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고래 May 09. 2020

억지감동 영화와 꼰대 영화는 이제 그만

내가 저질 신파 영화와 갖잖은 교훈을 싫어하는 이유

나는 한국영화 전문가는 아니지만 요즘 개봉하는 한국 영화 중에 볼만한 작품, 아니 관객이 보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하는 작품조차 없다는 것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의식이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영화를 봐왔던 관객들 중 꽤 많은 이들 사이에서 공유되고 있다는 것도 단언할 수 있다. 나는 보고싶은 영화를 발견했거나 좋은 영화를 추천 받았을 때 핸드폰 메모장에 제목을 적어놓는데 이 중 최근(1~2년 사이) 개봉한 한국 영화는 단 하나도 없다. 핸드폰 메모장은 수정하기 편리해서 왠만하면 영화를 보고싶다는 촉이 바퀴벌레 촉이어도 그냥 적는 편인데 최근 개봉하는 한국 영화들은 이 박애주의적인 목록에서도 제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때깔 좋은 화면, 트렌드를 잔뜩 머금은 인터내셔널 예고편, 더하여 빵빵한 자본과 해외에서도 제법 높아진 위상까지. 두루두루 봤을 땐 한국영화에 이만한 황금기가 없지 않았나 싶다가도 막상 자리잡고 속을 까보면 정작 중요한 컨텐츠는 힘을 잃은 지 오래인듯 하다. 포장은 정교해지는데 내용물은 해가 지나도 바뀌는 것이 없으니 마치 명절에 파는 백화점 선물세트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틀렸다. 백화점 한우 선물세트는 변함없이 맛이라도 좋지. 한국 영화는 어째 그 맛이 점점 저질이 되어가서 이제는 받아도 전혀 기쁘지 않은 명절 선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적어도 내게는. 



윗 문단에서 좀 격한 감정을 담아 쓰긴했지만 그렇다고 모든 한국영화가 다 구리다는 것은 아니다. 어디든 예외는 항상 있지 않나. 문제는 그 예외마저도 한국영화 전반의 수준향상이 아닌 몇몇 감독들의 개인적인 기량 향상에 의한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언론에서 기생충의 화려한 수상결과를 마치 한국 영화의 결실이라고 떠들어댔을 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는 한국영화의 총체적인 성과가 아니라 봉준호와 기생충팀의 역량으로 이루어낸 성과이니 기생충의 성공에 함부로 편승하지 말라고 비판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래도 국위선양 했으니까 좋은게 좋은거 아니냐고 하실 수 도 있겠다. 그렇지만 생각해보자.   


멀리 갈것도 없이 90년대, 2000년대 초반에 비해 현재 한국영화의 위상, 자본, 영화시장의 확대(관람객 증가), 기타 외적인 조건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한국영화 전반도 그에 맞게 질적인 향상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상업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작품이 과거에 비해 쉽게 나올 수 있는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작품의 질은 하락하고, 재기발랄한 독창성으로 영화계에 새 바람을 일으킬 신예 감독들도 발견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일례로 2003년에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 박찬욱의 올드보이, 김지운의 장화홍련, 장준환의 지구를 지켜라가 개봉했다. 2020년의 영화계는 2003년의 영화계보다 확실히 나아졌다. 그러니 지금 봉준호, 박찬욱, 김지운, 장준환 같은 감독들이 못 나올 이유도 없지 않겠는가. 


환경과 시장은 더 나아졌는데 영화는 나아지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잘하는 사람이 계속 잘하니까 괜찮다고 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것 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중에서도 뭐가 문제냐?

서론이 길어지긴 했지만 핵심을 까놓고 말하면 다음과 같다. "들인 돈에 비해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너무 부실하잖아 니네." 앞에서 이처럼 한국 영화의 전반적인 질적 하락이 아쉽다고 지적했는데, 그 질적 하락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나는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두 가지에 대해 논할 생각이다. 고질적인 신파 스토리교훈을 남발하는 꼰대 영화.



1. 우는 건 관객인 내가 결정한다. 강요하지마! -한국영화의 고질적인 저질신파 스토리


내가 신파 영화가 싫은게 아니라 '저질'신파 영화가 싫다고 제목을 정한데는 이유가 있다. 이것부터 짚고 가야 한다. 대부분 드라마 장르의 영화는 정형화된 구조를 따라가지 않나. 문제나 갈등 해결과정에서 점차 감정을 고조시켜서 관객의 감정을 폭발하게 만드는 전형적인 구조. 나는 이러한 구조에 따라 이야기를 진행하는 영화라면 넓은 의미에서 신파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모든 신파 영화가 싫을리가 있나.


