로써 좀 더 윤기 있고 탱글탱글한 노른자가 생성되는 장면이 나온다. 많은 설명 없이도 서브스턴스를 가장 직관적이고 스타일리쉬하게 설명하는 장면이다. (잠깐 딴 길로 새자면 영화의 모든 미장센, 특히 서브스턴스와 관련된 미장센은 현X카드를 떠올리게 했다. 군더더기 없이 감각적이고 세련된.)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중요한 포인트는 아무리 싱싱한 노른자라도 흰자 밖을 벗어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영화에서 주인공에게 지속적으로 경고하는 메세지 “REMEMBER YOU ARE ONE.”과 맞닿아 있다.
외면의 시각적 인식이 우리 의식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지 엘리자베스와 수의 겉모습의 괴리감이 커져갈수록 엘리자베스는 수의 본체고, 모든 의식과 생각은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엘리자베스는 수를 적으로 인식하고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으며 분명 자기 자신인데 전혀 통제하지 못한다. 수도 마찬가지고. 이게 단순히 엘리자베스가 엔터 업계의 자본주의적인 가치관에 희생된 캐릭터라 외모에 미쳐서 벌어진 일일까 아니면 우리 모두가 가진 본능적인 욕망이 엘리자베스라는 캐릭터를 통해 좀 더 극단적으로 묘사된 걸까? 둘 다 어느 정도 해당이 되지만 나는 영화를 보며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해질 수 있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예쁘고, 귀엽고, 아름답고, 잘생긴 존재에게 끌린다. 너무 본능적인 욕구라서 부정하는 건 말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수를 연기한 마가렛 퀄리가 처음 등장했을 때 감탄 안 한 사람이 있을까? 나도 와 했고 캐스팅 진짜 잘했다고 생각했다ㅋㅋ 인정할 건 인정하고 가는 것이 정신적으로 건강해지는 첫걸음이다. 하지만 본능적인 끌림과 지나친 본능 추구로 파멸에 이르는 것을 경계하는 마음 사이의 균형을 스스로 조절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눈 앞에서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연이어 펼쳐지는데 그걸 소화할 틈도 없이 머릿속도 복잡해졌다. 매력적인 겉모습을 위한 세심한 관리와 외면이 점점 초라해져도 같이 무너지지 않고 나를 아껴주고 버티게 해줄 내면을 가꾸는 일 모두 잘 해내고 싶은데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 모닝쇼가 끝날 때마다 모두에게 “Take care of yourself!” 라고 활기차게 외쳤지만 정작 스스로에게는 그렇게 하지 못했던 엘리자베스가 불쌍하다는 생각...
내가 모든 영화, 드라마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또 생각났다. 드라마 ‘또 오해영’에서 (설정상) 못생긴 오해영의 “난 내가 여기서 조금만 더 괜찮아지길 바랬던 거지, 걔가 되길 원한 건 아니었어요.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되길 바래요.”라는 대사. 이런 마음을 갖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그게 얼마나 마음처럼 잘되지 않는지 매년 점점 더 많이 실감하는 중이다. 새해에는 모두들 자기 자신을 좀 더 아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들을 기꺼이 진심으로 응원하는 따뜻한 사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이려나.
덧) 영화관을 나오는데 해맑게 들뜬 목소리로 “야 마가렛 퀄리 XX 예쁘지 않냐?” 라는 말을 들었을 때의 허무감이란..ㅎ 나도 그 생각을 하긴 했지만 너무 해맑으니 좀 속상하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