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할머니는 내 어린 시절의 가장 따뜻한 기억 중 하나다. 그 따뜻함은 단지 손길이나 말투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모든 행동과 존재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그 따뜻함을 상징하는 물건 중 하나가 바로 털장갑이었다. 할머니가 직접 짜 주신 털장갑은 겨울 내내 나의 손을 감싸주었고, 추운 날씨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에 따뜻한 온기를 남겨 주었다.
처음 털장갑을 받았던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겨울이 시작되던 어느 날, 찬 바람이 불어오던 아침이었다. 나는 학교에 가기 위해 옷을 챙겨 입고 있었지만, 장갑이 낡아서 구멍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는 조용히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걱정 마라, 할머니가 하나 만들어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그날 저녁부터 할머니는 작은 바구니에서 실을 꺼내들고 털장갑을 짜기 시작하셨다.
할머니가 털장갑을 짜는 모습은 마치 한 편의 느린 춤을 보는 것 같았다. 바늘과 실이 손끝에서 부드럽게 움직이며 서로 엮여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실이 어떻게 장갑의 모양으로 변해가는지, 어떻게 두 손을 따뜻하게 감쌀 수 있는 모양이 되는지 할머니는 한 번도 서두르지 않았다. 매듭 하나하나에 정성과 사랑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며칠 후, 드디어 장갑이 완성되었다. 할머니는 환히 웃으며 내게 장갑을 건네주셨다. “이제 이거 끼고 학교 다녀라. 절대 손 시려울 일 없을 거다.” 나는 할머니의 말대로 그 장갑을 끼고 학교에 갔다. 장갑은 완벽하게 맞지는 않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더 정겨웠다. 한 땀 한 땀 엮인 실들이 손끝에서 느껴질 때마다, 나는 할머니의 정성과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장갑을 끼고 다니던 겨울은 유난히 춥지 않았다. 물론 바깥 날씨는 차가웠지만, 장갑 안의 따뜻함은 내 마음까지 데워 주었다. 친구들에게 “우리 할머니가 직접 짜 주신 장갑이야”라고 자랑하던 기억도 생생하다. 친구들은 손으로 짠 장갑이 신기하다며 장갑을 만져 보기도 하고, 내게 “좋겠다, 너는”이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털장갑은 낡아가기 시작했다. 실이 조금씩 풀리고, 손끝이 해지면서 바람이 새어 들어오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다시 바늘과 실을 들고 장갑을 고쳐 주셨다. “낡으면 고쳐 쓰면 되지, 새로 사지 않아도 돼.” 할머니는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다. 손끝에서 다시 태어난 장갑은 더 따뜻해진 듯했다.
할머니와의 추억 속에서 털장갑은 단순한 겨울용품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과 정성을 담고 있는 특별한 물건이었다. 장갑을 낄 때마다 나는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은 내가 자라면서도 나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었다.
어느새 나는 어른이 되었고, 할머니와의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도시로 떠나 학교에 다니고, 일을 시작하면서 겨울마다 할머니가 짜 주신 장갑 대신 기성품 장갑을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손에 끼는 장갑이 아무리 따뜻하고 고급스러워도, 그 시절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털장갑만큼 마음을 데워 주지는 못했다.
어느 겨울, 할머니를 뵈러 시골로 내려갔을 때 나는 서랍 속에서 오래된 털장갑 한 쌍을 발견했다. 어릴 적 할머니가 만들어 주셨던 바로 그 장갑이었다. 실은 여기저기 풀려 있고, 색도 바래 있었지만, 장갑을 손에 끼는 순간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그 감촉은 여전히 따뜻했고, 할머니의 사랑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할머니는 이제 연세가 많이 드셔서 더 이상 장갑을 짤 수 없게 되셨다. 하지만 내가 할머니께 털장갑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면, 할머니는 여전히 환하게 웃으신다. “그때 내가 짠 장갑이 그렇게 좋았니? 너는 참 손이 시린 아이였는데, 그거 끼고도 춥다고 투덜대던 게 엊그제 같은데.” 할머니의 말에 우리는 함께 웃곤 한다.
시간이 흘러도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털장갑은 내 마음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단순히 손을 따뜻하게 해 주던 물건이 아니라, 나를 지켜 주고 사랑해 주던 할머니의 마음 그 자체였다. 그 장갑은 내가 어릴 적 받은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였고, 지금도 내 삶을 지탱해 주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할머니와 털장갑은 내게 겨울의 추억과 따뜻함을 떠올리게 한다. 그 장갑이 없었다면 내 어린 시절의 겨울은 지금처럼 따뜻하게 기억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장갑이 있었기에 나는 추운 날씨 속에서도 언제나 마음 한구석이 따뜻했다.
지금도 겨울이 되면 할머니가 짜 주신 털장갑을 떠올리며, 그 시절의 따뜻함과 사랑을 기억한다. 장갑은 단순히 손을 감싸는 물건이 아니라, 사랑과 추억을 담고 있는 특별한 물건이다.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상징하는 털장갑은 내게 겨울을 넘어 삶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
그 장갑이 내 손끝에서 느껴질 때마다, 나는 할머니의 사랑 속에서 자라났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사랑이 내 삶을 얼마나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는지를 다시금 느낀다. 할머니와 털장갑, 그 따뜻한 기억은 내게서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이다.