그러나 저질신파 영화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내가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감정을 향유할 자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질신파 영화를 볼 때는 '슬픔' 이라는 감정 하나만을 느껴야한다고 강요받는 느낌이다. 감독이 의도한 감정을 관객이 느끼게 하고 싶다면, 감독은 감동을 유발하기 위한 과정을 자연스럽고 노련하게, 그리고 티나지 않게 탄탄히 쌓아야 한다. 감독의 빌드업이 잘 되어 있으면 관객들은 감독이 설정한 내용 전개와 인물의 처지에 몰입하게 됨으로써 비로소 인물에게 공감하고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 때는 내가 영화의 흐름에 몸을 맡겨 완전히 몰입한 채 영화 속 인물의 감정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눈물을 강요받는 느낌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슬픈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 저질 신파 영화를 보면 우는데도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하다. 스크린 속 배우는 면발뽑듯이 눈물을 뽑아내고 있고 인물들의 처지도 불쌍하긴 하다. 근데 이상하게 찝찝한 것이다. '나 왜 울고 있지?' 슬퍼서 우는게 아니라 울어야 할 것 같아서 운다. 그리고 그 이유가 제대로 납득이 안되니까 이런 의문이 계속 생기는 것이다. 내용이 성겨서 구멍이 많으면 제대로 빌드업이 되지 않아서 영화 속 인물의 처지와 환경에 공감, 즉, 영화 속 인물과 나의 감정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감독들은 명심해야 한다. 만만해보이는 신파도 잘하려면 성의있게 이야기를 엮어내야 한다는 것을.


2. 누가 누굴 가르치려고 드냐. -꼰대질하는 한국 영화
그 손가락 그대로 다시 집어 넣어


영화 뿐만 아니라 소설, 수필, 시, 드라마, 그림 등등 어떠한 형태의 예술작품에서든 예술가의 메세지가 담겨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을 강요하고 가르치려드는 순간 예술작품은 촌스러워지기 마련이다. 나는 사람이 배움을 얻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내적동기와 자신만의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틀 안에서 사고하고, 자신의 마음이 진짜 움직여야 적극적으로 배움을 얻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훈을 얻고 이를 체득하여 다른 삶의 장으로 확장(전이)시켜 나가는 것이 배움의 총체이고 이를 영화감상에 대입한다면 관람객의 능동적인 영화감상이 가장 중요한 감상 방식인 것이다. 영화가 1타강사 인터넷 강의도 아니고 감독이 정해놓은 교훈과 메세지만을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는가? 


그런데 일부 한국 영화들은 너무나 노골적으로 교훈적인 메세지를 영화에 삽입하여 관객을 가르치려 한다. 관객은 생각도 안하고 있고 심지어 그렇게 느끼지도 않는데 감독 혼자 1타강사 원맨쇼 하듯이 '내 영화를 봤으면 꼭 이런걸 느껴야 돼. 별표 다섯개야. 꼭 기억하고 느끼고 가렴~' 이런 뉘앙스를 잔뜩 풍긴다. 누가 그걸 기분좋게 받아들일 수 있냐는 것이다. 


그리고 감독이 그렇게 의도했다고 그게 정답인가? 예술작품에 답은 없다. 의도한 답이 있을 수는 있어도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관객들 개개인마다 경험과 가치관이 다르고, 하물며 그 개인들조차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같은 영화를 봐도 다른 감상을 갖기 마련인데 어떻게 단 하나의 정답만이 있을 수 있으며, 정답처럼 정해놓은 메세지가 항상 옳다는 자만을 할 수 있는 걸까? 꼰대 영화의 감독이 관객에게 주입하는 특정한 메세지는 감독이 옳다고 생각하는 메세지이다. 그러니까 이 바람직한 메세지를 관객 모두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따위로 꼰대 스타일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근데 감독이 무슨자격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인가? 감독이 영화를 책임지고 만드는 사람이긴 하지만 영화와 같은 예술작품은 밖에 내놓는 순간 자신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작품을 향유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으로 작품의 의미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의 기본도 모르면서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의 오만불손한 태도가 더욱 관객들을 기분 나쁘게 한다. 



감정을 강요하고, 교훈을 강요하는 영화. 어쩌면 이는 욕심이 지나쳐서 관객들이 영화에 원초적으로 기대하는 것 이상을 하려고 해서 생기는 문제인 듯 하다. 관객들이 바라는 것은 딱 하나. 재미있는 영화이며 그런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이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잘 잡혀있는 상태에서 나머지가 더해져야 좋은 작품이 된다는 것을 감독들이 생각하실 수 있기를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